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인의 `樂樂한 콘텐츠`] 지상파 PD도 뛰어든 넷플릭스… 경쟁 대신 협력 택했다

김나인 입력 2023. 2. 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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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소속 장호기 PD, 넷플릭스 손잡고
추성훈·양학선 등 섭외해 프로그램 제작
비속어·문신 등 심의, 방송보다 자유로워
광고 줄어 걱정 커진 방송계 활로될 듯
'피지컬: 100' 메인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피지컬: 100'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피지컬: 100'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솔로지옥 시즌2' 메인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솔로지옥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파이터 추성훈, 체조선수 양학선,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등 국가대표를 포함한 유명인부터 산악구조대와 유튜버, 보디빌더까지 근육질의 남녀 출연자 10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승 상금은 3억원. 천장의 봉에 오래 매달려 버티기부터, 1대 1로 겨뤄 공 빼앗기, 팀별로 모래주머니 옮기기 등 매번 미션이 달라진다. 상대를 고르는 것은 자유. 체급과 성별을 막론하고 무자비한 결투가 벌어진다.

마치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피지컬: 100'은 지난달 2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서바이벌 예능이다. 공개 직후 5일간 전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많이 본 TV쇼 부문 7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지상파 PD의 넷플릭스 데뷔

비속어나 문신까지 가감 없이 내보낸 이 프로그램 기획자가 지상파 MBC 교양국 소속 장호기 PD라는 점이 반전이다. 'PD수첩', '먹거리X파일' 등으로 유명한 장 PD가 직접 일면식도 없는 넷플릭스 예능팀에 메일을 보내 피지컬: 100 제작을 하고 싶다고 기획안을 제출했고, 넷플릭스가 전폭적으로 제작 지원을 결정해 빛을 보게 됐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 '심야괴담회' 등을 제작한 예능 전문 제작사 루이웍스미디어도 MBC와 공동 제작에 나섰다.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지원한 오리지널 콘텐츠인 만큼 TV채널이나 지상파가 운영하는 OTT '웨이브'에서 방영되지 않는다. MBC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파트너로 나선 셈이다.

경쟁 관계였던 지상파와 종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지상파, 종편 프로그램이 OTT에, OTT 프로그램이 지상파와 종편에 얹어지는 것에서 나아가 OTT 오리지널 콘텐츠에 지상파가 제작 파트너를 맺는 등 협업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콘텐츠 제작·협력 불문율 깨져

지상파와 종편이 넷플릭스 등 OTT에 콘텐츠 제작 파트너로 나선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등으로 유명한 김태호 PD가 당시 MBC 재직 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먹보와 털보' 연출을 맡았으며, 무인도에 갇힌 남녀 10명이 교류하는 과정을 그린 넷플릭스의 데이팅 리얼리티쇼 '솔로지옥'은 JTBC가 시작 컴퍼니와 공동 제작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솔로지옥2'는 OTT 화제성 쇼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국내 OTT에도 지상파가 콘텐츠 제작 파트너로 나서고 있다. 자사와 관련 있는 채널에만 콘텐츠를 제작하던 불문율이 깨진 셈이다. 지난달 27일부터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예능 '만찢남'은 2주 연속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에 올랐다. 웹툰 작가들이 만화 속 스토리를 재현해 생존하는 콘셉트의 만찢남은 MBC 산하 디지털콘텐츠 총괄 조직인 MBC D.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가 제작했다. 웨이브는 2021년 MBC에 편성했던 두뇌 서바이벌 '피의 게임' 시즌2를 단독 공개한다. 시즌1에 이어 현정완 MBC PD가 연출을 맡는다.

◇막대한 제작비 부담에 협력대상 확대

이같이 지상파 산하에 소속된 자회사인 스튜디오나 PD가 제작 주체를 늘려가고, 같은 콘텐츠가 여러 플랫폼을 통해 송출되는 것도 흔한 사례다. 일각에서는 영향력 커진 글로벌 OTT에 지상파나 종편이 콘텐츠 하청기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다만, 지상파와 종편, OTT의 경계가 흐려져 협업 파트너가 되는 흐름은 어려워진 방송 환경 때문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세계적인 경기둔화로 기업들이 광고를 줄이면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 방송사와 OTT 플랫폼 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시리즈물 기준 제작비는 편당 10억~20억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 와중에 거대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 또한 경기침체로 콘텐츠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지만, 국내 콘텐츠 투자에는 아직 인색하지 않은 편이다.

제작비나 인력 유출 등으로 인해 고민이 있는 지상파나 종편 입장에서는 자사 플랫폼에 콘텐츠를 올릴 수는 없어도 넷플릭스 등 OTT와 협업해 이들을 창구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지상파나 종편 PD들의 경우 글로벌 OTT로 진출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피지컬: 100을 제작한 장호기 PD는 "지상파 방송국의 내부 조직원으로서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연출자에게 큰 무대라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문을 두드려보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방송 닮아가는 OTT, OTT 같아지는 방송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서는 기존 지상파나 종편보다 영상물 심의 기준도 낮아 비교적 제작 환경도 자유롭다. 콘텐츠 업계 한 관계자는 "지상파, 종편 등 방송국이 자체 제작한 드라마를 자사 채널에 방영하면서 OTT한테 판매해 해외 배급을 노리는 경우도 있지만 PD나 지상파 자회사 등이 개별적으로 넷플릭스 등과 협업해 투자를 받아 OTT 콘텐츠로 제작하기도 하는 사례도 많다"며 "다양한 방식으로 지상파, 종편, OTT의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 관계에서 완전한 동반자가 되기는 어렵지만, 방송은 OTT를 닮아가고 OTT는 방송을 닮아가는 흐름이 대세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출범 초기 예능이나 드라마를 몰아보는 '빈지뷰잉'을 내세우고 광고가 없다는 점을 강점으로 삼은 넷플릭스 또한 최근 시즌제로 콘텐츠를 공개하고 광고요금제를 출시하는 등 기존 방송을 닮아간다.

콘텐츠 업계 한 전문가는 "OTT 등장 초기와 같이 지상파와 종편, OTT가 서로를 경쟁 관계로만 보고 다른 편이라고 선을 긋는 흐름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면서 "기존 방송·미디어의 제작 관행이나 시장의 문법들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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