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예술에 후원이 필요한 이유

이상철 이상철 스펙트럼 대표·예술기획자

"그는 사려가 깊고 중후하며 예의가 바르고 덕망이 넘쳤다. 고통과 유배와 신변위협을 겪으면서도 관대한 성품으로 모든 정적을 누르고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다. 부자이면서도 생활 모습은 검소하고 태도 또한 소탈했다. 당대에 그처럼 정치에 통달한 이는 드물었으니, 그는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군주론으로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이탈리아 정치이론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코시모 메디치에 대한 평가이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14세기 초부터 직물 교역을 통해 부를 쌓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평민의 권익 보호에 힘썼던 그의 아버지 조반니 메디치는 은행업 사업을 크게 일으켜 이탈리아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체가 돼 유럽 전역에서 가장 수익이 많은 가문으로 성장한다. 조반니 메디치의 장남인 코시모 메디치는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의 뒤를 계승한 로렌초 메디치 역시 피렌체 공화국의 지배자이자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된다. 피렌체에서 시작한 메디치 가문의 르네상스는 로마를 거쳐 유럽 전역에서 꽃을 피웠다. 르네상스 초기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들은 수공업 장인(匠人) 정도의 신분으로서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은 스스럼없이 미켈란젤로뿐만 아니라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등 많은 예술인과 어울리며 전폭적인 지원을 하면서 예술가의 위상은 크게 상승했고, 이에 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부를 축적한 상업가들이 예술을 후원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돼 르네상스 문예 부흥을 일으키게 된다.

이로써 메디치 가문은 점차 문학과 미술, 건축, 자연 과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유럽 문화의 근대화에 사상적 원류가 되며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다. 예술 후원자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로렌초는 소년들에게 특정한 기능을 익힐 기회와 좀 더 넓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예술학교를 설립했다. 로렌초는 어느 날 미켈란젤로가 난생처음으로 조각칼을 쥐고 대리석 작업을 하는 것을 보게 됐다. 이 학교 초기 입학생이었던 미켈란젤로는 목신상을 모방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 로렌초는 크게 놀랐고, 미켈란젤로는 목신의 치아 중 하나를 부수면서 잇몸을 파내 마치 이가 빠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로렌초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하며, 로렌초가 미켈란젤로의 순진함과 기술에 여러 번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얘기했다고 전해진다.

미켈란젤로의 아버지에게 부탁해 미켈란젤로를 양자로 삼았고, 로렌초는 미켈란젤로를 메디치 가문의 사람으로 돌보면서 인문학자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 참석하도록 했으며,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자신의 일의 결과에 대해 보고하도록 하면서 메디치 궁에 4년 동안 머물게 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의 대표 조각가이자 화가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인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 다비드 상과 피에타 상 등 명작을 남겼다. 메디치 가문은 사업과 예술 후원에 대한 정신을 온전히 계승했다. 이렇게 정치와 문화 등 다방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학문, 건축 등 서로 다른 분야가 융합해 큰 시너지를 일으키는 현상을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 부른다. 르네상스 문예 부흥은 아낌없이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의 자본을 영양분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으며, 메디치 효과가 없었다면 인류의 큰 예술적 유산인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의 작품을 볼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