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기 아까운 공간들, ‘가치’ 체험·소통하는 플랫폼 되다[공감의 건축-또 다른 건축을 향해]

기자 2023. 2. 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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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임진영 오픈하우스서울 대표, 사적공간과 공적영역의 일시적 중간지대
오픈하우스서울 2022 당시 공개된 서울 강서구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 미국의 건축사무소 모포시스가 설계했다. 이강석·오픈하우스서울 제공
저널리스트 20년 경력 살려
사적 공간의 소유주 등 설득
세심한 기획과 폭넓은 섭외로
2014년부터 수년째 축제 열어
양질의 도시 건축물 만날 기회
설계자들 창작 공간까지 공개
대중 관심 끌며 공론장 역할도

2020년 서울 강서구에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개교했다. 학교 건립에 반대했던 지역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학부모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은 곳이다. 지난한 시간 끝에 개교한 학교는 다음 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이 건물이 품고 있는 사회적 이슈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아름답게 잘 지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했다. 나는 서진학교를 설계한 코어건축의 설명을 들으며 평소라면 들어갈 수 없는 이곳을 직접 보았다. 매년 10월에 시작하는 ‘오픈하우스서울’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오픈하우스서울은 서울을 중심으로 평소 입장할 수 없는 양질의 건축 공간을 설계자와 함께 경험하는 개방 행사다. 예약 창이 열리자마자 대다수 프로그램이 마감되기로 유명한 인기 있는 도시·건축 축제다. 서울서진학교는 가장 최근에 열렸던 오픈하우스서울 2022의 스페셜 프로그램이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하고 그의 누나 김순자 여사와 매형 박고석 화백의 자택이었던 ‘고석공간’도 작년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고석공간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새 건물주가 사랑과 돌봄으로 오래된 집을 유지·관리하는 모습은 귀감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됐던 오픈하우스서울은 역대 최대 프로그램을 준비해 그간 닫힌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참여자 반응도 가장 뜨거웠다. 9일간 이어진 오픈하우스서울 2022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절실해진 물리적 공간의 가치를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김수근이 설계한 고석공간(위)과 조민석이 설계한 당인리 포디움과 프롬나드. 이강석·오픈하우스서울 제공

도시의 문턱을 낮추고 건축을 만나다

‘오픈하우스’(Open House)는 1992년 설립된 오픈하우스런던을 시작으로 전 세계 50여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건축물 개방 축제다. 2012년 설립된 오픈하우스서울은 “도시의 문턱을 낮추고 건축을 만나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2014년 첫 공식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오픈하우스서울은 건축물을 방문하는 ‘오픈하우스’와 건축가의 창작 현장을 가보는 ‘오픈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다. 오픈하우스서울은 첫해 18개 오픈하우스와 10개 오픈스튜디오로 시작됐다. 그 후 조금씩 규모를 확장해서 작년에는 오픈하우스 109개, 오픈스튜디오 32개, 영상 4개로 총 145개 프로그램을 조직했다.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부터 기린그림과 함께 제작한 오픈하우스서울 영상은 건축을 경험하는 또 다른 확장 방식을 제안했다. 최근까지 총 누적 조회수 131만7000여뷰를 기록한 영상 프로그램은 ‘오픈하우스 월드와이드’(Open House Worldwide) 유튜브를 통해 세계로 공유되었다.

비영리 공공 행사인 오픈하우스는 국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만 운영 방식은 도시마다 조금씩 다르다. 시민이 2~3일 동안 자율적으로 700~800여개의 프로그램을 즐기는 오픈하우스런던이나 뉴욕과 달리 서울은 약 10일간 회차별 예약 방문으로 진행된다. 개인 건물을 불특정 다수에게 개방하는 경험이 충분하지 못해 이를 낯설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있지만 건물 설계자나 소유주가 공간을 안내하고 함께 둘러보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픈하우스서울은 단순히 건물을 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매해 분명한 기획 방향 아래 세심하게 추진된다.

