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를 다시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 [시네마 프리뷰]

고승아 기자 2023. 2. 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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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스틸컷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열여덟의 소희는 밝고 당차며 춤을 좋아한다. 집안 사정을 헤아리는 착하고 씩씩한 소희는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실습 연계 과정을 통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그는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웃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존해보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없다. 현실의 민낯은 이토록 냉혹하다.

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실제 2016년 전주에서 발생한 콜센터 실습생 사망 사건을 다뤘다.

영화는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취업하는, 이른바 '현장실습생' 시스템을 소재로 했다. 소희는 대기업에 취직해 학교의 자랑거리가 되지만, 실상 취업한 곳은 대기업이 하청에 하청을 준 콜센터였다. 콜 수와 방어로 실적을 매기고, 사무실 한가운데는 순위가 새겨져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소희는 욕설, 폭언, 성희롱까지 당하는데, 이런 것들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고객에게 반박하는 순간, 비난의 화살은 소희 자신에게 향한다.

소위 '어른들'은 학생을 방관한다. 부모는 소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소희의 고통을 외면한다. 선생님은 학교의 취업률과 실적을 운운하고, 콜센터 팀장은 실습생이라는 핑계로 인센티브를 주지 않고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학생에게 막말을 내뱉는다. 여기에 연결된 지방교육청, 장학사도 실적을 핑계 삼아 남 탓만 한다. 극중 장학사는 유진에게 "이제 교육부로 가시려고요?"라며 빈정댄다. 실적이라는 목적을 위해 청소년들은 도구로 쓰이고 방치되며, 비극적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유진이 극 말미 건네는 단단한 위로는 어른들이 해야만 할 자기반성이자 책무다.

영화의 구성은 독특하다. 1부, 2부로 나뉜 이야기 속에서 소희와 유진의 이야기가 각각 흘러간다. 두 사람이 영화에서 만나는 장면은 단 두 장면 밖에 없다. 접점이 적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춤'이다. 안무 연습실에서 잠시 마주친 소희와 유진은 나름의 연대를 갖게 되며, 이는 이후 형사로서 움직이는 유진의 원동력이 된다. 사건 발생 직후 유진은 소희와 관련된 서류에 대충 휘갈겨 사인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을 겪고 난 후에는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사인을 한다. 영화가 끝난 후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더불어 배경음악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담담한 연출은 관객들로 하여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효과적이다.

신예 김시은은 '소희' 그 자체다. 친구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춤을 출 땐 한없이 밝은 미소를 띠던 소희는 점차 어두워진다. 김시은은 혈색이 사라진, 퀭한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배두나는 정의로운 유진을 단편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특히 점차 격앙되는 감정을 토해내다가 이내 허탈해지는 감정선을 탁월하게 표현하며 영화 속 강렬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소희는 소외된 이들을 대표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다음 소희'가 없길 바라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정 감독은 간담회에서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 늦었지만 이제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 일을 알게 되고, 그전에 있었던 일과 후에 있었던 일들을 알아가면서 어쩌면 저도 이러한 일들을 반복하게 된 사회의 일원이지 않았나 생각했다"라며 "영화를 만들면서도 (비슷한) 일들이 생기니까, '다음 소희'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영화는 장편 데뷔작 '도희야'를 선보인 정주리 감독의 신작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된 바 있다. 러닝타임 138분.

seung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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