청와대 5년 출입, 기자 30년 편집국장… 춘천 택시운전사로 인생 2막
북적이는 서울 용산역에서 ITX 기차를 타고 약 1시간. 산과 들, 강만 보이던 풍경이 갑자기 아파트단지, 상가로 바뀌면 강원도 춘천시가 가까워진 것이다. 남춘천역 하차 안내와 함께 도심에 접어든 고가철로 위 기차 아래로 분주한 사람과 차량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차 후 자연스레 그들 중 하나가 될 승객들이 걸음을 재촉해 역을 빠져나가고 그 가운데서 김창우 강원일보 전 편집국장이 지난 3일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기자경력 총 30년, 청와대만 5년 넘게 출입한 전직 기자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콜택시 스티커가 래핑된 차량에 이르러 김 전 국장이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는다. 그는 현재 춘천에서 개인택시를 몬다.
“퇴사한 지는 곧 3년, 개인택시 기사는 2년이 돼가죠. 현직 때부터 술자리에서 몇몇 후배들에게 얘기 했는데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웃음) 지역 최고로 꼽히는 신문사에서 퇴직하고 택시를 모냐고, ‘가오 안 선다’는 뒷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게 행복감을 느끼고 노후를 잘 사는 가장 큰 기준은 일이 있냐 없냐였어요. 출장 가면 후배 대신 제가 운전할 정도로 운전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1990년 경기도에서 기자생활을 시작, 1992년 강원일보에 경력기자로 입사했다. 원주주재기자로 10년을 지냈고 2001년 춘천본사로 발령난 후 정치부장, 지방부장, 정치경제담당 부국장을 거쳤다. 서울주재 기자로 청와대 출입을 5년2개월 했고, 이후 취재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광고마케팅국장, 미래전략기획실장을 역임했다. 특히 ‘2전3기’ 끝에 개최지로 선정된 ‘평창 동계올림픽’은 근 20년을 맡은 주요 분야였다. 경쟁도시 IOC 현지실사 취재 등으로 그간 방문한 해외 도시만 15개국 40여곳에 달한다. 쉴 새 없이 달려온 길은 보람 있었지만 건강엔 좋지 않았다. 고혈압, 고지혈, 당뇨에 류마티스까지, 온 몸이 아파 두 차례 휴직을 했고 “세 번째 사표 제출만에 퇴사에 성공”하며 2020년 2월 말 회사를 나왔다. 1964년생 그에게 정년까진 3년이 남은 시점이었다.
퇴사를 2~3주 앞두고 택시 운전 자격증을 취득했다. 휴가를 내고 “회사도, 마누라도 모르게” 강원도 원주로 넘어가 시험을 치렀다. “자격증을 따놔야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후 1년2개월은 몸을 만드는 기간이었다. 헬스클럽을 다녔고 다이어트를 했다. 술도 끊었다. 그 사이 법인택시 3년 무사고 기록이 필요했던 개인택시 면허 취득제도가 일반 자가용 5년 무사고로 바뀌며 길이 열렸다. 면허는 땄는데 차를 팔겠다는 사람이 없어 기다렸다. 2021년 4월이 돼서야 면허와 차량 값으로 상당 금액을 지불하고 온전한 개인택시 기사가 될 수 있었다. 춘천 개인택시 면허 취득 시세는 현재 1억5000~6000만원대다.
그해 5월1일 오전 5시 첫 운행에 나섰다. 첫 콜이 들어왔다. 남춘천역에서 첫 기차를 타려는 학생이 대학교 기숙사에서 차를 불렀다. “시간이 촉박해서 서둘러 학교 정문을 나가려는데 차단기가 안 열려요. 끙끙거리다 후진을 해서 옆 통로로 가니까 문이 열리는데, 알고 보니 등록차량만 다니는 길로 들어간 거죠. 결국 손님이 기차를 놓쳤어요. 첫 손님이라 그렇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하니 막 웃으며 ‘기다리면 되죠. 괜찮습니다’ 하더라고요. ‘네비 찍고 가겠다’고 해서 욕을 먹기도 하고요. 대부분은 초보라고 많이 봐주셨어요. 길도 알려주고 ‘파이팅!’도 해주고요. 약주 한 분들은 팁도 줘요.(웃음)” 그렇게 첫날 번 17만원을 아내에게 줬다. ‘어쭈?’하는 반응에 어깨가 올라갔다.
약 2년이 지나며 현재는 오전 7시30분 출근, 오후 7시30분 퇴근이란 루틴이 잡혔다. 하루 40~50팀을 태우고, 한 달 중 5일은 쉬려 한다. 일정 금액을 벌면 집에 들어간다. 번 돈 절반은 아내에게 주고 나머지는 골프, 친구·후배들을 만난 술·밥자리에 쓴다. 아내와 딸, 아들 모두 직장에 다녀 “먹고 살만하고 크게 돈 쓸 일이 없는데”도 “돈독이 올라”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5~10분을 일하면 그만큼 성과가 바로 돌아오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재미”가 크다. 기자 시절보다 훨씬 서민들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는 점도 변화다.
“주로 ‘콜’을 받아 움직이는데 차 없는 분, 노인들, 학생,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데 한잔 하고 가는 분들이 주 고객이죠. 딸이 젊은 친구들에겐 말 걸지 말래서 안 거는데, 노인분들은 인터뷰를 하게 돼요.(웃음) ‘어떻게 살아오셨나’ 물으면 특히 할머니들은 좋아하면서 ‘살아온 스토리’, ‘자식·손주 걱정’, ‘남편이 바람 피운 얘기’를 해요. 듣다 울기도 하고요. 정치부가 길었는데 제가 진짜 민심을 듣고 기사를 썼나 반성도 해요. 바닥 민심은 바보가 아니고 다 알더라고요.”
좁은 춘천 바닥을 택시로 다니면 많은 아는 얼굴을 만난다. 후배기자를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나다, 인마!” 놀래키며 공짜로 보낸다. 아는 정치인을 3번이나 태우게 돼 돈을 안 받았더니 “다신 안 탄다”며 요금을 던지고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 콜에 응했더니 아들이 아버지 택시에 타는 일도 2번이나 겪었다. 여전히 업이 남긴 인연은 질겨서, 선거 캠프나 기업에서 도와달라는 제안이 오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능력이나 자질이 없”고, “후배들에게 부담 주고 부탁하는 게 싫다”며 거절하고 있다. 가끔 “함께 얼렁덜렁 했던 후배, 동료들이 그리울” 때는 있다. ‘신문사의 꽃’이란 편집국장과 견줘 지금은 덜 화려하고 땅에 더 가까운 자리일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점은 과거보다 지금 그의 얼굴이 훨씬 편해 보인다는 것이다.
“별난 손님도 많지만 안 볼 사람이니 상처가 되진 않아요. 말없이 콜 약속을 취소하는 게 더 속상하죠.(웃음) 시작할 때 ‘아빠가 신문사 있다가 택시 하는데 너네 괜찮겠어?’ 했는데 애들은 ‘상관없다’더라고요. 시대가 변했는데 저만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제 친구들은 이제 고민을 하는데 저는 노후에 할 일을 찾았잖아요. 아내가 건강, 안전 걱정을 하는데 신경 쓰면서 차 연한까지는 운전대를 잡아보려고요. 무엇보다 마음이 평온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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