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J-컬처의 귀환, 그 반가움이란

2023. 2. 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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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동네 남학교와 반 펜팔(penpal)이 유행했던 그 옛날 학창 시절, 내 편지에는 '백이면 백' 늘 답장이 왔다.

보통 '반 펜팔'은 남학교 반과 여학교 반의 단체 펜미팅(pen meeting)처럼 자신과 같은 반 번호의 이성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내 편지에는 늘 답장이 따라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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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동네 남학교와 반 펜팔(penpal)이 유행했던 그 옛날 학창 시절, 내 편지에는 ‘백이면 백’ 늘 답장이 왔다. 보통 ‘반 펜팔’은 남학교 반과 여학교 반의 단체 펜미팅(pen meeting)처럼 자신과 같은 반 번호의 이성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답장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화답을 받을 수도 혹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편지에는 늘 답장이 따라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필자의 글솜씨를 자화자찬했던 것도 잠시, 필(必) 답장의 비밀은 바로 내 이름에 있었다. ‘소연.’ 만화 ‘슬램덩크’의 주 무대인 북산고의 농구부 주장 채치수의 여동생이자 강백호의 짝사랑 대상. 땀 냄새 나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손가락이 오글거리는’ 로맨스를 기대케 하는 여성 캐릭터. 공교롭게 그녀와 내 이름이 같았다. 필자의 편지를 받았던 남학생들은 슬램덩크의 소연을 염두에 두고 나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했으리라. 상황을 제대로 안 후 필자는 “슬램덩크에서 나오는 소연이가 대체 누구니?”라고 씩씩거리며 책대여점으로 뛰어갔다. 이것이 만화 ‘슬램덩크’와의 첫 대면이었다.

30~50대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 슬램덩크에 대한 추억이 있다. 내가 좋아했든, 아니면 친한 친구나 언니, 오빠가 열광했든 당시 청소년들은 슬램덩크의 직·간적접인 영향권에 있었다. 슬램덩크뿐이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과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 등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당시 10~20대의 감성을 촉촉히 적셨다. 1990년대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 개방을 전후로 한반도에서는 특히 당시 10~20대였던 X세대 사이에선 ‘J-컬처’가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J-컬처가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슬램덩크 극장판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으로 “왼손은 거들 뿐”이란 명대사가 다시 유행하고, 일본 청춘영화인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20대 여성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서점가에선 일본 추리소설 ‘희망의 끈’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일본 팝아트의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는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열었는데도 ‘오픈런’이 이어졌다.

지난해까지 회자됐던 ‘노재팬(No Japan)’ 트렌드는 사실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으로의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으며 시작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 이후 양국 지도자들이 한일 관계 개선의지를 밝히는 등 해빙 무드가 이어지자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도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정치가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까지 막을 수는 없다. 노재팬 시국에도 내 옷을 사기 위해 ‘유니클로’에 갈 수는 없었지만 아이를 위해 ‘포켓몬빵’을 사러 편의점 순회를 돌았다. 혐한이 판치는 일본에서도 방탄소년단(BTS) 등 한류문화나 K-뷰티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문화적·정서적 유사성이 많은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를 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 있다. J-컬처의 부활, 이 현상이 반가운 건 나만의 생각일까.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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