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기사가 잘리고 나도 잘렸다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이정희 입력 2023. 2. 7. 11:48 수정 2023. 4. 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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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빵집 알바 결국 정리... 나에게 묻는다, 무얼 하며 살고 싶냐고

인생의 새로운 길에 섰습니다. 늘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 온전히 '내 자신'을 향한 길을 향해 가보려 합니다. <기자말>

[이정희 기자]

칼 구스타브 융을 함께 공부하던 시절, 융은 직감을 인간의 제 7감각이라 정의했다. 직관력이 뛰어났던 융의 모호한 서술에 대해 MBT에서 'N' 즉 직관의 비중이 적은 분들은 이해하기 힘들어 하셨다.

반면, MBTI에서 N이 강한 나는 나의 그런 측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황하지만 이 말이 뭔 말인가 하니,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라는 말로 이 글의 서두를 열겠다는 뜻이다. 

또 한번 세상을 배웠다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는 곳인데도 세상사의 물결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 elements.envato
 
내가 알바로 일하던 빵집은 지난 여름부터 '불매 운동'의 여파로 매상이 뚝 떨어졌다. 내가 하던 일은 한겨울에도 등에  땀이 날 정도로 정신없이 해야 겨우 시간 내에 마칠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런데 전국에서 손 꼽힐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는 곳인데도 세상사의 물결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장사가 안 되니 만드는 빵이 줄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고로케 종류가 서너 가지가 넘었는데 야곰야곰 줄어 결국 두어 개만 남았다. 종류가 줄지 않으면 개수가 줄었다. 

아마도 나 역시도 이런 일을 해보지 않았다면 세상사의 속내를 알지 못한 채 불매 운동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또 소비자의 입장에서 부도덕한 기업에 대해 할 수 있는 응징의 방식으로 치자면 불매운동만한 게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또 다른 상황으로 다가왔다. 장사가 안 되니 매장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국, 지난 번 글에도 썼듯이 샌드위치 기사가 짤렸다.

기사의 자리에 대신 알바가 들어왔다. 기사가 하루 종일 하던 일을 몇 시간 만에 알바가 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층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일이 늘어났다.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매출의 감소를 인건비 축소로 대응하려 했다면, 본사는 이른바 '리노베이션'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기존의 빵들에 약간씩 변화를 주면서 빵값을 올리고, 제품 생산 라인을 재정비하는 식이었다. 내가 일하던 매장에서 직접 만들던 크림빵이 본사 제품으로 대체된다고 했다. 연유, 땅콩, 모카 크림빵, 내가 하던 일 중 가장 핵심적인 것들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전해듣는 순간, '이제 내 차례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 예감이고 뭐고 할 것이 없이 객관적 상황이 불을 보듯 훤했다.

아니나 다를까, 명절을 앞두고 내가 이 곳에서 일한 지 일년이 되기 불과 며칠을 앞두고, 허겁지겁 해고됐다. 내가 하던 일은 이제 기사 한 명과 아래 층 매장 직원들이 나눠서 할 거라고 했다. 기사도, 직원들도 일이 그만큼 늘어나지만 그저 나 안 잘리는 게 어디야 하는 심정이 앞서는 듯했다. 허긴 돌아보면 샌드위치 기사가 잘릴 때 나 역시도 마음은 복잡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겁지겁이라는 수식어을 쓴 건, 알바라 해도 1년을 일하면 해고가 되더라도 제반 안전장치가 마련되는데, 사장은 일년이 되기 불과 며칠 전 기가 막힌 타이밍을 활용했다. 지난 여름부터 해고에 이르기까지 또 한번 세상을 배웠다.  

일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사람들  

아마도 돌아가신 엄마라면 그랬을 것이다. '재수없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을까 하는 상황에서 또 새로운 일을 구하게 생겼으니, 사는 게 참 쉽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MBTI N의 핑계를 대보자면 그저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제 도너츠를 그만 튀기라는 계시인가?'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계시라니? 내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되자, 지인이 일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야구장에서 닭강정 튀기는 일이라고 했다.

야구장에 있는 닭강정집이라, 경기가 있는 날만 일을 하면 되니 지금 하던 일보다 낫지 않겠냐고 했다. 함께 일하던 기사는 자신이 일하는 다른 매장에서 기사 2명을 쓰는데, 거기도 장사가 안돼서 조만간 한 명을 자를 듯한데 알바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기다려보라 했다. 

저렇게 일을 소개해준다 하니, 그래도 지난 일년 내가 잘못산 건 아닌가 싶어서 고마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빚도 갚고, 먹고 살기도 해야 해서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나를 일년간 고용해주었던 분께 '어려운 시절 덕분에 잘 지냈다' 했는데 이에 한 치의 이견은 없다. 그런데 이제 해고된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앞으로 나는 계속 도너츠를 튀기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고. 

이 무슨 배부른 고민인가 하겠다. 이제 좀 살 만한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고용보험조차 들지 않은 사장이 얹어준 꼴랑 한 달치 월급을 가지고 여유를 부리는 건가? 그런데 꼴랑 한 달치 월급이라 하더라도, 그 한 달간의 여유를 지난 일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내가 얻은 게 아닌가.

아마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였다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느라 정신 없었을 것이다. 어디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여유가 있었겠나. 1년여 도너츠를 튀기고, 크림을 넣고, 냉판을 닦다보니 하려들면 뭐든 못하겠나 싶은 생각(?)이 드니 외려 좀 차근차근 살펴보자 싶은 것이다. 

내 남은 시간에 무얼하며 살까

우선은 지난 일년 동안 강력한 레깅스와 탑의 도움을 받았지만 안 하던 육체 노동을 하느라 고달팠던 몸을 추스리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쉬고나니 엘보우도 한결 덜하고, 다리 저림도 심한 건 조금 가라앉았다. 과연 내 노쇄해가는 관절들을 가지고 열렬히 일하는 게 얼마나 가능할까? 이런 질문도 솔직하게 던져보았다. 

나는 여러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글을 쓰기도 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선생님도 된다. 책을 만든 사람으로서는 저자가 되기도 하였다. 거기에 지난 일년 빵집에서 이모님으로 살아왔다. 물론 거기에 엄마라든가 등등의 정체성을 더한다.

그 여러 개의 사회적 정체성 사이에 서로 균형을 잡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지난 일년 동안을 지내왔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드러누웠다가도 '에구구구' 하면서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사람들과 스터디를 했다. 다행히 그런 결과물로 책 한 권을 얻었다. 과연 그런 긴장된 상태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또 다르게 해보고 싶은 건 없을까? 

급한 불을 끄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알바를 본의 아니게 마무리하며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 나이 올해로 육십, 객관적으로 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십 여 년 정도 남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는 키워야 할 아이들도 없고, 수발 들 남편도 없다. 그저 나 하나만 챙기면 되는데...

낮에 좀 덜 움직이면 잠자리에서 뒤척일 정도의 에너지는 아직 있다.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허겁지겁 달려왔던 일년이 지나고, 정중동의 시간, 비로소 나에게 묻는다. 내 남은 시간에 무얼하며 살아가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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