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공론화, 선거제도 바꾸어낼까

김은지 기자 2023. 2. 7.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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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논의가 본격화됐다. 현재 논의의 중심에는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을 바꿔야 한다는 데에는 여야 할 것 없이 동의한다. 문제는 방향이다. 이번엔, 될까?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2023 정치개혁의 해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이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정치개혁 논의가 본격화됐다. 현재 논의의 중심에는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있다. 소·중·대선거구제, (준)연동형·권역별 비례제, 석패율제 등에 대한 논쟁이 이어진다. 아직 각 제도의 이름조차 낯선 시민들에게는 생경한 풍경이지만, 정치권은 벌써부터 유불리를 두고 수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다. 특정 제도의 장단점에 대해 논하기 전,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정치개혁을 해야 하나. 대답에 따라 정치개혁 논의의 경로가 꽤 달라질 수 있다.

관련해 연이어 전하는 두 정치인의 이야기는 논의를 풍부하게 해준다. 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활동을 성찰하고 복기해야 한다고 김종민 전 정개특위 여당 간사는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위성정당을 낳은 책임을 통감한다는 그는 ‘공론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 시간에서 얻은 교훈이다. 21대 국회 정개특위를 이끄는 남인순 위원장은 ‘논의 과정’ 자체가 정치개혁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정 시한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그러할 때 정치개혁 작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당장의 논의는 내년 4월10일 총선에 집중되어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을 바꿔야 한다는 데에는 여야 할 것 없이 동의한다. 문제는 방향이다. 선거제 개편은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에 준하는 작업이다. 그만큼 까다롭다.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 전으로 돌아갈지, 현 제도에서 위성정당 출현을 방지할 안만 마련할지, 제3의 방안을 찾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디테일은 더 복잡하다. 지금까지 제출된 안은 지역구와 비례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그림이 제각각 다르다. 비율만이 아니라, 지역 선거구 사이즈(소·중·대)와 비례대표 선출 방식(권역별·직능별, 개방형·폐쇄형) 등에 대한 의견이 나뉜다. 의원 정수 확대를 기반으로 한 안도 있다. 어찌되었든 해답을 올해 안에 마련해야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올 한 해 정치권의 화두가 될 정치개혁 논의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관심을 기울인 만큼 정치개혁에 대한 동력이 생길 수 있어서다.

그런데, 될까? 새해부터 본격화된 정치개혁 논의에는 이 질문이 쉽게 따라붙는다. 경험 때문이다. 가까이서 찾을 수 있다. 20대 국회가 내놓은 정치개혁의 산물은 결과적으로 위성정당이었다. 2020년 총선 당시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은 이름만 다른 비례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 표의 비례성을 늘려, 쉽게 대변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원내 진출시키겠다는 계획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림〉에서 보듯이, 21대 총선에서 표의 불비례성은 ‘역대급’을 기록했다(〈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치적 효과(2020)〉, 김형철).

2019년 4월 국회 정개특위의 원안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당시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린 안은 ‘지역구 225석·비례 75석’을 중심으로 한 준연동형 비례제였다. 기존 정당 득표(비례)를 전체 의석 배분에 절반(준)을 연동시키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비례에서 10%를 얻은 정당은, 전체 국회의원 300석 중 10%(30석)의 절반인 15석을 할당받는다. 만약 지역구에서 2석만 얻었다면, 나머지 13석을 비례에서 가져간다. 통상 득표에 비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거대 양당에 불리한 방식이다.

위성정당의 출현이라는 결말

정작 그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사실상 다른 안이었다. 비례 의석이 대폭 줄었다. 지역구를 한 석도 줄이지 못한 결과였다. ‘지역 253석·비례 47석’으로 원위치했다. 줄어드는 지역구 의원들을 권역별 비례 출마로 유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개별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조차도 ‘캡(한도)’을 씌워 연동형 비례는 30석으로 한정했다. 나머지 비례 17석은 기존 방식으로 배분했다. 원안에 있던 석패율제(소선구제하 지역구에서 박빙 승부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로 구제)나, 권역별 비례제(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인구에 따라 비례 의석을 배분)도 사라졌다. 그 틈에 위성정당이 나타났다.

