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격추한 중국의 정찰 풍선… 레이더 감시 뚫고 어떻게 대서양까지 갔나
머리카락 10분의 1 두께 소재로 만들어
인공위성과 성능 비슷하지만 경제성 높아
중국이 띄운 일명 ‘스파이 풍선’이 미국을 횡단해 동부 연안에서 격추됐다. 중국이 보낸 풍선은 고해상도 카메라를 탑재한 채 고도 17~20㎞의 성층권을 날아 미국 본토를 정찰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 국방부는 지난 5일(현지 시각)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 상공에서 격추한 중국 풍선의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풍선에는 태양열 전지판과 고해상도 카메라가 부착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이 만든 이 풍선은 ‘슈퍼 프레셔 풍선(Super Pressure Balloon·SPB)’이다. 비닐봉지를 만들 때 많이 사용되는 폴리에틸렌 소재를 사용해 공기가 새지 않도록 밀폐형으로 만들어진다. 이 풍선은 성층권을 떠돌며 기상이나 우주를 관측하고, 정찰 기능을 할 수 있어 ‘성층권 풍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로 미국이나 일본에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성층권 풍선은 기상이나 우주를 관측하고 정찰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인공위성과 역할이 비슷하다. 하지만 인공위성보다 제작 비용이 저렴하고, 준비 기간이 더 적게 든다는 점에서 경제성이 높다. 또 풍선의 착륙지점을 설정해 고가의 탑제체를 회수할 수 있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김연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성층권 풍선을 목표 지점에서 터트려 착륙 지점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 관측이 종료되면 탑재체를 회수할 수 있다”며 “기상 조건에 민감하지만 성층권의 바람을 이용해 관측하고 장비를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성층권 풍선의 핵심은 소재다. 성층권에서는 기온이 낮아지기 때문에 대기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터질 만큼 예민해진다. 성층권에서도 터지지 않는 소재로 풍선을 만들어야 한다. 또 소재가 무거우면 풍선이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탑재 장비 무게에도 제약이 따른다. 성층권 풍선 개발이 활발한 미국과 일본의 경우 소재의 두께가 머리카락의 10분의 1(약 10㎛) 정도다.
이관중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성층권에서는 온도가 섭씨 영하 30~40도로 내려가기 때문에 풍선이 딱딱해져 약한 바람에도 터질 수 있다”며 “저온에서도 유연성을 유지하고 가벼운 풍선 소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성층권은 비교적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불기 때문에 궤적 계산에도 용이하다. 다만 이번에 중국 풍선은 최소 1만3000㎞를 비행했다. 이런 경우에는 기상 상황에 따라 이동 경로가 변경될 수 있어 원하는 범위 내에는 보낼 수 있지만, 정확한 지점에 보내는 것은 어렵다. 이 같은 비행 상황에 대비해 통상적으로 여러 개의 풍선을 한 번에 띄운다. 이번에 미국 주변 상공에서 발견된 중국 풍선이 2개인 점도 이런 이유가 고려된 것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도 중국 정찰용 풍선이 발견됐는데, 당시 발견된 풍선은 3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찰용으로 쓰일 수 있는 성층권 풍선은 레이더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비행 속도가 느린 탓에 전투기처럼 속도가 빠른 비행체를 감지하는 레이더에서는 걸러지기 때문이다. 다만 성층권을 비행하는 풍선의 특성상 맑은 날씨에는 육안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이 보낸 성층권 풍선은 지난달 28일 미국 알래스카주 서쪽 끝에서 처음 발견됐다.
성층권 풍선은 목적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제작된다. 가벼운 장비를 탑재하는 기상관측용은 폭 6m의 풍선으로, 30㎞ 고도를 비행한다. 중국이 띄운 정찰용 풍선은 버스 3대 크기인 폭 36m 크기에 태양열 전지판을 달고 17~20㎞ 고도를 비행했다. 중국이 기상관측용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성층권 풍선을 이용한 연구가 한 차례 진행됐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019년 9월 미 항공우주국(NASA)가 개발한 성층권 풍선에 태양풍 온도와 방출 속도를 관측하기 위한 탑재체 ‘코로나그래프’를 실어 보냈다. 당시 풍선의 크기는 폭 140m에 높이 216m로, 축구장만 한 크기였다.
국내에서는 2018년에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에서 성층권 풍선을 직접 만든 적이 있다. 하지만 주변국 국경에 진입하면 외교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탓에 국내에서는 이후로 따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다.
이관중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은 자국 영공 내에서 성층권 풍선 실험을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선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라며 “국내 연구진도 성층권 풍선과 관련해 꽤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개발하더라도 실험할 곳이 없어 개발이 거의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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