임진영

건축과 대중의 소통을 위한 기획의 힘

오픈하우스서울 프로그램은 20년 넘게 건축 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 중인 설립자 임진영의 기획력과 섭외력을 바탕으로 한다. 임진영은 건축 역사와 이론을 전공하고, ‘공간’ 등 국내 주요 건축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0년부터 프리랜서 에디터로 전향해 해외 잡지에 한국 건축을 소개해왔다. 그가 한창 잡지사 기자로 활동할 때 건축은 여타 문화예술 중에서 가장 어렵고 무거운 분야였다. 건축가의 난해한 말은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타 분야 기자들도 최장, 최고, 최대 면적과 같이 한정된 수식어로 건축을 평면적으로 소개했다. 건축을 전달하는 언어가 불충분했던 시절, 그의 일은 건축 지식과 정보를 해석하고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2000년대 중반 ‘공간’ 편집팀장으로 근무하면서 도시 범위로 관심사를 확장했다. 청계천, 서울 뉴타운을 비롯한 도시 개발 사업과 지방의 각종 문화도시 사업이 활발해지며 건축이 도시 정책과 더욱 긴밀해졌던 시기다. 당시 ‘공간’은 건축을 작가주의적 관점으로 예술 작품처럼 소개하기보다 도시 속 건축의 역할과 사회적 가치에 집중했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으로 임진영은 2010년을 한국 건축 문화의 분기점으로 언급한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직후 건축계가 쇄신됐던 이때 과거보다 건축이라는 콘텐츠가 유연해지고 미디어 노출이 빈번해졌다. 덩달아 건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임진영은 당시 ‘땅콩집’ 유행과 서울시 신청사 건립에 주목했다. 땅콩집은 아파트가 아닌 내 집 짓기 열풍을 주도하며 일반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건축가를 섭외하고 그들과 교류할 기회를 제공했다. 2012년 완공한 서울시 신청사의 경우 건물 최종 모습에 대한 시민들의 격렬한 반응 자체가 임진영에겐 의미심장했다. 한 건물이 던지는 사회적 파급력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였다. 건물은 도시의 무심한 배경이 아니라 대중의 말과 글 속에 생생하게 살아 넘나드는 대상이 됐다. 오픈하우스서울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건축을 문화사회 매개체로 적극적으로 접속하는 시점에 기획한 플랫폼이었다.

도시의 연장선으로 건축물을 경험하다

건축물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것은 그 어떤 건축 전시나 책이 대체하지 못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강력한 건축 체험이다. 오픈하우스는 그 일의 시작을 집의 대문을 여는 것으로 출발한다. 소유주 허락을 받고 공간을 개방하는 일이 우선이다. 임진영은 오픈하우스서울 초기에는 섭외조차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사적 공간을 보호해준다는 신뢰가 충분히 쌓인 뒤에야 프로그램을 확장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오픈하우스서울은 개인 주택의 경우 주소를 공개하지 않고 참여자의 방문 에티켓을 강조한다. 주택, 사옥, 상업 시설 등 다양한 공간들이 열리고 이것이 공론화되자 오픈하우스서울 참여를 자랑스러워하는 건물주가 많아졌다. 평소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들이 오픈하우스서울 기간 동안 개방될 때, 사적 공간은 대중과 교류하는 중간 영역으로 확장된다. 일시적이지만 이때 참여자들은 공간이 자신을 환대하는 경험을 받게 된다.

현장에서 건축가가 설계 의도를 직접 전하는 것은 오픈하우스서울 프로그램의 핵심 중 하나다. 이는 우선 건축가와 시민이 만나는 드문 기회다. 건축가의 설명은 한 건물이 도시의 어떤 조건과 상황을 거쳤는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건물의 탄생 배경을 듣고 나면, 건축뿐만 아니라 도시에 대한 관점도 폭넓어진다.

