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가 넷플릭스에 보낸 메일, '피지컬100'의 시작
[간담회] 넷플릭스 '피지컬 100' 연출한 장호기 MBC PD
장PD "지상파 위기 돌파할 게 필요하단 생각, 항상 해왔다"
"'완벽한 몸이란' 물음, 내가 갖고 있던 몸에 대한 편견 깨"
'혼성 대결'에 "어떠한 구분 없이 이뤄져, 동의 받아 진행"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2021년 10월18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장호기 MBC PD로부터 메일이 한 통 왔다. 기획안이 첨부돼 있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을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예능은 예능PD가 방송사 예능국에서 만드는 게 보통이라고 생각했지만, 기획안을 읽을수록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기획 의도가 굉장히 명확했다. 나 역시 예능PD 출신인데도 다른 기획안에서 보지 못한 톤이 기획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넷플릭스 예능프로그램 '피지컬 100'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유기환 넷플릭스 매니저가 한 말이다.
유기환 넷플릭스 매니저는 “기획안을 보고 2주 후 답변을 보내면서 제작팀을 꾸려달라고 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제작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예능 중 가장 큰 스케일의 제작 투자가 결정됐다. 피지컬 100이 공개된 후 글로벌에서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피지컬 100은 넷플릭스에서 지난달 24일 공개한 서바이벌 게임 예능이다. 강력한 피지컬의 몸을 찾기 위해 스스로 '최강 피지컬'을 자부하는 100인이 벌이는 게임이다. 공개 이후 넷플릭스 TOP10 비영어권 시리즈, 세계 33개국 TOP 10에 진입하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장호기 PD “지상파 위기 돌파 필요하다는 생각, 항상 해와”
피지컬 100은 특히 지상파 방송인 MBC가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하고 성공한 사례로 관심 받고 있다. 7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어떻게 MBC PD가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특공대 출신인 장호기 MBC PD는 몸과 건강에 관심이 많다면서 기획서를 만들게 된 계기를 밝혔다. 장 PD는 “코로나19 시기, 많은 이들이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됐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에 관심을 가졌다”며 “보디빌더 등 다양한 몸에 관한 대회들도 관심 있게 본다. 대회들을 보면서 '왜 저 사람이 우승이지? 내가 보기엔 다른 참가자 몸이 더 우승자에 가까운데' 같은 생각을 자주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최고의 몸'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져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 PD는 “'지상파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나 역시 위기를 돌파할 것이 필요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며 “하고 싶은 기획이 있었고, 이것을 TV로만 방송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생각했다. 잘 만든 프로그램을 갖고 시청자들에게 '이리 와서 보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시청자들이 이미 많이 계신 곳에 가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장 PD는 “예민한 문제일 수 있지만 MBC는 내부에서 이런 위기를 돌파할 의지는 항상 보여왔다. 박성제 MBC 사장 역시 'MBC는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신년사에서 던졌다. 그러나 구체적 제도나 지원에 대한 이야기는 논의 단계였다”며 “그렇기 때문에 넷플릭스에 먼저 제안을 해본 것이다. MBC에는 이미 축적된 제작 인프라와 뛰어난 인재들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런 좋은 콘텐츠를 시작할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밝혔다.
MBC 'PD수첩' 등을 연출하던 PD가 넷플릭스 예능을 연출하며 경험한 차이에 대해 장PD는 “방송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넷플릭스에선 만드는 기간도 확실히 길었고, 비주얼적 퀄리티나 화질, 음질에 대한 요구치가 기본적으로 굉장히 높았다. 방송은 아무래도 빠른 시간 내 제작해야 하는데 이런 점들이 다르긴 했다”며 “넷플릭스는 확실히 최상 퀄리티로 만들 수 있게 지원해주고, 기다려 준다는 점에서 제작자로서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완벽한 몸'에 대한 물음, 내가 갖고 있던 몸에 대한 편견 깨”
장 PD는 기자간담회 내내 '리얼리티'를 강조했다. 특히 격투기 선수 추성훈과 소방관 신동국의 대결은 격투기 후배인 신동국의 제안으로 실제 종합격투기 룰로 진행됐고, 승부가 끝난 후에도 예의를 갖춘 인사를 나누는 등 스포츠 정신이 드러난 승부로 꼽힌다. 이런 승부를 연출했거나 지시 사항을 준 것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장 PD는 “출연자들에게 게임에 대한 정보를 주거나 미리 알려드린 건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승부가 끝나고 서로 인사하세요' 같은 지시는 없었다”며 “그럼에도 많은 참가자들이 게임이 끝나는 순간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는 감정, 서로를 존중한다는 감정이 느껴졌고, 경기가 끝날 때마다 모두가 박수 치고 격려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피지컬 100 연출 가운데 호평 받은 부분은, 첫 게임을 '매달리기'로 결정하는 등 그저 몸이 큰, 힘이 센 사람에게 유리한 룰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첫 스테이지에서도 단순한 근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스피드와 전략으로 승부를 보려는 참가자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게임을 설계했다.
