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록절을 아시나요?” 28년간 ‘말달려온’ 크라잉넛 [매경5F]

신수현 기자(soo1@mk.co.kr) 2023. 2. 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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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한경록 인터뷰
가요차트 1위 꿈꿔본 적 없어
무대에 서는 게 최대 행복
인디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크라잉넛은 멤버들 얼굴보다 노래가 더 유명한 것 같아요. 텔레비전(TV) 등 방송보다 공연 위주로 활동을 해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말달리자, 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명동콜링, 좋지 아니한가, 서커스매직유랑단. 여러 히트곡을 보유한 인디밴드 ‘크라잉넛’에서 베이스기타를 맡고 있는 한경록은 이 같이 밝혔다.

‘인디 음악의 성지’인 홍대에서 매년 열리는 최대 인디 음악축제인 ‘경록절’로 인해 크라잉넛의 리더로 알려져 있는 한경록은 “크라잉넛에는 공식 리더가 없다”며 “리더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

크라잉넛은 1995년 결성된 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멤버 교체 없이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거의 유일한 인디밴드이다. 특히 직접 작곡·작사도 할 만큼 음악성도 뛰어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인디밴드의 새로운 역사를 써온 크라잉넛의 한경록을 만나 크라잉넛의 탄생 배경과 한경록 개인의 음악 인생, ‘경록절’ 등에 관해 들어봤다.

-어떻게 음악가가 됐나.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3년 초중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랑 7명으로 구성된 밴드를 결성했다.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때는 지금처럼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지 않았다. 친구들끼리 비디오테이프를 돌려가면서 각자 독학한 후 다 같이 모여 합주해봤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음악이 되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모여서 연주하다가 밴드까지 만들었다.

1995년 홍대 라이브클럽 ‘드럭’에서 오디션에 합격하고 처음에는 4명이 공연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듯이 자연스럽게 음악가가 됐다. 맏형이자 키보드·아코디언 담당인 김인수 씨는 3집(2001년 발매) 때 합류하면서 멤버가 5명이 됐다. 그때 결성된 5명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크라잉넛 멤버 교체 없이 지금까지 밴드활동을 해왔나.

▷(농담) 지금까지 1명도 안 죽은 덕분이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같이 밴드활동을 해오면서 각자 역할분담이 잘 된 것 같다. 누가 작곡하든 상관없이 저작권료도 공동 배분해오고 있는데, 이런 것도 비결 중 하나일 것 같다.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언제 알았나.

▷세상에 음악을 잘 알고 작곡, 노래 등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내가 음악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을 바라보는 크라잉넛만의, 한경록만의 관점이 있는 것뿐이다. 즐기면서 음악하고 싶다.

-어렸을 때 꿈은.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엄마가 장난으로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돼”라고 말해서 포기했다. 원대한 꿈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박수 받을 만큼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히트곡이 많은데 가장 좋아하는 곡은.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다. 사람들이 연말에 ‘명동콜링’을 즐겨 부르기 때문에 연말에는‘명동콜링’에 더 애정이 간다. 저희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불러준 가수들이 많아서 감사하다. 재미있는 것은 저희가 불렀을 때보다 리메이크를 해준 곡 반응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가수 카더가든이 리메이크해서 불러준 ‘명동콜링’이 대표적이다. 저희 크라잉넛 멤버들이 카더가든의 명동콜링을 듣고 ‘이 곡이 이렇게 좋았나’라며 모두 놀라워했다.

-말달리자, 밤이 깊었네, 서커스매직유랑단, 명동콜링, 룩셈부르크, 5분세탁, 다음에 잘하자 등 한경록님 혹은 크라잉넛이 작곡·작사한 곡이 많은데 저작권료는.

▷저작권 수입이 많지는 않다. 저작권료로 받은 돈을 주로 악기 구입하는데 썼다. 저랑 이상혁 씨가 주로 작곡한다. 개인적으로 제가 작사한 가수 체리필터의 노래 ‘낭만고양이’ 저작권료 수입은 제가 갖는다.

-저작권료 1위 곡은.