검박하게 지은 공공건축도 중요하지만 잘 지은 멋진 상업 공간이나 개인 주택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임진영은 좋은 사적 공간을 많이 방문하는 것은 교류의 접근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공공건축의 질과 관심을 높이는 일이라고 믿는다. 참여자에게 그런 공간을 소유하지 못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감상과 이해의 대상으로 보도록 접근한다. 좋은 건축물을 많이 경험해보고 도시 환경을 바라보는 각자의 기준을 세우도록 독려한다. 오픈하우스서울은 이처럼 도시에 대한 다양한 대응의 일환으로 건축을 이해하고, 건축이 놓인 장소와 시간의 맥락에 닿도록 이끈다. 임진영은 이러한 과정을 “도시의 연장선에서 건축을 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맥락을 제거한 화려한 연출 이미지로 공간을 소비하는 일과는 다르다.

오픈하우스는 도시 공간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입체적인 공론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오픈하우스뉴욕의 경우 9·11 테러 이후 더욱 뚜렷해진 도시의 배타적 경계를 조금씩 허무는 데 기여하며 도시 정책 구상을 위한 시민 소통 창구로 사용된다. 오픈하우스서울 또한 도시의 공적 영역과 관련한 의사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장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이 목표를 위해 오픈하우스서울은 서울시, 서울디자인재단, 국립현대미술관, 김중업건축박물관 등 다양한 공공기관과 협업하며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올해 10회를 맞이한 오픈하우스서울은 그간 건물 소유주 및 건축가와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건축물을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더 많이 만들 예정이다. 외국인이 서울의 우수 건축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준비하고 있다.

다수가 참여하는 공동의 판을 만들다

임진영은 오픈하우스서울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시의 공적 영역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애정을 가지면서 도시의 건축물과 공공공간에 대해 관심 갖게 만드는 일”에 집중해온 그는 <공공건축 새로운 실험>(2016) 등 서울시 의뢰로 만든 다수 출판물에도 같은 생각을 담았다. 그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어떤 도시가 살기 좋은 곳인가, 도시를 물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은 어떤 것인가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좇아왔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임진영은 올해 가을 열리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게스트시티 전시를 염상훈 건축가와 함께 공동 기획하고 있다. ‘패러럴 그라운즈’(Parallel Gounds)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도시 생태계를 존중하는 고밀도 도시 공간 활용에 대한 해외 도시의 다양한 건축 제안을 보여줄 예정이다.

기획자는 여러 대상을 엮어서 다수가 참여하는 공동의 판을 만드는 사람이다. 임진영은 최근 20년간 한국 건축의 흐름과 변화를 관찰하며 건축계 바깥과 연결해온 최전선의 건축 기획자다. 대지에 고정된 사물인 건축은 새로운 형식의 고안을 통해 다른 분야와 유연하게 연결될 수 있다. 전시, 출판, 포럼 등 건축을 매개하는 여러 활동이 활발해지며 건축이 콘텐츠로 가속 소비되는 요즘 이 같은 판을 짜는 기획자의 역할도 함께 중요해진다. 하지만 건축 기획자 대부분은 설계 중심의 교육 과정과 부족한 실무 현장 속에서 일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그 가운데 작년 11월에 발표된 ‘공간’ 역대 편집부의 김정철건축문화상 수상 소식은 뜻깊었다. 한국건축가협회가 건축 문화 발전과 저변 확장에 기여하는 이들에게 수여하는 이 상을 건축가나 학자가 아닌 기획집단이 수상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또 다른 건축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며 건축이 머무는 다채로운 자리를 만드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정다영



정다영은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했다. 건축잡지 ‘공간’ 기자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한다.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 2018베니스건축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 등을 지냈다.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김중업 다이얼로그’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등 여러 전시를 기획했다.<파빌리온, 도시의 감정을 채우다> <건축, 전시, 큐레이팅>(공동)을 썼다.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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