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축계 향후 20년간 프리츠커상 나오기 힘들어"

연규욱 기자(Qyon@mk.co.kr) 2023. 2. 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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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훈 건축사협회장 인터뷰
日 '건축계 노벨상' 8명 수상
국내선 건축설계 홀대 풍토
"건축에 대한 인식 바꿀 것"

"일본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8명이나 수상했지만, 한국은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라면 향후 20년 안에도 수상자가 나오지 못할 겁니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사진)은 40여 년간 건축계에 몸담아온 업계 베테랑이다. 2018년 협회장에 처음 취임한 후 연임하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는 건축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없다"는 건축사들의 회의감을 자주 접했다고 한다.

석 회장은 몇몇 실력 있는 국내 건축사를 거론하며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설계 실력을 가진 후배들이 많다"며 "하지만 이들이 해외에서 세계적인 건축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풍토가 국내에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석 회장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건축에 대해 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과 국민들의 시각이 왜곡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 선진국의 건축사는 국가 건축정책에 적극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 존경받는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저 '건축업자'로 봐서 단순히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데 비쌀 필요가 있냐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했다.

이 같은 인식부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가 건축설계비 단가라고 석 회장은 지적했다. 재건축 등 아파트 건축설계비는 1990년대 평당 4만~5만원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평당 3만원 선이라고 한다. 석 회장은 "건축설계비의 상당부분이 인건비인데, 1990년 대비 최저임금만 약 8배가 올랐다"며 "설계비도 이에 상응해 오르는 게 상식적이지만, 30년이 다 돼가는 지금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공공 건축물의 설계 대가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민간의 경우 심한 곳은 공공 대가의 약 20~30%밖에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석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건축은 빨리, 저렴하게 하는 게 최고라는 인식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건축물을 안전하게 설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이 다 무시되고 있다"고 했다. 부실시공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 역시 이와 직결돼 있다는 게 석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건축의 본질은 안전"이라며 "자유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최저가·덤핑이 판치는 시장에서 어떻게 안전한 건축물을 설계하겠느냐"고 성토했다. 그는 "건축이 국민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제대로 인식하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2018년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에 오른 이후 석 회장이 가장 몰두해온 일은 '협회 의무가입' 제도 시행이었다. 그간 국회 설득을 위해 만난 국회의원만 100명이 넘는다. 노력의 결과 지난해 2월 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을 위한 건축사법이 마침내 공포됐다. 이에 따라 모든 개업 건축사들은 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석 회장은 협회 의무가입 제도가 건축에 대한 인식 전환의 첫걸음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협회가 건축계의 의견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면서 건축 설계비 단가 정상화와 건축안전 확보 등 건축업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게 의무가입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말했다.

석 회장은 "건축업이 그간 홀대를 받아왔던 것은 사실 건축사들의 잘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이 넘쳐나 서로 힘을 모으지 않았고,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석 회장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건축만이 제시할 수 있는 해법이 분명히 있다"며 "의무가입 정착을 계기로 건축의 사회적 역할도 강조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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