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등이냐, 일시적 반등이냐’… 1·3대책 한달, 치열해진 눈치싸움[가보니]

심윤지 기자 입력 2023. 2. 7. 16:39 수정 2023. 2. 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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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7억8000만원 ‘급매물’이 나와서 계약 의향이 있음을 밝히고 다음날 대출 상담을 마무리하던 중 집이 나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부동산에선 남은 매물이 별로 없다며 8억7000만원 주택을 권하더군요. 예산 초과라 주저하니 ‘지금 분위기 상 이것도 언제 나갈지 모른다’며 살 의향이 있으면 가계약금 2000만원이라도 걸라고 제안했어요.” (신혼부부 A씨·33세)

요즘 서울 강북과 수도권 일부 지역 부동산에는 A씨 같은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9억원 이하 주택은 소득 요건 없이 연 4%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1·3대책’ 발표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 전 지역이 규제 지역에서 해제되면서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5주 연속 상승 중이다. 1월5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66.5로, 지난해 12월4주(63.1) ‘역대 최저’를 기록한 뒤 소폭 반등했다.

특히 9억원대 이하 주택이 몰려있는 ‘노원·도봉·강북’ 등 동북권의 1월5주 매매수급지수는 69.3으로 전주 67.6에서 1.7포인트 뛰었다. 매매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을 경우 시장에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3 대책 이후 한달, 지금 부동산 시장은 ‘반등이냐, 일시적 반등이냐’를 두고 매수인과 매도인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한창이다.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현장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14일부터 지난 5일까지 서울 강북 지역 부동산을 돌아봤다.

‘40% 폭락’ 화제된 아파트 가보니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래미안 크레시티 인근. 일요일인데도 상가 1층을 가득 채운 부동산이 거의 대부분 문을 열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신설 등 대형 개발 호재가 있는 청량리 일대의 ‘대장 아파트’인 이 단지는 지난달 전용면적 84㎡가 10억5000만원에 중개 거래됐다. 2021년 9월 최고가(17억)보다 약 38%가 떨어졌다.

“주말은 10시부터 5시까지 풀 예약이에요.” A공인중개사는 매물을 보러가는 내내 밀려드는 상담 전화에 핸드폰을 놓지 못했다. A중개사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이후 현금 여력이 있는 젊은 부부들의 매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분위기 변화를 감지한 집주인들은 갑자기 호가를 올리거나 매물을 거두는 분위기라 했다.

다른 지역 상황도 비슷했다. 신축 아파트가 50% 폭락했다는 언론 보도로 화제가 된 인천 연수구 송도의 B공인중개사도 “지난해까지는 손님 비중이 매도자 100이었다가 올해 초 매도자와 매수자 70:20으로 바뀌더니 설 연휴를 기점으로 매수자 100로 전환됐다”고 했다.

기자가 ‘집값이 더 떨어지지 않겠냐’고 묻자, 공인중개사들은 정부의 규제완화 이후 실제 계약 건수가 늘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동대문구 B공인중개사는 “한 매수자는 매물을 직접 보지도 않고 전화로 집 컨디션과 타입만 물은 뒤 계약금부터 보냈다”고 했다. 성북구 C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이 다시 가격을 올리고 있어서 이보다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급매를 노린다면 지금이 저점 매수 기회”라고 했다.

5일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취합한 2022~2023년 분기별 서울 아파트 거래현황. 위는 면적별 거래 건수, 아래는 거래 비중.
‘영끌 매물’은 생각보다 없었다

기자가 서울 강북 지역 10여개 매물을 살펴보니, 집주인이 부른 가격은 2021년 최고점 대비해서는 30% 가량 하락했지만, 직전 최저가보다는 10~20% 정도 비쌌다. 세입자 보증금 반환이나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한 ‘급매물’은 설 연휴 전 거의 소진됐고, 그나마 남은 것들도 빠르게 소진 중이라고 했다.

직방이 지난 5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23년 1분기(1~2월) 특례보금자리론 적용 대상인 6~9억원 이하 주택은 전체 거래의 30.81%(252건)로, 지난해 4분기 22.24%(474건)에서 비중이 늘었다. ‘1·3 대책’으로 대출 규제에서 해제된 15억원 이상 주택도 13.05%에서 14.3%로 소폭 상승했다.

매매가가 ‘고점’에 물린 매수자들은 금리 압박에도 일단 버티는 분위기다. ‘영끌족’ 비중이 높은 ‘노원·도봉·강북’ 아파트 단지에선 전용 59㎡ 소형 평수의 호가가 전용 84㎡ 실거래가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다. 동대문구 C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에겐 가격 조정이 가능한지 말도 못꺼내고 아직 매도 의사 있냐만 확인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호재와 악재 섞인 주택시장, 향방은

전문가들은 당분간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관망을 지속하며 힘겨루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예상보다 일찍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현재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은 5~6%대로 여전히 높다. 주택 시장엔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라는 호재와 역대 최고 수준의 미분양이라는 악재가 혼재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의 규제완화 이후 집값 하락세가 둔화하고 실거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봄 이사철까지는 이러한 경향이 이어져야 변화의 시그널로 볼수 있다”며 “1월 한달 동안의 거래량 증가나 집값 낙폭 둔화 만으로 턴오프 전환을 말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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