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은행에 개방, 새벽 2시까지 개장... 외환시장 '대격변'

권경성 2023. 2. 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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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70년 넘은 빗장 제거... 이르면 내년 7월
"환율 덜 출렁일 것"... 외자 입김 강화 우려도
오재우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이 7일 '서울외환시장 운영협의회 세미나'가 열린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정부의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르면 내년 7월부터 국내 외환시장이 새벽 2시까지 개장하고 해외에 있는 외국 은행에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실현되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외환시장이 겪는 가장 심한 변화로, 시장 참여자가 늘어 환율이 덜 출렁이게 되리라는 기대와 외국 자본에 국내 시장이 놀아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한다.

정부는 7일 ‘서울외환시장 운영협의회 세미나’가 열린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그간 준비해 온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공개하고 내년 하반기 시행이 목표라고 밝혔다.

방안에는 우선 정부 인가를 받은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RFI)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를 앞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안이 실현되면 현재 국내 금융기관 간 거래만 가능한 국내 외환시장에 해외에 있는 외국 은행ㆍ증권사 등도 직접 들어올 수 있게 된다.

다만 대상은 은행과 종합금융사(종금),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등 현재 국내 외환시장 참여가 가능한 외국환업무 취급기관과 같은 유형의 외국 금융기관으로 제한한다. 헤지펀드 등 단순 투기 목적 금융기관은 앞으로도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국은 △적정 유동성 △확인 가능한 식별 정보 △본국의 규제 동등성 △의무 이행 확약 등을 조건으로 인가를 내줄 예정이다.

외환시장 구조 개선 3대 정책 과제. 그래픽=송정근 기자

인가된 해외 금융기관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현물환은 물론 외환(FX) 스와프 거래도 할 수 있다. FX 스와프 거래는 현물 환율로 필요한 통화를 차입하고 만기가 되면 계약 당시 선물환율로 원금을 다시 교환하는 1년 이하 단기 외화 거래다.

더불어 현재 오전 9시부터 당일 오후 3시 30분까지인 국내 외환시장 개장 시간을 영국 런던 금융시장 마감 시간인 이튿날 오전 2시까지로 10시간 30분 연장한다는 계획도 방안에 포함됐다. 정부는 추후 은행권 준비와 시장 여건 등이 갖춰지는 대로 개장 시간을 24시간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외환시장이 야간까지 닫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서학 개미’로 불리는 국내 미국 주식 개인투자자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크다. 가령 지금은 국내 개인이 장 마감 뒤 미 달러화 주식을 사려면 시장 환율보다 높은 가(假)환율로 환전할 수밖에 없어 당초 계획한 수량만큼 매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도가 바뀌면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이외에 선진국 수준 시장 인프라(기반) 구축도 추진된다. 글로벌 시장에 보편화한 고객 대상 외국환 전자중개업무(애그리게이터ㆍAggregator) 도입이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가 출시되면 고객이 여러 은행의 환율을 비교해 거래할 수 있게 된다.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이 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울외환시장 운영협의회 세미나'의 개회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정부가 70년 넘은 외환시장 빗장을 풀려는 것은 시장 안정이 명분인 폐쇄적 구조가 도리어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지금처럼 낡은 도로로는 비약적으로 확대된 이동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좁은 폭 탓에 안정성이 오히려 위협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물환 시장을 능가할 만큼 기형적으로 성장한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의 투기 거래가 환율 움직임을 주도하는 현상이 그가 제시한 단적 증거다.

외환시장 접근성 강화로 해외 투자용 외화가 필요한 국내 개인과 국내 주식 투자를 위해 원화가 필요한 외국인 등 다양한 성격의 시장 참가자가 들어오고 거래량이 늘면 환율 변동성이 완화하리라는 게 정부 예상이다. 길게 보면 아울러 원화 표시 자산의 매력도가 올라가고 국내 금융기관의 사업 기회도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바라고 있다.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선진 금융기법과 막대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외국 자본의 입김이 더 세지고 투기성 자금이 많아지면 거꾸로 환율 변동성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거래량이 적은 야간에 쏠림 현상이 발생할 여지도 없지 않다.

이에 정부는 △투기 목적 기관 참여 불허 △인가된 국내 외국환 중개회사 경유 의무화 △RFI를 상대하는 국내 금융기관의 선물환 포지션 비율 별도 선정ㆍ관리 등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올 3분기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내년 초부터 반년간 이뤄지는 시범 운영이 끝나는 대로 시행에 들어간다는 게 현재 정부 구상이다.

세종=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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