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공짜에, 부작용도 없는 치매 치료제에 대한 상상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2023. 2. 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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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상상이 다르지 않다면


대학로 거리에 봄비가 잔잔히 내리던 날이었다.

서울대 병원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평소처럼 라디오 음악을 흘려듣고 있었다. 자동차 와이퍼가 ‘쓰~윽, 싸~악’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가려졌다가 나타났다. 빗방울은 창문에 부딪히면서 동그란 물결을 만들어 냈고, 그 파장은 대학생 시절 그 사람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비 오는 대학로에서 생일 선물이라며 재즈 CD를 건네던 여자 사람 대학생. 그 순간 가수 이소라 님의 ‘바람이 분다’가 들려와 웃음이 났다. 곧이어 나올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부분이 나올 터이니 이를 만끽하기 위해서 차를 길가에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그 여자 사람 대학생은 예쁘지 않았고 내 스타일도 아니었다. 다만, 유머 감각이 있었고, 노래를 꽤 잘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흥건히 취했던 대학로 노래방에서 장혜진 님의 ‘1994년 어는 늦은 밤’은 정말로 좋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 여자 사람 대학생과의 마지막 같은 기억이었다. ‘비가 오니 생각이 난다’며 성당 주일학교 여름 캠프 준비에 한참 바쁜 나를 불러내 ‘깜짝 생일 선물을 건넨 일’을 두고 나는 고백이라 기억했지만 그는 ‘평소 잘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기억했다. 내겐 망신스러운 일화였지만 추억은 다르게 쌓이는 것에 대한 소중한 첫 경험이었다.


기억은 지속시간에 따라 감각 기억(수초 이내), 단기 기억 (수초~수분), 장기 기억(수일~수년)으로 분류하고 저장되는 정보의 종류에 따라 명시적 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으로 나뉜다. 아미노산 구조 20개를 외우는 것과 같은 지식적인 것을 명시적 기억, 자전거 타는 법처럼 몸이 기억하는 것을 암묵적 기억이라고 한다.

명시적 기억 중에서도 ‘나’와 직접 관련된 것을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이라고 하는데 ‘내가 1996년에 대학로에서 그 여자 사람이 준 생일 선물을 받은 것’과 같은 기억이다. 사람마다 기억이 다른 것은 바로 일화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화 기억은 감각과 지각에서 얻어진 정보를 자신의 특유한 생활 방식으로 가공하고,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 활성화 시키거나 반대로 억제한다. 일화 기억은 인생의 일화로 간직하는 인지신경학적 상태를 가장 잘 반영하는 기억 중의 ‘인싸’라 할 수 있다.  ▶ 관련 논문  그런데 같은 일을 함께 겪고도 왜 사람마다 기억이 다를까? 그것은 같은 미래를 두고도 사람마다 상상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이다.
[ https://www.nature.com/articles/npp2009126 ]
 

기억과 상상



철수를 뇌 기능 MRI 장비에 눕혔다. 그리고 따뜻한 바닷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라고 주문했다. 철수는 파도가 잔잔했던 동해 근덕 해수욕장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금빛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는 사이 어머니는 부르스타에 애호박과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파란 튜브를 형과 한쪽 팔로 나누어 끼고 아버지를 따라 깊은 바다도 나아갔다. 세 부자를 부드러우면서도 리드미컬하게 간지럽혔던 파도의 소리는 참 맑았다. 철수의 기억은 뇌기능 MRI에 실시간으로 기록됐다. 철수의 뇌가 평온해진 후 철수에게 다른 주문을 했다.
바닷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되 과거에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철수는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요트를 떠올렸다. 자신의 두 딸을 태우고 하늘과 바다가 파랗게 맞닿은 곳으로 향했다. 바다 물이 코발트색으로 변한 곳에서 역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스쿠버 다이빙을 두 딸에게 가르쳐 주는 상상을 했다. 두툼한 수경 사이로 막내딸이 뿜어내는 산소 방울의 소리가 명쾌했다. 철수의 바닷가 상상도 뇌 기능 MRI에 실시간으로 기록됐다. 연구팀은 철수의 기억 기록과 상상 기록을 비교 분석했다. 뜻밖에도 기억과 상상은 뇌 기능 MRI 상에서 구별되지 않았다. ▶ 관련 논문  
[ https://www.jneurosci.org/content/27/52/14365.long ]
 

치매와 상상

올해 두 번째 알츠하이머 치료 약이 미국에서 승인됐다. ‘레켐비’라는 약인데, 치매 유발 물질로 알려진 뇌 내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한다. 임상 시험에서 인지 저하 속도를 27% 늦췄고, 치료 3개월 이후 양전자 단층촬영(PET)에서 뇌 내 아밀로이드 응집체를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감소시켰다.  ▶ 관련 논문
[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212948 ]

새로운 치매 약의 등장이 반갑긴 하지만, ‘게임 체인저’라며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닌 듯하다. 뇌 내 아밀로이드가 치매 원인의 한 원인이지만 이것만으로 치매를 되돌리긴 어렵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치매는 여성의 초경부터 완경까지의 기간이 짧을수록, 수면이 부족할수록 그리고 우울증이 심할수록 위험이 높아지는데, 치매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새로운 치매 약의 가격은 300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어서 경제적인 부담도 적지 않다. 기존 약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뇌 부종의 부작용 위험도 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CvvbyOB-7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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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찬 의학전문기자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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