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태원로’ 집회 금지 근거 마련···“대통령실 앞 집회 원천봉쇄 꼼수” 비판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도로에서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시행령 개정안이 국가경찰위원회(경찰위)를 통과했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고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분리된 탓에 ‘관저=집무실’이라는 논리로 집회·시위를 막을 수 없게 되자 ‘교통 소통’을 구실로 대통령실 앞 집회를 원천봉쇄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 최고 심의·의결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는 전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원안 의결했다. 경찰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입법예고와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경찰위를 통과한 시행령 개정안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12조의 ‘주요 도로’에 용산 대통령실 인근 이태원로 등 11개 도로를 추가했다. 이태원로는 지하철 삼각지역·녹사평역·이태원역·한강진역을 잇는 길이 3.1㎞ 도로로, 윤석열 대통령 관저와 대통령실을 연결하는 길이다.
현행 집시법 12조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주요 도로에서 관할 경찰서장이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게 돼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평소 교통량이 많은 이태원로 일대의 집회·시위는 사실상 전면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소음 단속 기준도 강화했다. 현행 집시법 시행령은 주거지역과 학교·종합병원·공공도서관 근처에서 열린 집회·시위가 1시간 동안 3번 이상 최고 소음 기준을 넘거나, 10분 동안 측정한 소음이 평균 소음 기준을 넘기면 제재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최고 소음 기준 위반 횟수를 1시간 동안 2번 이상으로 줄였고, 평균 소음 측정 시간도 5분으로 단축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경찰위는 경찰이 마련한 개정안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한 차례 제동을 걸었다. 이에 경찰청은 3년 주기로 ‘주요 도로’를 재검토하는 일몰 규정을 신설하겠다는 보완책을 내놨다. 경찰위 관계자는 “이 외에도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시위가 금지 또는 제한될 경우 그 사유를 분기별로 경찰위에 보고하도록 경찰청에 요청을 했고,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을 받아 회의록에 남겼다”고 했다.
경찰청은 이번 시행령 개정이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와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최근 5년간의 집회·시위 건수, 평균 통행속도 등 2개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한 것으로, 대통령실 이전과 무관하게 지난 1년간 검토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는 대통령실 앞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김선휴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는 “경찰은 그간 집시법 11조 ‘대통령 관저’를 근거로 집회 금지 통고를 해왔으나, 법원에 의해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면서 “여러 사정을 비춰볼 때 경찰이 대통령실 인근에서의 집회·시위를 제한할 새로운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기존 판례 등을 비춰볼 때 이태원로가 주요 도로에 포함됐다고 해서 대통령실 앞에서의 의사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될 수는 없다”며 “경찰도 이러한 부분을 유의해 법을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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