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10년 수익률 꼴찌' 한국경제 보도 "나쁜 통계 억지로 만들어"

박재령 기자 2023. 2. 7. 17: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익률 산정에 사용되는 기하평균 대신 산술평균 계산
통계 시점도 국민연금에 불리하게 구성… "악의적"
국민연금 '아마추어' 강조하는 보도 이면엔 '기업 이해관계' 있어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기금고갈', '월급 35% 날라간다' 등 불안 조장을 넘어 '국민연금 10년 수익률 꼴찌'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간 국민연금 수익률은 양호하다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에 파장은 컸다. 조선일보와 세계일보가 지난 6일 해당 통계를 근거로 국민연금을 비판하는 사설을 연달아 냈고 국민의힘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를 인용했다. '글로벌 꼴찌' 국민연금 통계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 한국경제 4일 기사 갈무리.
▲ 4일 한국경제 4면 기사.

한국경제는 4일 기사 <“日 보다도 낮다니, 이럴 수가”…'글로벌 꼴찌' 국민연금의 굴욕>에서 자체적으로 주요 글로벌 연기금 수익률을 종합해 통계를 냈다. 한국경제가 제시한 국민연금의 10년(2013년~2022년) 연평균 수익률은 4.99%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9.58%),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7.12%) 등 타국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한국경제는 “보수적인 운용으로 유명한 일본 공적연금(GPIF, 5.30%)보다 낮았다”며 “전문성보다 정치에 휘둘리는 기금운용 의사결정 시스템이 문제로 지목된다”고 했다.

충격적인 통계에 조선일보, 세계일보 등이 수치를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6일 사설 <수익률 '세계 꼴찌' 국민연금, 정치 외풍 휘둘린 결과>을 내 “역대 정권은 이런 지배구조에 근거해 국민연금을 자주 정치 도구로 활용해 왔다. 문재인 정부 때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한전공대 설립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정권 주문대로 움직였다”고 했고 세계일보 역시 7일 사설에서 “문재인정부는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노동·사회단체 추천 위원이 다수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이관하려고 해 '연금사회주의' 비판을 자초했다”고 했다.

▲ 6일 조선일보 사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류성걸 의원은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같은 통계를 인용, “국민연금 최근 10년 운용수익률은 연평균 4.9%로 세계 주요 연기금 중에 가장 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비전문가로 구성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고 했다.

통계 기본 지키지 않은 '허점투성'… “국민연금에 불리하게만 계산”

▲ 한국경제가 4일 국민연금 보도에 사용한 통계. 한국경제 갈무리.

'4.99%' 이 숫자는 한국경제가 자체적으로 계산한 숫자다. 국민연금은 2022년이 반영된 10년 연평균 수익률을 공개한 적이 없다. 한국경제는 보도에서 2013~2021년은 국민연금연구원 자료를 인용하고, 2022년은 9월말 기준 글로벌 SWF 자료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4.99%는 언급된 출처에서 각 연도별 수익률을 모두 더한 다음 10으로 나누면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계산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수익률 평균은 우리가 흔히 평균을 구하는 방식(산술평균)이 아닌 '기하평균'으로 구하는 것이 정확하다. 시가의 변동성이 심해 수익률 기준이 매년 달라지고 장기적인 예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종현 국민연금 상근 전문위원은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예를 들어 (시가가) 천원일 때 10% 버는 것과 나중에 만원일 때 10%가 다르다”며 “시가평가는 기하평균을 사용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단순하게 산술평균방식으로 수치를 잡아서 값 자체의 왜곡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 연도별 운영성과 개요.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갈무리. 한국경제는 2022년 수치로 가장 안 좋게 나온 9월 수치를 사용했다.

