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업이익 수조원대 정유사, 횡재세 물려야 할까

박상영 기자 입력 2023. 2. 7. 16:09 수정 2023. 2. 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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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강서구 한 주유소. 연합뉴스.

국내 정유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130% 가까이 증가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경기 침체 속에서도 드물게 정유사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유사의 역대급 영업이익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 요인이 큰 만큼 초과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른바 ‘횡재세’ 논란이다.

SK이노베이션은 7일 연결 기준, 지난해 영업이익이 3조9989억원으로 전년보다 129.6%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매출은 78조569억원으로 전년 대비 66.6%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매출액 모두 역대 최대치다.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 손실 등의 여파로 지난해 4분기에는 683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상반기까지 이어진 유가 상승과 석유제품 수요증가로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날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2조7898억원으로 155.1%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1년 전과 비교해 59.2% 증가한 에쓰오일(S-Oil)을 포함해 국내 정유사들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아직 실적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GS칼텍스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을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연구원 분석 자료를 보면 2017∼2021년 정유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5% 정도였으나, 지난해 1∼3분기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률은 9.4%로 껑충 뛰었다.

올해 전망도 밝다. 4분기에 국제유가가 주춤하면서 이익도 뒷걸음질쳤지만, 올해 1월 들어 정유사의 이익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은 다시 상승세에 접어들었다. 1월 넷째 주 아시아 정제마진은 배럴당 13.5달러로 지난해 7월 첫째 주(16.1달러) 이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전략비축유 매입 기조와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를 감안하면 이런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글로벌 석유업체들도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 유럽 주요국에서는 횡재세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자국 땅에서 석유와 가스를 채취하면서 얻는 이익에 대해 과세를 하는 영국은 올해부터 일부 발전 기업에도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독일도 올해부터 석유·석탄은 물론, 태양광과 풍력 등 발전 사업자에게도 횡재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은 ‘전력·가스 가격 상한제’ 도입에 쓰일 예정이다.

반면, 국내에서 횡재세 도입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정유사와 막대한 영업이익을 거둔 시중은행에 대해,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석유정제업자·액화석유가스(LPG) 집단공급사업자에 초과 이득세를 각각 물리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수익 덕분에 지난해 KB·하나·우리·신한·NH농협 5대 금융지주의 연간 순이익은 총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석유 수급과 석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 수입 가격과 국내 가격의 차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다’ 석유사업법 제18조를 근거로 횡재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이 약 3주의 시차를 두고 사실상 연동된 만큼 실제 부과금 징수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국내 정유업체들은 횡재세를 부과하는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들과 단순히 비교하는 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주로 원유와 가스를 채취하면서 얻는 이익에 대해 과세를 하는 외국과 달리, 국내는 원유를 정제한 뒤 이를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원유를 수입한 뒤, 주로 수출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내 정유 업체들의 석유 제품 수출액은 사상 최대치인 570억3700만 달러(약 74조원)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유사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은 수출을 많이 했다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 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도 “원유 생산과 정제를 모두 수행하는 세계 주요 정유사를 가진 다른 국가와 정제 마진에 주로 의존해 영업이익을 내는 우리 정유사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며 횡재세 부과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와 경기 침체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성과급 잔치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사회적 연대 기금 조성 등의 대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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