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에서 확인한 생명연대의 감수성

한겨레 2023. 2. 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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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의 우연한 연결]돌이켜보면 우리도 키우던 닭이 밥상에 오르기 다반사였다. 닭 모가지를 비튼 아버지도 어제까지 모이를 주던 어머니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털을 뽑고 배를 갈랐을 것이다. 공장식 축산이 없던 시절 이야기다. 동물과 인간이 같은 마당을 쓰며 서로 돌보며 살던 어떤 시절의 이야기다. 밥상에 오르는 것들이 한 시절 더없이 찬란한 생명이라는 걸 잘 알던 시절의.
몽골 테렐지의 게르 풍경. 로드스꼴라 제공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몽골에 가게 됐을 때 가장 걱정한 건 게르에서 잔다는 거였다. 울란바토르와 카라코룸 이외의 지역, 다신칠렌, 테렐지, 홉스골에서는 게르에서 숙박할 예정이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게르는 어쩐지 퀴퀴하고 쑥쑥해 보였다. 먼지가 풀썩풀썩 나지 않을까, 비가 새지 않을까, 연통에서 그을음이 나오지 않을까, 마음이 심란했다.

기우였다. 게르 안은 놀라울 정도로 쾌적했다. 안온하고 포근하지만 초원의 소리와 습도와 움직임은 다 느껴졌다. 안과 밖의 경계는 분명하지만 동시에 무화되기도 했다. 감각이 다층적으로 열렸다. 집이라기보다는 아아주 거대한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청의 황제들이 베이징의 황금궁전에 살다가도 여름이면 초원의 게르에서 머물렀다는 문장이 비로소 이해됐다. 야만의 습속을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야생의 감각이 푸릇푸릇 살아나는 초원이 그리웠던 게다. 게르에서 생활하며 비로소 내가 얼마나 토착농경민의 삶에 물들어 있는지, 아니 그 방식밖에 모르는지도 알게 됐다.

게르는 조립식이다. 여름 목초지에서 겨울 목초지로 이동할 때 게르는 해체돼 옮겨지고 다시 지어진다. 집을 늘리고 살림살이를 불려가는 건 정착해 사는 사람들의 욕망이었구나, 축적하고 증식하는 디엔에이(DNA)가 없는 인류도 존재했구나.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고 보니 유목민들이 문자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다. 책은 얼마나 무겁고 부피가 큰 짐인가. 문자와는 다른 전승방식을 사용하고 개발했을 이들의 이야기를 몽골에 오지 않았더라면, 게르에서 자지 않았더라면 몰랐으리라.

게르 안에서 버터차를 끓이는 모습. 로드스꼴라 제공

로드스꼴라 학생들과 몽골에서의 첫 일주일을 다신칠렌에서 보냈다. ㈔푸른아시아가 2013년부터 진행하는 ‘희망의 숲 프로젝트’에 참여해 나무 심는 작업을 했다. 몽골에는 나무 심는 문화가 없었다고 한다. 강수량과 고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초원과 스텝지역, 사막지역, 삼림지역이 나뉘고 사람들은 풀밭을 따라 양 떼를 방목하며 살았다. 국토 80%가량이 목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라 유목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기후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최근 10년 새 몽골은 급격하게 사막화되고 있다. 강 887개, 호수 연못 1166개, 시내 2096개가 사라지고 식물종의 70%가 멸종하는 상황이라 한다. 유목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도시로 가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자동차도 에어컨도 냉장고도 사용하지 않는, 어떻게 보자면 탄소배출을 가장 적게 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세계 평균기온이 0.8도 오르는 동안 몽골의 평균기온은 2.1에서 2.3도 올랐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날이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황사가 심해지면 공기청정기를 사고 장마가 이어지면 건조기로 빨래를 말리고 종종 비행기를 타고 쾌적한 곳으로 날아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삶이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몽골에서 학생들은 환경정의를 매우 잘 이해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국가 간 경계를 넘어 국제적 연대와 공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모두 동의했다. 몽골 초원이 사막화되는 건 몽골 사람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 피해를 보는 걸 현장에서 보면서 국가안보를 넘어서는 인간안보(Human Security)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명안보(Life Security)의 감각이 필요한 시대라는 의견도 개진했다.

다신칠렌에서의 마지막날은 마을 잔치를 열기로 했다. 로드스꼴라 학생들을 환대해준 마을 주민들과 같이 놀던 동네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준비한 행사다. 잔치를 위해 양을 한마리 잡기로 했다. 양고기는 몽골 사람들의 주식이다.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지 않기에, 중국에서 야채를 수입하기 전까지 야채는 그야말로 귀한 식재료였다. 잔치 전날 나는 로드스꼴라 학생들에게 양이 죽는 과정을 ‘목격’하자고 제안했다. 한 생명이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지, 그 생명이 어떤 절차와 경로를 거쳐 내 몸으로 오는지 전 과정을 곰곰이 들여다보자고 했다. 학생들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식당 근처로 가자 복슬복슬한 양 한마리가 나무에 묶여 있었다. 학생들이 풀을 주려고 가까이 가자 질겁을 하며 울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묶이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예감한 듯했다. 마을 주민이 양을 데리고 마당으로 왔다. 우리는 조용히 둘러섰다. 양을 죽이는 현장을 보는 건 나도 학생들도 처음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지켜보자고 했지만 사실 나는 눈을 감았다. 배가 보이게 눕힌 다음 칼로 가슴 부위를 째고 짼 부위에 손을 넣어서 대동맥을 꽉 움켜쥐면 즉사한다고 책에서 읽었다.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피를 한 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는 건 땅을 신성하게 여겨서라고 하지만 그 피로 순대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양이 죽고 해체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달궈진 돌과 함께 솥에 넣고 끓이는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몽골 전통 찜 요리인 허르헉(호르호그)이 완성돼 우리 앞에 도착했지만 학생들은 평소처럼 많이 먹지 못했다. 몽골 친구들이 웃으며 먹으라고 권했지만 다들 시늉만 했다.

양과 염소와 말과 개와 소와 낙타가 아주 오랜 세월 유목민들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닭과 돼지와 소는 농경민족들에게 익숙한 동물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집에서 닭을 잡던 시절이 있었다. 키우던 닭이 밥상에 오르기 다반사였다. 닭 모가지를 비튼 아버지도 어제까지 모이를 주던 어머니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털을 뽑고 배를 갈랐을 것이다. 공장식 축산이 없던 시절 이야기다. 동물과 인간이 같은 마당을 쓰며 서로 돌보며 살던 어떤 시절의 이야기다. 밥상에 오르는 것들이 한 시절 더없이 찬란한 생명이라는 걸 잘 알던 시절의.

몽골에서 양은 양껏 산다. 별문제 없이 대단한 근심 없이 양껏 초원을 누비며 사는 듯 보인다. 개는 당당하게 산다. 양을 몬다고 밥값을 한다고 기개가 대단하다. 말은 오오, 근사하다. 말을 탄 사람도 근사하다. 각자 있을 때보다 말을 타고 달릴 때 말도 사람도 두근, 가슴이 설렐 정도로 멋지다. 몽골 초원에서 사람과 동물은 삶이 다할 때까지 서로 의존하고 돌보고 존중하며 살아왔다. 영감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무심한 사랑으로 서로를 지켰다. 생명연대의 감수성을 회복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그렇게 살지 않았던 시절보다 훨씬 길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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