통계의 시점 구분도 악의적이다. 한국경제는 2022년 통계로 국민연금은 9월말, GPIF(일본)와 CPPIB(캐나다)는 3월 결산을 사용했다. 심지어 CalPERS(캘리포니아)는 6월 기준이다. 지난해 3월 이후 세계 시장 악화로 3분기 연기금 수익률은 급락한 바 있다. 즉, 1년 중 최악의 수치가 국민연금에 반영된 것이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22년 1분기 2.66%, 3분기 7.1%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CPPIB(캐나다)는 1분기 2.9%, 3분기 6.8%를 기록했다. CalPERS(캘리포니아)는 2분기 -11.3%, 3분기 15.9%다. 국민연금은 3분기의 안 좋은 수치를, CPPIB와 CalPERS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1, 2분기의 숫자를 반영했다.

실제로 국민연금 1분기 수익률(-2.66%)을 적용해 한국경제 방식으로 산술평균 내보면 10년 연평균 수익률이 약 5.4%가 나온다. 일본과 순위가 뒤바뀌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성과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기하평균을 내면 국민연금의 10년 연평균 수익률(2022년 3월말 반영)은 5.32%다. 한국경제가 제시한 4.99%보다 0.3%p 이상 높게 나온다.

원종현 국민연금 상근 전문위원은 “국민연금의 성과를 평가할 때는 절대적인 수익률이 아닌 위험대비수익률을 본다. 국민연금은 위험관리 부분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캐나다, 캘리포니아 연금은 10~20% 대의 마이너스를 보였고 반토막 나는 연금도 있었지만 국민연금은 -0.18%에 그쳤다. 비교 시점 연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통계는 달라지는데 국민연금에 불리하게만 통계를 구성한 것은 다분히 악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6일 통화에서 “애초에 국민연금은 엄청난 고수익보다는 안정성을 핵심으로 깔고 있다. 국민 전체가 관련된 거대한 기금이기 때문”이라며 “수익률 하나로 국민연금을 판단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률 자체도 나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나쁜 것처럼 통계를 억지로 만들어 보도하는 것은 왜곡인 셈”이라고 말했다.

기사를 작성한 류병화 한국경제 기자는 7일 미디어오늘에 “국민연금연구원이 자료를 낸 시점은 지난해 7월이다. 2022년 데이터는 없고 2012~2021년까지만 수익률이 나와 있어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하되 업데이트 필요성을 느꼈다. 국민연금연구원 자료는 산술평균으로 작성돼 있어 업데이트 할 때 같은 방식으로 적용해야 통일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류병화 기자는 국민연금 데이터를 9월 말로 넣은 이유에 대해서도 “글로벌SWF가 집계한 가장 최신 데이터는 지난해 9월 말까지만 나온다. 글로벌 연기금 가운데 빠르게 공시하는 편에 속하는 국민연금도 아직 지난해 수익률이 나오지 않았다. 가장 최근 데이터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글로벌SWF는 자체적으로 집계해 수익률 순위를 매기고 있다. 여기서 6대 연기금 수익률 최신 데이터인 9월 말이 아니라 6월 말이나 3월 말로 쓰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글로벌SWF도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연기금 취재원을 통해 회계연도가 상이한 연기금들간 비교를 하는 데 용이한 데이터라는 평가를 들어 취합 자료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최신 데이터이자 비교가 용이한 자료를 선정해 취합했다. 사실 국민연금연구원이 낸 자료를 보더라도 국민연금은 6대 연기금 가운데 수익률이 가장 낮다”며 “수익률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제 선택이 들어갔지만, 모두 자료의 통일성을 갖추고 최신 데이터를 넣기 위한 선택이었다. 일부러 국민연금에 불리하도록 자료를 취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악의적 보도 배경에는 국민연금 끼고 싶은 '기업의 입김?'