장 PD는 “프로그램 기획 의도가 다양한 신체를 모아놓고, 그 가운데 완벽한 피지컬을 찾겠다는 주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에서 승부가 어느 한 포인트로 집중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며 “게임은 여러 지표, 즉 순발력과 밸런스, 유연성, 근력 등 다양한 지표를 누가 균형 있게 가지고 있느냐를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다. 참가자 사이에 체급이라든지 인종, 성별 차이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똑같이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피지컬 100은 '완벽한 몸이란 무엇인가'를 묻겠다는 기획 의도 아래에서 대결이 진행되면서 우리가 갖고 있던 편견이 깨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장 PD는 “나 역시 촬영하면서 스태프분들과 승부를 예측했는데 굉장히 많은 편견이 깨졌다. '여성이라면 이렇게 할 거야', '이런 체격이라면 저렇게 할 거야', '특공대면 이렇게 행동할 거야' 같은 편견을 깨뜨리는 대결을 보면서 '나 역시 몸에 대한 편견이 많았구나' 깨달았다”며 “오래 남을 것 같았던 참가자가 금방 탈락하는 장면 등을 보면서 (소위 그림을 중요시하는) '방송쟁이'로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많은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PD는 “처음에는 우승을 노리고 오셨던 출연자 분들이 게임이 진행될수록 '나 같은 몸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예를 들어 '영화 안무가의 몸은 이렇다', '크고 통통한 몸도 이렇게 날렵할 수 있다', '근력이 있어도 유연할 수 있다' 등 자기 몸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열정이 느껴졌다. 이런 열정을 느끼면서 우리 프로그램은 이 방향으로 가면 되겠다는 확신도 얻었다”고 전했다.
그는 “정말 완벽한 피지컬 하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 강력한 피지컬이 있다. '완벽한 몸'이라는 개념도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좋겠다는 게 저와 출연자들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혼성 대결' 논란… 제작진 개입 있어야 했다는 지적
“어떤 구분 없이 이뤄진 대결, '룰' 동의 받아 진행”
혼성 게임이 이뤄지면서 남성 참가자가 근력으로 여성 참가자의 명치를 누르는 모습 등이 방영되면서 제작진이 최소한의 룰을 정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보디빌더 춘리와 격투기 선수 박형근의 대결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관련 기사: '피지컬 100', 운동 예능의 변화와 공영방송의 고민]
장 PD는 “일단은 프로그램 기획 자체가 (성별을 포함해) 어떤 구분 없이 완벽한 몸을 찾는 과정, 그 의도에 맞춰 설계가 됐다. 이런 콘셉트를 각 출연자에게 설명 드리고, 동의한 분에 대해서만 진행이 됐다”며 “또 경기를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논란에 휩싸인) 출연자들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셨고 룰에 동의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봐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장 PD는 “제작진이 룰에 대해 어디까지 개입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시청자들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디테일한 룰이 현장에 있었으나 자막 등에는 최소한의 정보만 드리는 것으로 연출했다”며 “현장에서는 게임마다 정해진 룰을 설명드렸고, 경기를 중단하고 경고한 후 다시 시작한 경기도 많았다. 각 게임에 심판 역할을 하는 분들도 모두 있었다. 다만 후반 작업을 통해 심판을 지우기도 했다. 방송에서 보시는 것보다 훨씬 디일한 룰이 있었고 제한하면서 진행을 해나갔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참여연대, “입막음소송 확인하러” 대통령실 소송현황 청구 - 미디어오늘
- ‘국민연금 10년 수익률 꼴찌’ 한국경제 보도 “나쁜 통계 억지로 만들어" - 미디어오늘
- [영상] 박홍근 “이상민 장관 문책, 정치적으로 불리해도 계산기 내려놓겠다” - 미디어오늘
- 이재명 출석일자 정하자 검찰 백현동 특혜 대대적 압수수색 - 미디어오늘
- 한국기자상 대상 MBC 기자 “국익 들먹이고 보도 폄훼한 정치인들 느끼는 바 있길” - 미디어오늘
- 머니투데이 관계사 이로운넷 직원 전원 퇴사 - 미디어오늘
- 한동훈에게 대법원 판결 중요하냐 물었던 '짤' 속에 숨겨진 맥락 - 미디어오늘
- ‘윤석열 대통령 회의 사전 리허설’ YTN 돌발영상 심의 갑론을박 - 미디어오늘
- 안윤 연대 발언 대통령실 분노에 "부하 취급하는 것 아니냐" - 미디어오늘
- 서울지하철 2호선에 EBS ‘지식채널e’ 영상이 나오는 이유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