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장승을 사람들 곁으로…장승 명장 이재명
[KBS 창원] [앵커]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고 마을 이정표 역할을 하던 장승, 요즘은 만나기가 힘든데요.
사라지는 장승이 안타까워 장승을 기록하고 제작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승을 꿈꾸는 장인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장승을 깎는 사이 장승을 닮아가는 장인.
풍찬노숙하며 세월을 견딘 소나무가 그의 손끝에서 친숙한 장승으로 변신합니다.
["인자하신 할머니 상으로 해서 편안하게 이게 우리 민족들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들었던 장승의 모습이구나 대중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함안의 한 마을 입구.
주민을 대신해 장승이 인사를 건넵니다.
마을의 안녕과 풍농의 소망이 담긴 마을 지킴이.
이재명 씨는 이런 장승이 좋아 30년간 장승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재명/장승 명장 : "무한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지역민들의 삶에 대한 애환과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이 농축된 듯한…."]
공사장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소나무를 모셔와 장승으로 새 옷을 입히는 중인데요.
표정을 잡고, 갑옷 같은 껍질을 벗겨야 오래 가는 장승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무껍질도 좋긴 한데 빨리 썩어요. 껍질을 안 까면. 이렇게 만큼 자랄 때까지 그 인고의 세월들이 그대로 지금 나무에 그대로 표현된 거죠."]
나무의 질감, 세월이 담긴 나이테를 대할 때마다 장승을 깎는 손도 숙연해집니다.
나무 생김새 그대로를 드러낼 뿐, 장승을 깎는 데는 정형이 없습니다.
[이재명/장승 명장 : "무기교의 기교.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투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설프기도 하고. 또 무계획의 계획이라고 나무가 갖고 있는 본래의 모습 거기에 천착해서 작품을 하죠."]
전기톱 같은 동력을 거부하고 조상들이 했던 대로, 끌과 망치만으로 수작업을 고집하는데요.
끌질할 때마다 솔 향이 배고 송진이 맛으로 느껴질 만큼 익숙한 작업.
하회탈을 쓴 듯 웃거나 온화한 표정을 담는 이유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친근한 장승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외진 섬마을까지, 전국의 장승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그가 만난 것은 마을의 애환과 여전히 살아있는 공동체였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있을 건 다 있고 장승의 본래 투박한 모습들이.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마을 장승인데 객지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같이 풍악, 농악도 하고 이 장승은 정말로 대단한 장승이에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장승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장승을 깎을 때 나온 그루터기로 누구나 쉬어갈 쉼터를 만들고 바깥에서 노숙하던 장승을 실내로 들여왔습니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장승을 만날 수 있도록 지역 특산물도 장승에 담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법고창신. 실내로 들어와야지만 대중들이 보고 감상하고 느끼고 때로는 비판도 할 수 있고…."]
장승을 깎으며 발견한 나무의 무늬는 자연스럽게 목공예로 이어졌습니다.
자투리 나무로 하던 작업이 나무와 함께하는 일상으로 이어진 겁니다.
["사실은 장승 작업을 하기 전에는 나무의 결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을 몰랐습니다. 버려진 나무인데 실생활에 쓸 수 있는 하나의 그릇으로…."]
함안 장승문화예술학교를 만들고 장승축제를 연 것도 장승을 더 가까이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재명/장승 명장 : "자꾸만 없어져요. 우리 일상 주변에 내가 걷는 산보 길에 장승을 보고 길이 보존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한꺼번에 모아서…."]
["‘하루가 별보다 빛나는’, ‘어떤 것이 참 나인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그런 장승 작업이 제가 해야 할 작업이 아닌가."]
외딴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장승, 이름 모를 장승이 외로운 작업의 길잡이가 됐습니다.
KBS 지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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