20대 정개특위 바른미래당 간사였던 김성식 당시 의원은 이에 항의하며 본회의 의결에 불참했다. 직후 그는 2019년 12월29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남겼다.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해 1년 내내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어깃장만 놓고 무조건 가로막아왔다. (더불어)민주당은 막판에 선거제도 개혁의 대의는 내던져버린 채 당리당략의 민낯만을 드러내며 의석 적은 정당들을 윽박질렀다. 현행보다 비례 의석이 한 석도 늘지 않게 된 것에는 일부 작은 정당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지금의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는 진단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연초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의 〈조선일보〉 인터뷰가 불쏘시개 구실을 했다. 그는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소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1명, 중·대선거구제는 2명 이상을 뽑는다.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를 나누는 기준은 각기 다르나, 4명 이상일 때 보통 대선거구제라 부른다).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그래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야당 대표들의 해법은 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서도 윤 대통령이 내놓은 방안에는 선을 그었다. “다당제,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시스템이 바람직하다고 말해왔다.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또한 “핵심은 비례성·대표성·다양성을 강화하는 국회 만들기다. 그것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데 입장 변화가 없다”라고 말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일본 사례를 언급하며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은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면서 공천권을 갖기 위한 당내 파벌정치가 심화됐고 소선거구제로 돌아왔다.” 오히려 초당적 젊은 정치인 모임 ‘정치개혁 2050’이 소선거구제 폐지를 주장한다. 소선구제가 양당 독점·적대적 공생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비판한다. 이 모임에는 ‘친윤(윤석열)’이라고 보기 힘든 국민의힘 김용태 전 최고위원이나 천하람 혁신위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동학 전 최고위원과 정의당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문정은 광주시당위원장 등이 참여한다.

정당과 정파에만 갇히지 않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에 더욱 헷갈린다. 어떤 제도를 도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핵심은 선거제도가 ‘그 시기 그 공동체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각기 장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지금 왜 정치개혁을 해야 하는지와 연결 지어 살펴야 한다. 오랫동안 지적되어온 현 선거제도의 문제는 ‘비례성과 대표성 부족’이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쪽이 어딘지, 그래서 어느 쪽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더 살려야 하는지 집중해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해법은 각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문제의식에 따라 갈린다. 지방소멸이 문제라고 보는 쪽은 선거구제의 광역화를 주장한다. 중대선거구제 논의와 맞닿아 있는 편이다. 여성·장애인·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가 대표되지 못하는 상황을 좀 더 심각하게 보는 쪽은 권역별 비례제에 회의적이다. 정당의 기능 약화가 문제라고 보는 쪽은 ‘개방형 정당명부식 제도’를 우려한다. 추가 세비 지출 없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로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는 것이 ‘정공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국 지금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가치에 더 다가갈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씨앗은 뿌려져 있다. 2022년 9월부터 시작된 국회의원들의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은 매주 관련 토론을 벌였다. 12월2일 토론회에 참석한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과거보다 일찍 이런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아무리 좋은 안을 내도 최종적으로 교섭단체 대표가 협상해서 ‘아니’라고 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여기서도 내용을 잘 제시하고, 국민 자문위원을 구성하고, 전문가들이 논의를 투명하게 다 언론에 공개해 멋대로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취임식에 참석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회사진취재단

입버릇처럼 말하는 ‘공론화’

이처럼 해당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공론화’가 되었다. 선거법 당사자인 국회의원과 시민 대표들이 직접 어떤 법안이 더 필요한지 투 트랙으로 토론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김종민 의원(20대 국회 정개특위 간사)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공론화를 적극 주장한다. “20대 국회 정개특위 안이 막판에 여야 지도부 협상으로 다 무위가 됐다. 그렇게 하지 못하게, 국회의원과 국민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숙의 작업으로 지도부가 쉽게 내용을 뒤엎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20대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현재 중진의원들의 대거 참여로 130여 명까지 확대된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공론이 만들어져서 압박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만 끌다가 12월이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선거구 결정만 하고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당 지도부도 다수 의원들의 의견이 만들어지면 그걸 무시할 수 없다. 선거제도 개혁을 벗어나려는 원심력을 제어할 구심력을 만들어보자는 게 이 모임의 취지다.”

국회의 논의 절차가 구체화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호응했다. 정개특위가 2월까지 선거법 개정안을 복수로 제안하면, 국회의원 300명이 토론하는 전원위원회를 회부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공론화다. 남인순 정개특위 위원장은 국민공론화위원회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공론화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가동된 공론화위원회 모델을 참조할 예정이다. 대선 공약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 이행을 둘러싼 찬반이 갈렸다.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에 의견을 물었다. 3개월 동안 활동한 시민배심원단이 내린 결론은 ‘건설 재개·향후 원전 축소’였다. 절묘한 숙의민주주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대 국회에서 한바탕 겪었듯, 제도는 쉽게 ‘해킹’당한다. 중지를 모은 제도가 위성정당으로 쉽게 탈바꿈했다.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성취될 때, 결과로서의 민주주의도 가닿을 수 있다. 정치개혁에 정답은 없다. 대신 숙의는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입법 제도 설계를 우리는 ‘정치’라고 부른다. 그 여정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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