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낡은 담벼락에서 발견한 ‘산수화’ 그렸죠”

노형석 2023. 2. 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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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담벼락을 보는 순간 압도당했어요. '아, 절경이구나' 싶었어요. 바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대구에서 작업해온 화가 배종헌(54])씨는 최근 서울 홍대 앞 대안공간 루프에 차린 개인전 '고립여행'에 사람 키보다 높은 담벼락 그림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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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헌 작가 서울 개인전 ‘고립여행’
“대구 작업실 동네 걷다가 압도당해”
홍대앞 대안공간 루프에서 12일까지
대안공간 루프 전시장에서 만난 배종헌 작가. 작가의 뒤로 그의 대구 작업실 인근 서민촌 골목길 담벼락의 빛바랜 이미지들을 실물 크기대로 옮겨 그린 대작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저 담벼락을 보는 순간 압도당했어요. ‘아, 절경이구나’ 싶었어요. 바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대구에서 작업해온 화가 배종헌(54])씨는 최근 서울 홍대 앞 대안공간 루프에 차린 개인전 ‘고립여행’에 사람 키보다 높은 담벼락 그림을 내놓았다. 자신의 작업실이 있는 대구 수성구 범어동 동네 골목길 안쪽을 산책하다 낡고 해진 담벼락의 표면을 보고 감동받았고, 급기야 실물 크기대로 고스란히 떠내어 화폭에 재현한 것이다.

높이 3m를 넘는 이 그림은 수십년 세월 동안 도시의 매연으로 생긴 거뭇거뭇한 때와 노릿한 빛깔의 이끼 등이 낡고 금이 간 콘크리트 벽에 아롱진 담벼락 모습을 아크릴과 유화 물감을 겹쳐 바르면서 마치 전통 회화의 산수풍경처럼 묘사해 놓았다. 얼핏 보면 지저분한 도시 주택가의 뒤 풍경 같지만, 작가는 이 담벼락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미지의 위안을 받았다고 말한다.

“지난 수년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사람들이 고립된 채 힘든 시절을 견디며 보내지 않았나요. 이 역경 속에서, 과거 산업화 시대 한국이 험한 시간을 버텨내면서 그 세월의 흔적들을 아로새긴 변두리 골목길 담벼락의 모습들이 저 같은 누군가에겐 위로와 힘을 주는 산수화와 다를 바 없는 비경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고립여행’ 전은 여러모로 특이한 얼개의 작품 마당이다. 대표작인 대형 담벼락 회화 앞에는 그의 작업 소재가 된 담벼락을 발견한 골목길 경로를 상자에 싸인 조각 그림들로 이어서 표시한 설치작품이 있다. 그 산책길 경로에서 본 담벼락과 주택들의 벽 표면에 있는 콘크리트나 길바닥 등에 있는 동식물 흔적들을 연속적으로 그린 작은 소품들로, 작가가 매일 걷는 골목길의 형상 자체를 입체적인 설치물로 드러낸 셈이다. 전시 또한 지난 2021년 팬데믹 기간 중 힘겹게 참여했던 영국 스코틀랜드의 현지 작가거주 작업공간 프로그램(레지던스)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전시장 들머리는 실제로 스코틀랜드 현지의 바위 틈새의 모습을 보면서 발견하고 떠올린 전통 산수의 형태를 캔버스에 담은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근현대 도시풍경 속에 서식하는 동식물과 건물 등의 사물이 어떻게 실제적인 미세 풍경을 형성하는지를 회화적으로 재해석해왔다는 점에서 작가는 지금 시대 새로운 정물화와 산수화의 경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12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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