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가동률 높이고 수출 업무 쏟아지는데...원안위 ‘비상임체제’ 제역할 할까

최정석 기자 2023. 2. 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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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임체제, 원전 안전성 신뢰도 떨어트려”
상임체제 전환 위해 법안 여럿 발의됐으나
‘작은 정부’ 기조에 원안위도 소극적 행보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제170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 /연합뉴스

정부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비롯한 차세대 원전 기술 연구개발과 한국형 원전 수출에 적극 나서면서 국내 원전 기술의 신뢰성과 안전 보장 방안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원전 가동률을 높이는 한편 원자력 발전을 확대해 전기 수급을 안정화하는 기저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안전하면서도 안정적인 운용을 위한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런 가운데 올해 업무계획에서 원전수출 등 원자력 산업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과학을 바탕으로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규제당국으로서의 역할을 적극 담당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원안위가 현재 운영방식으로 제역할을 하는데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원자력 학계와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올해로 출범 12년째를 맞고 있는 원안위는 비상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여야가 선정한 비상임 위원 가운데 일부는 전문성이 부족하고 위원들의 사정에 따라 운영이 좌우되면서 위원회 결정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내 원전 기술의 해외 수출에 필요한 규제 업무를 더 엄밀히 수행하려면 지금과 같은 비상임 체계엔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을 한국보다 먼저 시작했고 일부는 가동 원전이 적은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원전 선도국들조차 규제 기관을 상임위 체제로 운영하는 점을 감안해 한국의 원자력 규제 행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갈 길 먼 원안위 개편… 개정안만 7개

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총 7개다. 개정안에는 현재 국무총리 소속 차관급 기관인 원안위를 대통령 소속 장관급 기관으로 바꾸거나 상임위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현재 원안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돼있다. 위원회 구성원 중 대부분이 원안위 업무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겸직하고 있다. 원전 안전성을 검토하고 운영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비상임위원들이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 비상임위원 중 일부는 정치권이 임명하기 때문에 탈핵 입장을 대변하기만 하는 등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나머지 비상임위원 4명은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현행법은 원안위원으로 임명·위촉될 수 있는 조건을 ‘원자력안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관련 분야 인사’로 매우 폭넓게 규정해 놨기 때문에 원전 비전문가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12월 7일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한 경북 울진 신한울 1호기. / 뉴스1

예컨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에는 원전과 상관없는 법조계 출신 비상임위원이 “9·11 테러 때처럼 항공기가 신한울 1호기에 들이받거나 여객기 추락사고로 기체가 원전에 충돌하는 상황에는 대비가 안 돼있지 않은가”라며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에 반대하기도 했다. 결국 신한울 1호기는 지난해 12월이 돼서야 정식가동에 들어갔다.

당시 비상임위원으로 원안위에 참여했던 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사업본부 본부장은 “사실상 나 혼자 원전 반대론자 8명을 상대하는 싸움이었다”며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치우쳐 있으니 사실상 원전 안전 규제기관이 아닌 ‘원전 운전 반대기관’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 앞으로 늘어날 원안위 업무… 비상임체제로 처리 가능할까

정작 당사자인 원안위나 정부는 상임체제 전환에 뜨뜻미지근한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개정안 관련 회의에서 김건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원안위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를 최소화하려는 정부 기조 등을 고려해 (개정안에 대한)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차세대 원자력을 국가전략기술로 정하고 올해부터 한국형 소형원자로 ‘스마트(SMART)’와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기술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여기에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월성 2·3·4호기 등 총 7개 원전 계속운전을 2024년까지 신청할 계획이다. 차세대 원자력 기술이 안전하게 운영되도록 규제를 만들고 원전 계속운전 여부를 심의·의결해야 할 원안위가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라는 뜻이다.

위원회 9명 중 7명이 비상임위원인 현 체제가 이어진다면 늘어날 업무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거라는 회의적 전망도 나온다. 원안위 비상임위원인 하정구 환경운동연합 시민방사능센터 전문위원은 “지금도 원안위가 해야 할 일이 과도하게 많아 처리 안건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많다”며 “정부가 원전 기술 연구개발과 수출에 방점을 두고 움직이면 점점 일이 늘어날 텐데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원안위가 안전 규제기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이번 정부 들어 조직 개편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 본격적인 의견조율에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원안위 목소리만 내서 될 건 아닌 문제이기 때문에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 규제기관 상임·비상임 여부는 원전 신뢰도와 직결”

전문가들은 한 국가의 원자력 안전을 책임지는 규제기관이 비상임체제로 운영되는 것 자체가 한국 원전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원안위 비상임위원이기도 한 김균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은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여전히 원전 안전성에 불안함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원전 신뢰도를 끌어올리려면 원안위가 원전 안전성을 누구보다 심층 검토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비상임체제 하에서는 미래 원전 시장에서 차세대 기술로 앞서나갈 역량을 확보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병령 전 본부장은 “앞으로 SMR이 세계 원전 시장을 장악할텐데 관련 규제를 만들어야 할 원안위가 비상임체제로 운영되면 어느 세월에 규제를 완성할지 의문”이라며 “하루빨리 상임체제로 전환해 짚을 건 확실히 짚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안전성을 폭넓게 확보한 규제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SMR은 발전용량이 300메가와트(㎿) 수준인 소형 원자력발전소로 기존 원전보다 훨씬 좁은 땅에서 비슷한 수준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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