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환시장 빗장’ 연다…환율 변동성 되레 커질 우려도

박종오 2023. 2. 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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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금융회사 외환시장 참여 허용
거래 시간 새벽 2시까지 연장
지난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연합뉴스

정부가 국내 외환시장의 빗장을 확 열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외국 금융회사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장 마감 시간도 현재 오후 3시30분에서 새벽 2시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경제 규모 성장에 맞춰 시장 개방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인데,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7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서울외환시장 운영협의회 세미나에서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김성욱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외환은 나라 안과 밖의 자본이 왕래하는 길”이라며 “나라밖과 연결되는 수십년된 낡은 2차선의 비포장 도로를 4차선의 매끄러운 포장 도로로 확장하고 정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외환시장은 외환당국조차 ‘그들만의 리그’라고 부를 정도로 폐쇄적으로 운영 중이다. 국내 은행과 외국은행 국내지점, 일부 증권사 등 정부 인가를 받은 54개 회사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원화와 달러, 위안화를 거래하며 환율을 결정한다. 달러·유로·엔·위안화 등 주요국 화폐가 미국 뉴욕·영국 런런 등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24시간 거래되는 것과 달리, 정부가 역외 외환시장에서의 원화 거래를 허용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렇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다. 원화 거래 수요가 늘자 배(국내 현물환 시장)보다 배꼽(역외 차액 결제 선물환 시장)이 커진 것이다. 차액 결제 선물환(NDF)은 만기에 계약원금을 주고받는 대신 계약한 선물환율과 만기 때 현물환율 간의 차액만 정산한다. 차액은 원화가 아닌 달러로 정산해 해외 거래가 가능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뉴욕·런던·싱가포르 등 해외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원화 엔디에프의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 규모는 498억달러로, 같은 기간 원화 현물(351억달러)보다 크다. 세계 엔디에프 시장에서 원화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1위다.

투기 세력이 원-달러 환율 상승에 베팅해 역외 시장에서 원화 엔디에프 선물환을 매입하면, 이들에게 선물환을 판 국내 은행이 환율 변동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다음날 국내 외환시장에서 그만큼 달러를 사들여 ‘엔디에프 수요 증가→현물 달러 수요 증가→환율 상승’의 악순환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등 위기 때마다 겪었던 일이다.

국내 외환시장 거래 규모가 작아 특정 거래 수요가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08년 이전 선박 수주 호황을 누린 국내 조선사들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려 대규모 선물환 매도에 나서자, 조선사로부터 선물환을 산 국내 은행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대거 내다 팔아 달러 공급 초과 현상을 빚은 게 대표적이다.

기재부는 앞으로 외국에 있는 금융회사의 국내 외환시장 직접 참여를 허용하고, 외환시장 마감 시간을 런던 금융시장 마감 시간인 한국 시간 새벽 2시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가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역외 시장에서의 원화 거래는 계속 금지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역외 엔디에프 시장의 원화 거래 수요를 국내 시장으로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또 국내 외환시장에 새로 참여하는 외국 금융회사 관리를 강화하고 법규를 어기면 영업 정지, 인가 취소 등 제재할 방침이다.

외환 당국은 규제 빗장을 풀면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IB) 등 ‘큰손’들의 국내 자금 유입이 늘고, 국내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 증가로 환율 변동성도 축소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일각에서 투기성 자금 유입으로 원-달러 환율 변동성 확대를 우려하지만, 이보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 꼬리(역외 엔디에프 시장)가 몸통(국내 현물환 시장)을 흔드는 일이 사라지는 등 환율 안정이 외려 강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김 차관보는 “달러·유로·엔 등 기축 통화뿐 아니라 대다수 신흥국 통화도 해외 외환시장에서 거래를 허용하는 등 한국의 역외 거래 금지 조처가 많이 예외적인 것”이라며 “기업과 개인의 거래 편의가 개선되고 시장이 안정되는 모습을 보면 제도 개편의 공감대도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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