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출신 스타트업 대표가 롯데를 상대로 싸움에 나선 이유
[IT동아 권택경 기자] “이번 일로 주변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꼭 정의구현 해달라’는 응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난 알고케어 정지원 대표가 남긴 말이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알고케어는 현재 롯데헬스케어로부터 아이디어를 탈취당했다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투자 협의나 거래 과정에서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탈취당했다고 의심할 만한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는 극소수다. 이번 사건에서 정 대표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맞설 수 있었던 건 법조인이라는 배경이 적지 않은 힘이 됐다. 정 대표는 서울대 학부, 서울대 로스쿨,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의 엘리트 법조인이다.
법조인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정 대표가 2019년 설립한 알고케어는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솔루션 ‘나스(NaaS, Nutrition as a Service)’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오는 3월 출시되는 이 솔루션의 핵심이 되는 게 영양제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기기 ‘뉴트리션 엔진’이다. 개인 의료 데이터, 문진 결과 등 앱에서 개인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분석해 딱 필요한 만큼 영양제를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먹듯 먹을 수 있게 하는 기기다.
알고케어의 솔루션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2020년부터 내리 3년 연속 수상이다. 하지만 올해 CES는 성과를 자축하는 대신 알고케어를 지난 2년 동안 괴롭혔던 불안감의 실체를 마주하는 자리가 됐다.
롯데헬스케어는 같은 행사에서 ‘필키’라는 이름의 영양제 분배기(정량 공급기)를 선보였다. 롯데헬스케어의 헬스케어 플랫폼인 '캐즐'과 연동해 개인 맞춤형 영양제를 제공하는 기기다. ‘롯데헬스케어 전시관에서 같은 제품을 봤다’는 관람객들 반응을 접한 뒤 전시관으로 찾아간 정 대표는 필키를 보자마자 ‘우리 제품을 베꼈다’고 확신했다.
“투자 논의하며 사업 정보 편취”
지난 2021년 9월, 알고케어는 투자 협의를 위해 롯데벤처스 관계자와 만났다. 이 자리에는 현재 롯데헬스케어 사업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롯데지주 신성장3팀 우웅조 상무가 동행했다. 당시 롯데는 그룹 차원에서 헬스케어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롯데헬스케어 설립을 준비 중이었다. 2010년 무렵부터 헬스케어 사업에 몸담았다는 우 상무는 롯데지주가 헬스케어 사업을 위해 영입한 인사였다.
알고케어와 롯데 측은 이후 10월까지 몇 차례 투자 및 협업을 논의했지만 결국 결렬됐다. 알고케어는 이 과정에서 롯데헬스케어가 사업 노하우와 아이디어, 전략 등 사업 정보를 편취했다고 주장한다.
정 대표는 롯데 측이 미팅 당시부터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사업 정보를 요구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관심과 열의로 느껴졌지만 갈수록 의아함으로 변했다. 정 대표는 “민감한 정보는 말하기 곤란해하면 더 이상 묻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만, 롯데 측은 끝까지 물어보더라”며 “돌이켜 보면 베껴가려고 그랬구나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 측은 투자 협의 및 협업 논의 단계에서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사업 정보를 확인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결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고케어의 의아함이 의심으로 구체화될 수 밖에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롯데 측이 자체 제품 제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영양제 디스펜서의 사업 적법성을 국민 신문고에 문의할 때 알고케어 제품을 참고 자료로 첨부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알고케어는 롯데 측에 항의했고, 롯데 측은 사과 후 사진을 교체했다. 롯데 측은 그러면서 알고케어의 밀폐 용기(카트리지)를 따라 할 생각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설명을 위한 참고 자료로 썼을 뿐, 알고케어의 모델을 따라 할 의도는 없었다”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아이디어 탈취” vs “보편적 아이디어”
알고케어는 밀폐된 용기를 디스펜서와 결합하는 구조, 용기의 구조와 원리, 영양제를 토출하는 방식 등에서 알고케어의 제품과 롯데헬스케어의 제품이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알고케어의 제품은 영양제가 들어있는 용기에 토출 장치와 정보 식별을 위한 매체(메모리 칩)에 달린 뚜껑이 결합된 형태다. 롯데헬스케어 제품 또한 영양제가 담긴 용기에 토출 장치와 정보 식별을 위한 매체(RFID)가 달린 뚜껑이 결합된 형태라는 점에서 같다. 디스펜서에 용기를 장착할 때 올바른 방향으로만 꼽을 수 있도록 한쪽에 돌기가 나와 있는 디자인도 유사하다.
다만 용기의 세로 길이나 영양제 제형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알고케어 제품은 복용량을 미세 조정하기 용이한 4mm 크기 제형으로 제공되는 반면, 롯데 제품은 일반 시중 알약 정도의 크기다.
알고케어는 아이디어 탈취가 명백하다고 보고 공정거래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롯데헬스케어를 고소할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에도 이번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신고한 상태다.
롯데헬스케어는 앞서 지난해 12월 분쟁에 대비해 알고케어의 특허에 대한 소극적 권리확인 심판을 특허청에 청구하기도 했다. ‘알고케어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음을 확인해달라’는 취지다. 하지만 알고케어는 해당 특허는 쟁점과는 무관한 특허이며, 이번 사태는 특허 이전에 아이디어 탈취 문제라는 입장이다.
지난 2021년 개정된 부정경쟁방지법은 아이디어도 특허나 영업비밀처럼 명시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관건 중 하나는 보편성이다. 동종 업계에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이디어라면 아이디어 탈취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헬스케어는 영양제 디스펜서는 해외에서는 보편화된 아이디어이며, 용기 디자인도 특별할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해외 기업 및 스타트업들은 영양제나 알약을 소분해 토출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였으며, 시판 중인 제품도 있다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그 사례 중 하나가 미국 스타트업 히어로(Hero)의 알약 디스펜서다.
하지만 히어로의 제품은 시중 일반 영양제나 알약을 밀폐되지 않은 내부 보관 용기에 부어서 사용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알고케어 제품과도 롯데의 필키와도 차이가 있다. 알고케어는 롯데가 해외 사례로 제시한 제품 중에는 단순히 콘셉트만 존재하며 시판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도 있는 만큼 영양제 디스펜서가 보편적 아이디어라는 롯데 측의 주장에도 무리가 있다고 반박한다.
이에 관해 롯데헬스케어는 히어로와 같이 보관 용기에 붓는 방식을 선호했으나 내용물이 위생적으로 분배 및 관리되어야 한다는 식약처 응답에 따라 개별 포장 형태를 취했을 뿐, 알고케어의 카트리지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알고케어 제품이 기존 보편화된 디스펜서와 구분되는 특장점은 4mm 제형으로 성분을 미세 조정 가능하다는 데 있다. 알고케어의 카트리지 구조는 그 특장점을 구현하기 위한 요소일 뿐”이라고 말했다. 알고케어 제품의 고유성은 4mm 제형, 잔량 확인 등 고도화된 기능에 있는데, 롯데 필키는 이와 달리 해외에도 존재하는 디스펜서 수준의 기능만 제공하니 알고케어의 고유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해명이다. 이 관계자는 “롯데와 알고케어의 제품은 주 타깃층도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롯데헬스케어 측은 이번 사태가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알고케어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명에 필요한 증거와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라고도 밝혔다. 다만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협의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고 부언했다.
알고케어 정지원 대표는 높은 확률로 승소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시간과 비용은 대기업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싸움인 셈이다. 그럼에도 법적 대응에 나서는 건 이번 사건이 선례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정 대표는 “비슷한 사건을 겪을 스타트업들이 우리 사례를 보고 문제 제기 여부를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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