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공짜에, 부작용도 없는 치매 치료제에 대한 상상
대학로 거리에 봄비가 잔잔히 내리던 날이었다.
서울대 병원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평소처럼 라디오 음악을 흘려듣고 있었다. 자동차 와이퍼가 ‘쓰~윽, 싸~악’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가려졌다가 나타났다. 빗방울은 창문에 부딪히면서 동그란 물결을 만들어 냈고, 그 파장은 대학생 시절 그 사람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비 오는 대학로에서 생일 선물이라며 재즈 CD를 건네던 여자 사람 대학생. 그 순간 가수 이소라 님의 ‘바람이 분다’가 들려와 웃음이 났다. 곧이어 나올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부분이 나올 터이니 이를 만끽하기 위해서 차를 길가에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그 여자 사람 대학생은 예쁘지 않았고 내 스타일도 아니었다. 다만, 유머 감각이 있었고, 노래를 꽤 잘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흥건히 취했던 대학로 노래방에서 장혜진 님의 ‘1994년 어는 늦은 밤’은 정말로 좋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 여자 사람 대학생과의 마지막 같은 기억이었다. ‘비가 오니 생각이 난다’며 성당 주일학교 여름 캠프 준비에 한참 바쁜 나를 불러내 ‘깜짝 생일 선물을 건넨 일’을 두고 나는 고백이라 기억했지만 그는 ‘평소 잘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기억했다. 내겐 망신스러운 일화였지만 추억은 다르게 쌓이는 것에 대한 소중한 첫 경험이었다.
기억은 지속시간에 따라 감각 기억(수초 이내), 단기 기억 (수초~수분), 장기 기억(수일~수년)으로 분류하고 저장되는 정보의 종류에 따라 명시적 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으로 나뉜다. 아미노산 구조 20개를 외우는 것과 같은 지식적인 것을 명시적 기억, 자전거 타는 법처럼 몸이 기억하는 것을 암묵적 기억이라고 한다.
[ https://www.nature.com/articles/npp2009126 ]
기억과 상상
철수를 뇌 기능 MRI 장비에 눕혔다. 그리고 따뜻한 바닷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라고 주문했다. 철수는 파도가 잔잔했던 동해 근덕 해수욕장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금빛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는 사이 어머니는 부르스타에 애호박과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파란 튜브를 형과 한쪽 팔로 나누어 끼고 아버지를 따라 깊은 바다도 나아갔다. 세 부자를 부드러우면서도 리드미컬하게 간지럽혔던 파도의 소리는 참 맑았다. 철수의 기억은 뇌기능 MRI에 실시간으로 기록됐다. 철수의 뇌가 평온해진 후 철수에게 다른 주문을 했다.
[ https://www.jneurosci.org/content/27/52/14365.long ]
치매와 상상
[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212948 ]
새로운 치매 약의 등장이 반갑긴 하지만, ‘게임 체인저’라며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닌 듯하다. 뇌 내 아밀로이드가 치매 원인의 한 원인이지만 이것만으로 치매를 되돌리긴 어렵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치매는 여성의 초경부터 완경까지의 기간이 짧을수록, 수면이 부족할수록 그리고 우울증이 심할수록 위험이 높아지는데, 치매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새로운 치매 약의 가격은 300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어서 경제적인 부담도 적지 않다. 기존 약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뇌 부종의 부작용 위험도 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CvvbyOB-7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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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찬 의학전문기자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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