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서 깔린 가족, 구조는 더뎌…눈폭풍 속 ‘골든타임’ 흐른다
콘크리트 더미 깔린 70살 노모
가족들은 곁에서 발만 ‘동동’
강추위와 폭우 등 구조 악조건
끝없는 여진에 생존자도 공포
삶과 죽음은 딱 한뼘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규모 7.8의 대지진이 튀르키예(터키)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 지역을 강타한 이튿날인 7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남부 도시 안타크야(안타키아)에 사는 누르귈 아타이는 <에이피>(AP) 통신 기자 앞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그의 노모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있지만, 무거운 콘크리트 더미를 들어올릴 중장비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콘크리트 더미만 들어올릴 수 있으면 엄마를 구할 수 있는데요. 우리 엄마는 70살이에요.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지진이 발생한 지 이틀째 오후가 되며 사망자 집계가 5천명을 넘어섰다. 푸아트 옥타이 튀르키예 부통령은 이번 지진으로 지금까지 3419명이 숨지고 2만534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또 무너진 건물 아래서 8천명 이상이 구조됐다. <시엔엔>(CNN) 등 외신들은 이와 별도로 시리아 내 사망자는 1602명, 부상자는 3648명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첫 강진 이후 규모 4.0 이상 여진만 100차례 이상 일어난데다 눈까지 내리는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탓에 구조 작업에 큰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12년 이상 이어진 ‘내전’으로 피폐해진 시리아인들은 최악의 강진에 이은 ‘여진’과 ‘추운 날씨’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6일 이번 지진으로 인한 희생자가 초기 집계(2천명)보다 8배 많은 1만6천명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이어, 7일엔 최대 2300만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캐서린 스몰우드 세계보건기구 유럽 지역 사무소의 긴급사태 책임자는 “불행히도 초기에 보고된 사망자와 부상자 규모가 앞으로 일주일 동안 계속 불어나는, 지진의 일반적인 현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이번에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들과 피해자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추운 날씨다. 지진을 앞두고 튀르키예와 시리아 일부 지역에선 눈폭풍이 불었다. 진원이 있는 튀르키예 동남부 도시 가지안테프는 7일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거친 날씨 탓에 시급히 이뤄져야 할 구조 작업이나 주민 대피가 늦어지고 있다. 주요 피해 지역으로 이어지는 튀르키예의 주요 도로 역시 얼음과 눈으로 덮였고, 인근 지역의 주요 공항도 지진 여파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진으로 도로 인프라가 망가져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과 중장비가 피해 지역까지 도착하는 데에 8~10시간이 걸린다고 전했다. 그로 인해 재해가 발생했을 때 구조의 ‘골든 타임’이라 불리는 72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고 있다.
튀르키예 남부 도시 오스마니예에선 폭우로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도시에 사는 에렌(39)은 지진이 덮칠 때 4층 건물의 2층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목숨을 구했지만, 아내와 16살 된 딸은 건물 더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한 전화 통화에서 “아이와 아내를 잃었다. 많은 이들이 아직 건물 더미에 있지만 구조대가 충분치 않다”며 울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지진으로 집을 잃은 가족이 거리에서 여진이 일어날 때마다 서로 부둥켜안고 밀착하고 있는 모습이나 남동부 도시 카흐라만마라시에서 거처를 잃은 주민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추위를 견디고 있는 모습을 전했다.
로저 머슨 ‘영국지질조사’ 명예 연구원은 “사망자가 수천명, 수만명까지 발생할 수도 있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며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잔해 속에 갇혀 있는 주민들의 생존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진 발생 지역의 지각 활동이 주변 단층으로 번져 나가는 게 확인되고 있다”며 여진이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1822년 이 지역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여진이 한해 내내 이어졌다.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바샤르 아사드 독재 정권과 반군 사이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상황은 더욱 참혹하다.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북부에는 애초 정부의 탄압을 피해 410만명의 피난민이 머물고 있었다. 남부 도시 홈스 출신으로 이들리브주 사르마다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60살 무함마드 알루시는 지진 당시 “집이 바다의 파도처럼 요동쳤다”며 “집을 빠져나오자마자 집이 쪼개졌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가 전했다. 같은 건물에 살던 다른 가족 중 일부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큰 국가적 재난에 맞닥뜨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지진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일주일 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12일 일요일 일몰까지 우리의 모든 국내외 대표 사무소에 국기가 게양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6일 소집된 유엔 총회에선 희생자들을 위한 1분간의 묵도가 이뤄졌다.
절망 속에서도 도움의 손길은 이어지고 있다. 6일 밤 사고 현장과 가까운 남부 아다나 공항으로 레바논과 루마니아에서 온 첫 구조대가 도착했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65개국에서 2600명 이상의 인력이 재해 지역에 파견됐다고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조기원 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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