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조절 힘드네... 경기 둔화 표현에 머리 싸맨 KDI
수출 부진으로 경기 침체가 깊어지는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7일 “경기 둔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국 경제를 진단했습니다. 매달 초 내는 ‘경제동향’ 2월 보고서의 핵심 문구입니다. 지난 1월에는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했었죠. 가시화보다 한 단계 높은 심화라는 표현을 동원했습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지난달까지 넉 달 연속 감소한 데다, 생산‧소비 등도 주춤하기 때문입니다.
KDI는 기업과 정부의 경기 판단을 돕기 위해 1991년 6월부터 30년 넘게 매달 ‘경제동향’을 내고 있는데, 보고서를 쓰는 25명의 연구위원 사이에서 “요즘처럼 머리가 아픈 적은 없었다” “경기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 선택 난도가 역대급이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자꾸만 나빠지는 수출·생산·투자·소비 등 지표 악화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이 고민거리라는 겁니다. 너무 센 단어를 사용하면 “KDI가 겁을 준다”는 말이 나올 테고, 너무 밋밋한 단어를 선택하면 “평가를 제대로 해야지 회피하는 거냐”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입니다.
작년 8월까지만 해도 “경기 회복세가 완만하다”고 했는데, 9월 들어 “회복세가 약화됐다”고 했습니다. 10월 들어 표현을 “성장세 약화”로 바꿨고, 10월 수출이 2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자 11월은 “경기 둔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지표가 늘었다”고 했습니다. 12월에는 “경기 둔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었죠. 한 연구위원은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적절할지 찾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매달 25명의 박사가 세종시 KDI 청사 3층 중회의실에 모여 경제동향 보고서 표현을 다듬기 위한 ‘동향 회의’를 하는데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해서 ‘4시간 회의’라고도 한답니다. 한 관계자는 “요즘은 4시간을 넘기기 일쑤”라고 하더군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해서 한동안은 KDI의 고민이 이어질 듯합니다.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돼 ‘회복세’와 ‘성장세’를 놓고 단어 선택을 고민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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