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실리콘밸리 같은 환경 만들어주면 한국 인재들 10배 성과낼 것"

이완기 기자 2023. 2. 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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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
'제2 벤처붐' 1년새 분위기 반전
정부 모펀드 예산삭감 등 악재 속
민간 모펀드 도입 위해 TF 구성
국내외 자금 유치해 충격 최소화
한국 엔지니어 수준 충분히 높아
최소한의 규제 빼고 다 하게 해야
창의적 활동으로 혁신 성장 가능
유웅환 한국벤처투자(KVIC) 대표. 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실리콘밸리는 수많은 기술기업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진원지, 많은 나라들의 지향점이라는 의미를 담아 내고는 한다. ‘제 2의 실리콘밸리’라고 스스로 칭한 곳들이 생겨나고 본류를 따라가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해 나가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판교·강남·성수 등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곳에서 많은 신생 기업들이 태어나고 새로운 생각들이 모여들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유웅환(사진) 한국벤처투자(KVIC) 대표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KAIST에서 전기·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딴 그는 서른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였던 인텔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10년간 그곳에서 일했다. 수석매니저까지 올라섰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로서는 흔하지 않는 경우라는 게 많은 이들의 평가다. 그는 스스로 개척해 나아갔고 뜻하던 바를 이뤄냈다. 이런 경험 덕에 40대가 되던 시기 삼성·현대 등 국내 굵직한 기업에서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다. 때로는 정치권에서도 진영을 가리지 않고 호명되고는 했다.

그는 이제 50대로 접어들었고 지난해 9월부터 한국벤처투자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자신이 청춘을 보냈던 실리콘밸리를 여전히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국내 벤처·창업 생태계를 그곳에 맞춰 더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투자 빙하기’ 체질 개선 계기 삼아야=한국벤처투자라는 조직의 중요성이 부각할 시기에 그는 수장으로 올라섰다. ‘제 2의 벤처붐’이라 불릴 정도로 초호황을 누리던 업계는 예상보다 빠르게 돈줄이 마르며 1~2년 만에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 정부는 새로운 방침을 내세워 정부 지원 모펀드 예산도 줄였다. 벤처 시장에서는 큰 우려와 함께 한국벤처투자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유 대표는 소통의 필요성이 커진 시기라 보고 최근 밴처캐피털(VC) 등 업계와 만남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벤처투자 업계가) 많이 힘들어하죠.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정학적 이슈, 금리 인상 등이 겹치며 어려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잖아요.” 유 대표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이번을 잘 넘기면 보다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내비쳤다.

한국벤처투자는 악조건 속에서도 고비를 넘기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내놓을 계획이다. 유 대표는 “약간의 조정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어쨌든 이런 시기에 어떻게 연착륙을 이끌 수 있느냐. 그게 한국벤처투자가 노력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민간과 해외에서 자금을 끌어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방침에 따라 최근 관련 조직도 새롭게 꾸렸다. 민간 모펀드 태스크포스팀(TFT)이 대표적인 곳이다. 유 대표는 “모태펀드는 한정된 자원을 고려해 정부 예산 출자가 필요한 분야에 투자를 집중할 예정”이라면서 “벤처투자 시장의 동향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모태펀드 신규 예산과 회수 재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 모펀드 TFT 신설은 민간 중심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는 조직 개편의 일환”이라며 “TFT를 통해 국내외 민간 모험 자본을 유치할 계획이며 연기금·은행·대기업 등 벤처에 관심 있는 출자자들이 자금 유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여기에 해외 VC 글로벌펀드, 국가 간 공동펀드 등으로 해외 자금 유치에도 전력을 다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도 이어갔다. 침체기를 체질 개선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유 대표는 “추후 턴어라운드할 때 모멘텀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지금 준비해야 되는 것 같다”면서 “민간이 마음 놓고 창조적 파괴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규제 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한국도 실리콘밸리처럼···벤처 생태계 질적 변화 원해=“5~10년 전만 해도 벤처·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다들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렸던 그런 시대가 있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인식의 전환은 좀 많이 된 것 같아요. 그만큼 전체적으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질적인 향상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리콘밸리가 롤 모델이에요.”

한국벤처투자 대표의 임기는 3년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유 대표는 한국의 벤처 생태계를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기를 희망한다. 지향점은 그가 사회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실리콘밸리다. 그곳에서 젊은 시절 10년간 배웠던 것들을 지금은 한국에서 적용해보려 한다.

그렇다면 유 대표가 그곳에서 느낀 것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그는 인적자원 수준은 한국이 더 높다고 했다. “인텔에 처음 갈 때 도깨비 같은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거죠. 한국 엔지니어들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요. 그래서 전 인재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 인재들이 더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자리 잡은 구시대적인 문화만 바뀌면 우리의 성과는 더 뛰어날 것이라고 그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유 대표는 “미국과 같은 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지면 우리 인재들은 5배에서 10배가량 퍼포먼스가 그냥 올라갈 거라고 생각한다”며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뒷다리를 잡는 요소들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이게 우리의 큰 숙제”라고 말했다.

그는 규제 개혁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최소한의 규제를 제외한 허용 범위를 늘리는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 형식이 필수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소한 금지된 것만 제외하면 다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야 창의적인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죠. 그리고 거기에서 성공하면 크게 성과를 얻는다고 각인이 되면 벤처 육성 정책은 필요 없죠. 벤처 스타트업 생태계 자체가 혁신 성장 체제가 되는 거죠. 애플이 스스로 이노베이션(혁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과 같이 우리도 혁신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는 거죠.”

유웅환 한국벤처투자(KVIC) 대표. 오승현 기자

◇“혁신도 결국은 사람이 한다”=유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유독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가 쓴 2권의 저서 ‘사람은 사람의 꿈에 반한다’ ‘사람을 위한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다’에서도 어김없이 사람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는다. 그가 경험했던 실리콘밸리 혁신의 원천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패스트 팔로어’ 전략만으로 성과를 내던 시기가 이제는 없다는 생각에서 근본적인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 대표는 “조직에 속한 각 개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회사는 퍼스트무버가 될 수 없다”며 “혁신은 회사가 가진 자금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한국벤처투자 대표로 취임한 직후부터 ‘구성원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유 대표는 취임 직후 전 직원들과 식사 자리를 통해 여러 의견을 들어 왔고 조직 문화를 조금씩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 대표는 “회사에서 행복해진다는 얘기는 돈 많이 받고 충분히 놀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개인이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여건에서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장기적으로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는 게 행복의 요건”이라고 말했다. 개인과 조직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된 하나의 일화를 들려줬다. “인텔에서 처음 매니저가 됐을 때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강사가 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이런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매니저의 프라이머리 롤(주된 역할)은 ‘헬프 유어 피플 그로우(Help your people grow)’, 너의 사람을 성장시키는 게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거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직 관리, 인사 평가, 보상, 프로젝트 관리 같은 것보다 중요한 것이 구성원의 성장이라는 의미죠.” 유 대표는 “공공기관이라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면서도 “개인의 역량과 조직의 퍼포먼스가 연결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완기 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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