▷‘밤이 깊었네’로 알고 있다.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말달리자’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저작권료 1위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사람들이 매일 흥분해 있지 않고, (말달리자 노래에 닥쳐가 여러 번 나오는데) 매일 닥쳐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밤이 깊었네’가 술이나 차 마시면서 듣기 좋은 음악 같다. 그래서 이 노래를 더 많이 들어주시는 걸로 추정한다.

-요즘에도 작곡하나.

▷갑자기 악상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간단하게라도 녹음해놓는다.

-올해 신곡 발표 계획은.

▷싱글 앨범 낼 수 있다.

-홍대 3대 명절로 꼽히는 음악 축제(뮤직 페스티벌) ‘경록절’이 어떻게 시작됐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친구들도 워낙 좋아한다. 2007년 2월 제 생일 때 통닭을 파는 호프집에서 생일파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가게를 통째로 빌린 것도 아닌데, 그 장소가 제 친구들로 꽉 찼다. 홍대에는 노래를 바로 부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이 많은데, 그때 그 가게가 그랬다. 그리고 손님들이 거의 다 음악가였다. 하나 둘 나와서 노래를 부르더니 어느 순간 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떼창’을 하고 있었다. 마치 공연처럼.

그때부터 매년 제 생일 때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노래를 불렀고, 세월이 지날수록 규모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 순간 홍대 명절처럼 됐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핼러윈에 이어 경록절이 홍대 3대 명절로 불린다.

2021년, 2022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경록절을 멈춰야 하나 고민하다가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무대가 없어지면 자신의 정체성도 사라지는 것이다. 무대는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공간이다.

-2023 올해의 경록절은.

▷2023 ‘마포르네상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책을 읽었다. 그 중 르네상스 문화와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중세시대에 흑사병이 돌고 나서 르네상스 문화가 번성했듯이 역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문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문화가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에 ‘마포르네상스’라고 지었다. 이번 경록절은 온오프라인 투트랙으로 2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 동안 열린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한다.

-언제까지 경록절을 개최할 예정.

▷늘 올해가 마지막 경록절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한다. 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출연진도 섭외하고, 준비할 게 너무 많다. 돈도 많이 든다.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만큼 힘들다.

-크라잉넛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비결

▷큰 공연이든 작은 공연이든 무대 규모·장소와 관계없이 언제 어디에서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붓는다. 저희의 열정적인 모습을 관객들, 팬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무대에 서는 그 자체가 항상 즐겁고 재미있다. 크라잉넛이 1995년 처음 공연을 시작했을 때 ‘우리가 언제까지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조차 안 한 상태였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끝을 정해놓지 않은 채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즐겁게 하자는 자세로 임했다. 안 되면 다음에 잘하자였다. 잘 되면 좋고, 잘 안 되더라도 폭삭 망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 이 말이 사실 제게는 큰 위로가 돼줬다.

-음악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는 없었나.

▷음악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가요 순위 차트에서 1위 해야지, 순위권 안에 들어야지, 이 가수를 이겨야지’ 이런 목표를 세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음악하는 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과 비용을 써서 무대에 와주신 관객과 호흡하는 순간이 제게는 행복이고 감동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경록님에게 음악이란.

▷물감 같다. 음악이라는 물감으로 제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언제까지 음악을 하고 싶나.

▷무대가 좋다. 무대에 서면 조명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다. 설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무대에 서고 싶다.

-다시 청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물론 재미도 있었지만 과거는 과거대로 내버려두고 싶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지금이 좋다.

-한국 록, 대중가요가 더 다양해지고 발전하려면.

▷인디음악을 하는 음악가 중에 다양한 음악 실험을 사람들이 많다. 한국 음악이 더 발전하려면 사회 시선 등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음악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 안에서도 여러 예술과 결합된 새로운 음악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려면 다양한 실험이 이뤄줘야 한다. 그리고 인디음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더 좋아지길 바란다.

-끝으로 후배 음악가들에게 조언.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제가 잘난 게 아니다.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음악인들이 설 무대가 확 줄어들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힘든 이유가 본인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안 좋은 상황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울해하거나 자책할 필요 없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큰 복이다. 음악하는 것, 그 자체에서 행복을 찾고 힘내길 바란다.

[신수현 기자]

※ 유튜브 ‘매경5F’에서 영상 인터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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