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움직이는 5성급 빌리지...천국이 따로 없네

2023. 2. 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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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크루즈, 로얄 캐리비안호 타다
육상경기장급 트랙 1개·워터파크 4개
매일 다른 공연에 세계 미식 수천가지
로얄캐리비안 크루즈 스펙트럼호가 싱가포르 모항에 정박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뱃놀이를 뜻하는 ‘선유(船遊)’는 고려 조선 왕족·귀족들의 최고 파티형 유람이었다. 조선 문인 서거정이 최고의 해넘이라 했던 ‘양진낙조’는 선유도 뱃놀이때 얻은 감동 풍경이다. 독서당계회도엔 관료들의 낭만적인 뱃놀이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귀족들은 술과 음식을 즐기며, 취기에 편승해 시(詩) 배틀을 벌였을 것이다.

평양감사 대동강 나들이 그림은 감사의 큰 배를 중심으로, 수많은 참모와 시종, 음식과 놀거리를 실은 작은 배들이 행렬을 이루며, 고관대작들의 화려한 뱃놀이를 만들어주는 모습이다.

배에서 놀며, 쉬며, 중간중간 경승지에 내려 절경을 감상하는 양수겸장 여행 뱃놀이는 품격있고 명랑한 하이밸류 게스트(HVG)에게 최고의 힐링이고, 당시 필부필부들에겐 선망의 대상 혹은 필생의 버킷리스트였을 것이다.

▶21세기 뱃놀이= 뱃놀이는 진화를 거듭하며 육지의 모든 즐길거리 스펙트럼을 모아 실은 크루즈로 발전한다. 21세기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여행자들이 ‘귀족들의 뱃놀이란 이런 것이었구나’라고 감탄할 정도로, 없는 것이 없는, 떠다니는 5성급 호텔이다. 아니, 10~20동 아파트 단지·상가,테마파크가 한꺼번에 움직이니, ‘대양을 유람하는 럭셔리 빌리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달 후면 대한민국 바다에도 크루즈가 부활한다길래, 한국행 노선도 갖고 있고, 코로나 와중에 부산에 찾아와 뱃놀이 물건을 싣고갔던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의 스펙트럼(Spectrum of the seas)호를 타 보았다.

모항지인 싱가포르 캐피톨 켐핀스키 호텔에서 출발, 마리나베이샌즈와 머라이언공원을 왼편 차창 밖에 둔채, 요즘 싱가포르에서 핫한 코리아타운(차이나타운 옆)을 거쳐, 10분 만에 크루즈 선착장에 당도했다.

크루즈는 사전예약이 필수이고, 기항지 말레이시아, 태국을 거치기 때문에 출입국 수속에 준하는 과정을 거쳐 탑승한다. 여권을 맡기고 받아 든 선실카드는 기항지에 내리고 탈 때 여권 같은 역할을 한다.

스펙트럼호 암벽등반 체험장

▶움직이는 럭셔리 빌리지= 스펙트럼호는 오아시스클래스 보다 약간 작지만 최신 크루즈이다. 크루즈 마니아들은 큰 것 보다 새 것이 더 의미있다고 말한다. 선상 인프라와 콘텐츠가 첨단이고 다양하며 세련됐기 때문이다. 스펙트럼호는 차상위 퀀텀급 중 최고인 울트라클래스이다.

16만8666톤의 덩치에 승객 5622명, 승무원 1551명 등 7173명을 태운다. 16층이고 객실수가 2137개. 고층 아파트 10개동 혹은 저층 아파트 20개동과 초대형 뷔페 2개, 다른 음식점 15개, 라운지와 카페 18개, 초대형 극장 2개, 수영장과 워터파크 4개, 체육 공원 1개, 둘레 500m짜리 공인 육상경기장급 트랙 1개, 보트 수십척, 북극성 전망대 캐빈 1대가 함께 항해한다.

매일 영화 5~6편이 상영되고, 종합예술 ‘실크로드’, 밴드 라이브쇼, 형광댄스공연 ‘더 이펙터즈’, 쇼걸 등 공연이 이어진다. 실크로드와 더이펙터즈는 놓쳐서는 안되므로, 체크인이 되는 순간 예약 부터 해야 한다. 당연히 무료.

육지나 해변, 창공에서 해본다 해본다 하면서 못했던 서핑, 스카이다이빙, 암벽등반 체험 시설도 갖춰져 있다.

