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에 38년간 생이별했지만…원망도 못하는 부모들 "다 내 잘못"

원태성 기자 2023. 2. 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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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거래된 아이들]③잃어버린 아이, 바로 해외입양돼 찾기 힘들어
한국전쟁이후 해외 입양 약 20만명…아이와 재회 '3% 불과'

[편집자주] 1970~1980년대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명암이 뚜렷하게 공존하고 있다. 당시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들이 친부모가 살아있는 아이를 호적상 '고아'로 조작해 해외로 입양을 보낸 것은 불법 인권침해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지난 64년간 해외로 입양된 아동만 약 16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인원이 고아로 조작됐는지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없었다. 뉴스1은 최근 한 달 간 법무부·경찰청·보건사회부의 기·미아 통계와 각종 논문·연구 결과를 분석하고 이제는 성인된 '고아호적' 입양아를 직접 만나 해외로 거래된 아동들의 실태를 추적해봤다.

ⓒ News1 DB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그 때 아이를 맡기지 않았다면…내 잘못이죠."

영문도 모른채 3살에 해외로 입양 보내진 아들 조슈아와 38년만에 재회한 아버지는 누구를 원망하지도 어딘가에 하소연 하지도 않았다. 아이와 재회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가 갖고 있는 감정은 오직 아들에 대한 자책감과 미안함 뿐이었다.

그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38년만에 아이와 재회했던 2019년 1월을 회상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1981년 경제 사정이 어려워 잠시 지인의 집에 아이를 맡겼던 부모는 그대로 38년간 아이와 생이별하게 됐다.

지인을 따라 예식장을 방문했던 조슈아는 현장에서 길을 잃었다. 부모소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미아 신고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수야는 미아가 된 지 1달도 채 지나지 고아로 서류가 조작된 상태로 미군에게 입양됐다.

당시 아이를 찾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슈아 역시 당시 해외입양을 갔던 다른 아이들처럼 국가와 민간 입양기관의 주도 아래 고아 신분으로 입양 보내졌다.

그렇게 조슈아는 30년동안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증오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반면 부모는 같은 시간 동안 아이를 그리워하며 지옥같은 삶을 살아왔다.

부모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정부와 입양기관의 부실한 관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아직도 정부와 입양기관을 원망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자식이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에 평생 원망하고 고통받았을 것을 생각하면 시간이 흘러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 '다 크면 만나자' 약속했는데…부모 동의 절차 없이 입양 보내기도

과거 아이들을 해외 입양 보낸 친부모들의 상황은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입양기관은 친부모들에게 입양 절차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고 친부모가 입양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숭실대 산학협력단 연구팀이 지난달 1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해외입양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통한 인권보장 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과거 해외입양 당시 상황을 전하는 친부모들의 증언이 담겨 있다.

연구에 참여한 친부모 중 한 명은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면 거기서 아이들이 뭐 공부도 하고, 나중에 성인이 되면 엄마를 만나러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10년 안에는 아이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입양기관은 당시 해외입양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과장해 설명하면서 해외입양을 권유했지만 이는 현실이 아니었다.

연구팀이 해외입양인 65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 해외입양을 간 뒤 33.5%는 입양가정 내에서 학대를 경험했다.

조사 대상자의 약 70% 이상(68.7%∼96.1%)은 한국 입양기관이 해외입양인의 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친부모는 자녀를 기관 실무자에게 인계하면서도 자신의 자녀가 해외로 입양간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입양기관이 자녀를 맡기는 친부모에게 해외입양이 무엇이고, 자신과 자녀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설명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출산한 후 바로 해외로 입양 보낸 한 미혼모는 "우리 애가 1973년도 5월 11일생인데 당시 해외입양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지금까지도 나는 아이가 국내 고아원으로 보내진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44년 전 실종돼 미국으로 입양된 가족을 찾은 이응순(어머니), 윤상희(언니), 윤상명(오빠)씨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찰청 실종자 가족 지원센터에서 윤상애(미국명 데니스 맥카티)씨와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2020.10.18/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한국전쟁 이후 해외 입양 약 20만명…아이와 재회 '3%' 불과

입양기관에서는 성인이 된 후 아이를 만날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조슈아씨처럼 부모를 만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입양된 약 20만명 중 단 3%만이 부모를 찾았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조슈아씨처럼 길을 잃은 뒤 억울하게 해외로 보내진 아이도 상당수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입양 후 자녀와 자기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친부모로서 자신에게는 어떠한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입양을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친부모들은 자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태어난 직후 아이를 떠나 본낸뒤 30년간 재회하지 못한 한 친부모는 "혼자서 울어야지. 뭐 어떻게 하겠냐"며 "평생을 울고 산다. (아이가)어릴 때는 어려서, 커서는 커서 울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형편이 안돼서 기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었다"며 "가슴에다 묻어 놓고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살아왔지만 평생 그 때가 사무치게 후회된다"고 눈물을 훔쳤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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