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전속고발권 무력화···기업들 "과잉처벌 가능성 커져"

세종=박효정 기자 2023. 2. 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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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고발요청 남발]
☞전속고발권 : 공정위 고발해야 檢 공소제기 가능
◆검찰發 압박에 고달픈 기업들
檢, 공정위 요청 前에 조사 빈번
기존 사건보다 고발범위 확대해
과도한 기업 옥죄기에 부담 가중
"尹정부 기조와 거꾸로 가" 지적
[서울경제]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 부처가 아닌 경제 사법기관입니다. 공정위와 법무부·검찰은 책임을 위반하는 반칙 행위를 바로잡아 자유로운 시장과 공정한 질서를 지키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은 뒤 이같이 주문했다. 애초 시장에서는 공정위가 법무부·법제처와 함께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하는 것에 대해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공정위는 통상 금융위원회 등 경제 부처와 함께 업무 보고를 진행한다. 공정위가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와 함께 대통령 업무 보고를 한 것은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에서 공정위가 ‘검찰 2중대’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실제 최근 공정위와 검찰의 관계를 보면 이런 우려가 터무니없는 게 아님이 일부 드러난 모양새다. 지난해 검찰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한 건수는 10건으로 2013년 의무고발요청제 도입 이래 사상 최다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인 2018~2021년 4년간 검찰이 공정위에 고발 요청을 한 건수를 합친 것(8건)보다도 많은 수치다.

특히 검찰은 이 과정에서 고발 범위도 넓혀나가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한국타이어의 계열사 부당 지원 사건을 심의하고 ‘법인 고발’ 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이 조현범 회장 고발을 요청해 그 대상이 확대됐다. 이 외에 검찰은 현대제철 등 14개 철강 업체의 철근 입찰 담합 사건에서도 공정위가 고발한 경영진 외에 다른 경영진 4명의 고발을 추가로 요청했다.

검찰이 공정위의 고발 결정 이전부터 수사에 나서는 것도 전속고발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사례 중 하나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1일 한샘(009240)·현대리바트(079430)·에넥스(011090)·넥시스·우아미 등 가구 업체 1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신축 아파트에 붙박이 형태로 들어가는 ‘특판 가구’ 납품사를 정하는 과정에서 담합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공정위는 현재 같은 담합 사건을 조사 중이다.

검찰의 과도한 수사는 형벌 만능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애초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을 부여한 것도 기업의 경영 활동 위축을 막기 위해서였다. 헌법재판소는 과거 결정문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는 기업 영업 활동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무분별하게 형벌을 선택한다면 기업은 불안감을 느끼고 자연히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그러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것도, 기업 활동을 조장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거래 사건의 특성상 정교한 경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도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를 조사하려면 우선 시장 획정이 필요하고 위반 사실이 있더라도 기업 간 경쟁 상황,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제재 수위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경제 단체 관계자는 “경제 사건의 특성상 전문적인 시장분석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정위가 존재하는 것인데 검찰이 들어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봤다.

이러한 경제 사건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과도한 수사가 이뤄질 경우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중소·중견기업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중견기업의 사법적 대응 능력은 아무래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은 공정위가 조사를 마친 뒤 1심에서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해 기업이 안심하고 있으면 검찰이 딴지를 걸어 이중으로 조사를 받는 꼴”이라며 “기업을 과잉 처벌하지 못하게 형벌 규정을 줄인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도 거꾸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협의회를 정례화하는 등 공정위와 법무부의 표면적인 스킨십 강화에도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현 정부에서 힘이 실린 검찰이 공정위에 원하는 것을 관철하는 식으로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기업의 한 임원은 “법 집행이야 필요하지만 (공정거래 분야에서) 검찰의 적극적 공세가 염려되는 측면이 있다”며 “가뜩이나 기업이 어려운 환경이지 않느냐”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떨어졌던 공정거래 사건의 검찰 기소율은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2015년 서울중앙지검에 공정거래 수사 전담 조직을 신설한 데 이어 올 하반기 대검에 전담 부서(반독점과)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공정위와 검찰 간 관계와 전속고발권을 두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양측의 업무가 빨리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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