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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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속에서도 그는 나와 있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두 손은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추위를 물리치기 위해 그는 연신 제자리 뜀뛰기를 하고 있었다.
다들 그악스러운 추위에 종종걸음으로 지나쳐갈 뿐.
노숙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추위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그가 부디 결기를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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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잡지를 파는 사람이었다. 그는 몇 권의 잡지를 쌓아놓고 있었지만 그 잡지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다들 그악스러운 추위에 종종걸음으로 지나쳐갈 뿐. 그 역시 무심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잡지 하나를 사는 것이었다.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데, 현금이 없었다. 언제 필요할지 몰라 얼마간의 현금을 비상금으로 챙겨가지고 다니는데,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가판대 앞에서 여기저기 가방 속을 뒤지는 걸 보고 그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좌이체도 가능해요.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은행 계좌번호와 이름이 적혀있는 안내문이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나 보다. 반갑기도 하고, 고마웠다. 나는 안내판에 적힌 계좌번호로 입금하고 잡지 한 권을 받아들었다. 7000원. 커피 한 잔 값이었다. 잡지의 절반이 그의 몫으로 계산될 것이다. 과연 하루에 몇 권이나 팔릴까. 노숙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추위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그가 부디 결기를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다소 비장하게 들리는 이 말은 한 노숙인이 쓴 책의 제목이다. 크리스티앙 파주.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 소믈리에로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예기치 않게 노숙인이 되었다가 다시 작가로 변신했다. 그는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이 노숙인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더더욱 작가가 되리라곤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되었고 그는 그 삶을 살아냈다. 파리에서 거리생활을 할 때 그가 가장 위험하다고 느낀 건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고 했다. 추위도, 배고픔도, 알코올도 아닌, 사람. 사람이 희망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가장 큰 위험이었다니. 계단참에서 잡지를 팔고 있는 빨간 조끼의 남자도 사람이 가장 무서울까.
다시 크리스티앙 파주의 말이 생각난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아침형 인간은 아니지만, 거리에서 생활한 뒤로 새벽에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나는 그들에게 실패한 내 인생을 보이고 싶지 않다. 희망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파주는 보란 듯이 작가로 다시 일어섰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들을 쓰고 있다. 빨간 조끼의 남자 역시 삶에서 크리스티앙 파주 같은 변화의 시간들이 왔으면 좋겠다. 그것도 빨리.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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