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블랙리스트(Blacklist)화' 되는 한국 정치

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2023. 2. 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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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작금의 정치를 관찰하면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사건'을 연상시킨다. 블랙리스트는 곧 배제이다. 블랙리시트는 예술·문화뿐만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에서 모든 영역에서 존재하게 된다. 생각과 가치, 철학 심지어는 호불호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신'도 아닌 인간이 인위적으로 잘라내고 고립시켜 나가는 일이 블랙리스트 작업인 것이다.

엊그제 검찰 고위직을 지낸 인사와 통화 할 일이 생겼다. 윤석열 대통령도 잘 아는 분이다. 누구보다 윤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생각이 통화에서 물밀 듯 밀려왔다. 그러던 중 한숨을 내쉬었다. "나경원까지는 그런가 싶었는데 안철수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경원까지는 어떻든 이해하려 했지만 안철수와 윤 대통령의 정면 충돌을 보면서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복잡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최전선을 헤쳐왔다. 그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해서 민심을 획득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다음, 윤 대통령은 거꾸로 사람들을 그에게 충성시키려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배제의 정치'를 사법적으로 심판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수십명의 최고위직들이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그의 수사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햇수로 보면 멀게는 8년 전, 짧게는 불과 1~2년 전의 일이다.

대통령은 안철수를 "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고 했다. 윤핵관 비판에 대한 직격탄이다. 여당에서 그의 대적(archrival)들은 벌써 네 번째에 이르렀다. 이준석,유승민,나경원,안철수 이다. 유승민과 나경원은 보수 정당의 핵심 주류이다. 그들은 수십 년간 국민의힘 또는 그 전신 정당에서 일해 왔다. 그들의 대한 잘잘못이나 비판 견해가 있지만 보수 정당에서 그들을 "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생전 처음 있는 광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에게 '적'이 너무 널려 있다. 국제정치적으로는 북한도 주적이고 아랍에미레이트의 '적'인 이란도 '적'이라고 했다. 국내정치적으로 보면 같은 정당 내에서 주류 정치인들도 '적'일 진대, 야당을 언급해 뭐하겠는가.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이 칭하는 '적'은 가치나 철학에 기반한 것이 아니고 사적 감정인 '호불호'에 연유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욕구를 모르는 바 아니다. 여의도 정치에서 자기 세력을 갖고 싶은 것은 어떤 권력자의 욕망과도 일치한다. 우리가 사는 일이 역사와의 대화라면 그로인한 실패의 역사를 수없이 겪어왔지만 욕구는 억제하기 쉽지 않다.

정치의 '블랙리스트화'는 대통령의 자유 가치와도 상통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자유론'은 유명해서 다시 언급할 이유가 없지만 '배제의 정치'는 자유의 가치와도 맞지 않고 헌법 정신과도 일치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고 있다. 더욱이 정당에서 피선거권은 절대적 자유의 권리라 할 수 있다. 정치인이 선출직에 도전하는 것은 근본적 행위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국민의 지지와 비판을 받게 된다. 정치인의 피선거권을 제한한다면 그것은 정치의 몰락이다. 임명직이야 인사권자가 통치철학을 앞세워 '적임자'라 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 비판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렇다.

신영복 선생의 공산주의 논란 또한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가 다양해졌으므로 그를 '공산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안철수가 2016년 조문하면서 '위대한 지식인"이라고 말했다고 그를 '종북주의자'로 몰고 가는 일을 이해하기 어렵다. 신영복 선생은 '공산주의자'로만 규정하고 던져 버릴 수 없는 분이다. 한때 공산주의를 추구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철학은 삶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는다. "일생 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과 마음 좋은 사람의 차이, 머리 아픈 사람과 마음 아픈 사람의 거리가 그만큼 멀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김일성주의자'라 몰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의 철학이 등대로 다가올 수 있다.

'블랙리스트화'가 국가를 사회를 좁은 구멍 속으로 우겨넣고 있는 듯하다. 도가 넘쳐 숨쉬기 어렵게 한다. 블랙리스트 작업은 교도소 담장 위의 문제가 아니다. 법의 잣대를 떠나 사회를 이분법 구조로 몰아 넣고 분열을 조장한다. 그것은 국가의 역동성을 잠식하는 일이다. 특별히 지도자에게 중요한 양식이 '균형'이라고 역사는 되뇌어 외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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