반드시 해야할 것은 움직이는 북극성 전망대캐빈 예약이다. ET같은 모습으로 목을 주욱 뻗을 경우 16층에 있는 이 캐빈은 25층 높이 까지 올라간다. 대양과 어촌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남다르다. 15층에서 노니는 5000여 동반여행객들의 재잘거림도 내려다 보인다.

▶못먹어본 것, 못했던 것 모두 체험= 워터파크,수영장은 물론 범퍼카, 댄스배우기, 농구, 풋살, 양궁, 탁구를 즐기고, 컨퍼런스 센터, 회의장, 피트니스 센터, 스파를 이용할 수 있다. 없는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단체 경기인 풋살, 농구를 할 때엔 다른 나라 손님이 한팀이 되어 글로벌 우정도 쌓는다.

레포츠와 공연도 다채롭지만, 글로벌 미식 수천가지가 총집합해 있다. 메인다이닝은 3~4층에 있고, 이외에도 마이타임 다이닝룸, 정통 서양식을 제공하는 정찬 식당, 동남아 현지식 수산물을 곁들인 시추안레드가 같은 데크에 있다.

5층에도 찹스그릴, 세프즈테이블, 카페 투70, 재미스 이탈리안, 이즈미 스시, 원더랜드가 있다. 칵테일로봇 2개가 주문자에게 정확한 배합의 칵테일을 자로 잰 듯 따라주는 코너가 눈길을 끈다.

가장 문을 오래 여는, 가장 대중적인 뷔페, 윈재머플레이스는 14층에 있다. 데크14엔 소렌토 피자, 테판야키, 핫팟, 일정한 등급 이상만 가는 실버다이닝 등도 있다.

글로벌 미식중 놀라운게 있었다.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을 마치고 스카이론타워 꼭대기 레스토랑에서 먹던 연한 소고기스테이크, 파리 몽마르트 산책을 하던 중 미모의 여성 스태프의 환대에 이끌려 시켜먹었던 단짠 달팽이 요리를 4층 정찬 코너에서 다시 만났다.

특히 정선 하늘길-도롱이연못 여행을 마친 다음 정선오일장에서 먹던 얼큰 올챙이 국수를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 스펙트럼호 14층 실버다이닝에서 맛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잘 익은 한국 손맛의 김치가 늘 준비돼 있다.

스펙트럼호 종합예술공연 ‘실크로드’ 선상 공연

▶기항지 투어 팁= 기항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름푸르와 가까운 클랑, 페낭, 태국 푸켓이다. 클랑은 선착장에서 시내까지 이어지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좀 일찍 나와 택시 줄을 서든지 아니면 쿠알라름푸르 시내여행 데일리 패키지를 사전 예약하는 것이 좋다. 시내 근처에 바로 접안하는 페낭은 조지타운 등을 둘러보는 데일리투어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페낭힐 후니쿨라가 명물이다. 아쉬운 점은 누구든 무료일 것 같은 힐 전망대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

푸켓의 구색은 참 많다. 피피섬, 제임스본드 007 영화 촬영지 가분수 바위섬, 베스트오브 푸켓, 엘리펀트정글 생튜어리, 인라타농장 투어, 아일랜드 호핑, 초대형 부처상과 올드타운을 두루 섭렵하는 랜드마크 투어, 쇼핑투어 등 다양하다.

기항지에 들렀다가 우리 집이 된 크루즈로 돌아가는 길은 참 기분이 좋다. 기항지 여행은 발품 팔며 새 것을 탐험하는 재미이지만, 크루즈로 귀가하면 모든 것을 다 누리는 종합선물세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크루즈 패키지는 3개국 투어상품 비용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드는 정도이다.

기항지에 내렸다가도 승선마감 3~5시간 전에 이미 크루즈는 북적거린다. 5성급 호텔 10여개의 구색에 가장 살기좋은 부촌의 요건들을 모두 갖춘 곳에서, 어제와는 다른 새 콘텐츠의 축제를 즐기기 위함이다. ‘물멍’ 때리며 잠도 무제한 잘 수 있다.

진짜 내집으로 돌아갈 귀국일이 가까워지면서, 서운함이 잠시 몰려드는데, 크루즈에 너무 정이 들었거나, 치명적인 ‘21세기 뱃놀이’의 재미에 빠졌거나, 둘 중의 하나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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