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배드민턴의 시작…이금재 전 배드민턴협회장 별세

이충원_독자부 2023. 2. 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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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지역에서 맨 처음 배드민턴 선수로 활동한 데 이어 여러 팀을 창단했고,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을 지낸 이금재(李錦在)씨가 5일 오후 10시께 광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7일 전했다.

1990년대 전남체육회 운영과장, 광주체육회 사무처장을 지냈고, 2001∼2003년에는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제25대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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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광주·전남 지역에서 맨 처음 배드민턴 선수로 활동한 데 이어 여러 팀을 창단했고,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을 지낸 이금재(李錦在)씨가 5일 오후 10시께 광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7일 전했다. 향년 76세(만).

1946년 7월생으로 전남 보성이 본적지인 고인은 조대부고에 핸드볼 선수로 입학했지만 1963년 2학년 때 배드민턴으로 종목을 바꿨다. 고인 등 조대부고 학생 4명이 당시 광주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배드민턴' 선수 생활을 시작한 것. 조선대에서 배드민턴 선수 생활을 한 뒤 1973년 광주 충장중학교에 배드민턴팀을 창단하며 지도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김문수·박주봉 등을 지도한 김중수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은 "국민학교 5학년 때 배드민턴 라켓을 처음 잡았는데 코치가 없었다"며 "(1973년) 충장중에 입학해서 이금재 코치님을 처음 만났다. 고인이 나의 첫 코치님이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1980년 1월 광주일고에 배드민턴팀을 만들었고, 창단 첫해에 춘계대회와 종별대회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전남배드민턴협회 전무이사를 거쳐 1983년 2월에는 김학석(2022년 별세) 전무이사와 함께 심판이사로 기용되며 '선수 출신 집행부'로 첫발을 내디뎠다. 1988년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지역 예선에는 총감독으로 참가했다. 1990년대 전남체육회 운영과장, 광주체육회 사무처장을 지냈고, 2001∼2003년에는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제25대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을 지냈다.

김중수 부회장은 "엄격하고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었고, 인생을 온통 배드민턴에 바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론 부인 주숙자씨와 사이에 1남2녀(이연진·이시영·이훈성) 등이 있다. 빈소는 광주 국빈장례문화원 203호실, 발인 8일 오전 8시30분, 장지 광주 영락공원 추모관. ☎ 062-606-4025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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