▲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상담받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전문가가 부재한 국민연금의 '아마추어적 운용'을 지적하는 한국경제 보도를 놓고 기금운용에 참여하고 싶은 일부 기업의 의도가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는 해당 보도에서 “기금운용위원회는 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전문가가 아닌 대표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며 “국민연금과 달리 글로벌 연기금들은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이 기민하게 투자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많은 부분을 위탁운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을 둘러싸고 금융기관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굴리는 기금 규모가 커질수록 이를 감시하는 기금운용위원회 없이 금융기관 종사자들에게만 국민연금이 맡겨진다면 기금을 위탁시켜주고 추후에 그 회사로 이직하는 등 사익 추구의 장이 마련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국민연금 공단에서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 전문가다. 위원회는 단순히 큰 방향성을 정해줄 뿐이지 그 안에서 실제 운용은 금융펀드 전문가들이 하고 있다. 운용 결과에 따라 보상도 받고 있기 때문에 위원회가 비전문가로 구성돼 (국민연금) 수익률이 낮다는 보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위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 전략적 자산배분에 대한 설명.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포커스 2019년 13호 갈무리.

원종현 국민연금 상근 전문위원은 “그들이 아마추어라고 주장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하는 전략적자산배분(strategic asset allocation)의 수익률이 매수·매도 타이밍, 종목 선택 등 전술적 자산배분(tactical asset allocation)의 수익률보다 높다”며 “어떤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연금은 규모나 플랜 면에서 개인투자와 달라 오히려 스타 투자자가 오면 망한다. 중장기적인 목표와 그 목표를 따라가는 성실성, 충성도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등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기업이 불편해한다는 점 역시 이 같은 보도를 양산하는 이유다. 한국경제는 보도에서 “문재인 정부는 스튜어드십을 강조하며 국내 주요 기업 주식을 10%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을 '재벌 길들이기'에 활용했다”고 했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6일 통화에서 “현재 연기금이 대부분의 대기업에 다 투자하고 대주주 형태로 있다. 기업 운영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선 불편해 '연기금 사회주의' 주장이 나온다”며 “연기금이 임의로 개입하는 것도 아니고 의결권에 대해 결정을 하는 것이다. 기업과의 대화 등 여러 제한적인 단계를 거쳐 온건하게 하고 있는데 기업에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종현 전문위원은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주주권 행사를 결정하는 기금운영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구성 자체가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다.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위원회에서 가입자 단체인 세 개 단체가 합의 하에 결정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했다는 것은 그냥 정치적인 논리다.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지금 정부 역시 스튜어드십을 정부가 어쩌지는 못한다. 해당 기사를 보면 논쟁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과 함께 결과를 정해 놓고 끼워 놓기식 보도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 '수익률' 아닌 'ESG'에 초점 맞춰야

연금개혁 논의 과정에서 '수익률'이 화두가 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익률 중심의 보도 자체가 금융사 중심적인 논의”라며 “국민연금은 개인투자와 다르다. 국민연금의 구조적 개혁 논의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수익률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진석 교수는 “청년 임대주택이나 일자리, 공공병원 설립 등 미래 세대 생산성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국민연금이 활용될 여지는 많다. 현재 GDP의 50% 가까이 기금이 쌓여 있는데 소위 '사회투자'라고 하는 것은 0.2%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적극적인 사회투자로서의 활용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수익률 중심으로만 연금을 보면 논의 주제가 극히 한정적으로 된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꽉 짜인 보수적, 시장주의적 프레임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계속 기금이 현금화돼서 나오게 되면 금융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방안 모색이 필요하고 그런 차원에서 기금 규모의 적정 수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국민연금도 ESG를 따져야 한다. 사회적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지, 기금 활용 방안에 대해서 언론이 기존 보도의 틀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 보도에 대해 한국경제신문은 “기금운용 수익률 산출에 활용한 산술평균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과 학자들이 운용 성과 판단을 위해 참고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다. 산출 대상 기간도 회계연도가 서로 다른 연기금 수익률을 비교하기에 적합한 기준을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를 참조해 설정했다”고 알려왔다.

[ 기사 수정 : 10일 11시10분 한국경제 반론 입장 추가 ]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