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사태 교훈에… 보험업계, 올 상반기 콜옵션 준비에 만전

이경탁 기자 2023. 2. 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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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이 올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등 자본성증권에 대한 콜옵션(조기상환)을 예정대로 이행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 지난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후 금융 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결국 입장을 번복했던 흥국생명과 같은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연합뉴스

7일 보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2~4월 자본성증권 상환 만기를 앞 둔 보험사 모두 콜옵션 이행에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본성증권이란 회계 기준에서 자본으로 인정되는 채무증권으로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DB생명은 오는 13일 만기가 도래하는 후순위채 800억원(발행금리 5.2%)을 예정대로 상환할 계획이다. DB생명 관계자는 “차환발행 없이도 자체 자본을 통해 충분히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차환발행이란 빚을 갚기위해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것이다. 앞서 DB생명은 지난해 11월 13일 예정이었던 300억원(발행금리 5.6%)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일은 올해 5월로 연기한 바 있다. 당시에도 자금 부족이 아닌 레고랜드로 시작된 채권 시장 불안 등을 고려해 투자자들과 협의를 거쳐 콜옵션 행사일을 바꿨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자본성증권은 5년 콜옵션 조건을 통해 조기 상환하는 것이 시장 관례인데,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의 차이는 자본인정 비율이다. 신종자본증권은 기본자본으로 인정되지만, 후순위채는 보완자본으로 시간이 흐르면 자본인정비율이 낮아진다. 기본자본은 내부유보금 등 실질순자산으로 영구적 성격을 지녔지만, 보완자본은 부채 성격을 지녔다. 대신 후순위채가 신종자본증권보다 발행금리가 낮다.

푸본현대생명은 오는 28일 600억원(발행금리 6.2%)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콜옵션 할 예정이다. 푸본현대생명 관계자는 “28일 당일 차환발행을 진행하고 콜옵션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푸본현대생명은 지난해 11월에도 차환발행을 통해 4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예정대로 상환한 바 있다. 이때 책정된 금리는 7.95%로 과거 발행금리보다 3%포인트(p) 가까이 높은 수치다. 오는 28일에도 차환발행을 하면 콜옵션을 위해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올해 들어 채권 시장이 안정되면서 채권 금리가 하락했지만, 5년 전과 비교해 2~3%p 높은 상황이다.

메리츠화재는 오는 4월 1000억원(발행금리 4%)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을 앞두고 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콜옵션은 예정대로 할 계획인데 상환 방법은 아직 내부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한화생명은 오는 4월 다른 보험사 콜옵션 규모의 10배가 넘는 10억달러(약 1조2500억원, 발행금리 4.7%)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해야 한다. 만약 한화생명이 상환에 실패하면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고, 한국경제 위기를 촉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화생명은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위해 차환발행 가능성 여지도 남겨뒀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차환발행 없이 자체 보유한 외화 자산의 현금화를 통해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한다는 계획”이라며 “다만 추후 금리나 시장 상황을 보고 자금 조달 방법은 바뀔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화생명 사옥

보험사들이 이처럼 자본성증권 콜옵션 의무를 다하려는 것은 지난해 11월 흥국생명 사태로 채권 시장이 흔들리고, 한국 거시경제가 불안정해졌던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흥국생명은 “2017년 발행한 5억달러(발행 당시 약 5571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해외 시장에서 한국물(Korean Paper)로 불리는 외화표시채권 상품의 거래를 얼어붙게 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로 한국 금융사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당시 호주달러채 발행을 준비 중인 신한은행과 글로벌 투자자를 상대로 채권 투자 수요를 확인 중인 하나은행의 상황이 어렵게 됐다.

결국 한국경제 위기설까지 흘러 나오면서 흥국생명은 다시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현재 상황에서 다른 보험사들도 콜옵션 미행사를 하면 회사 신뢰도가 무너지고 신용등급이 급락할 수 있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콜옵션을 위해 고금리로 차환발행을 할 경우 향후 지급여력 수준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급 여력은 보험계약자가 일시에 보험금을 요청했을 때 보험사가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 비율로, 수치가 낮아지면 기업 부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올해 보험사들의 콜옵션 만기 규모만 약 4조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보험사들의 콜옵션 행사 계획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지만, 향후 어떤 경제적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만큼 각 보험사 별로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상황을 보고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들 모두 콜옵션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장에 어떤 혼란을 초래할 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현재 보험사들의 유동성 상황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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