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용 인기용 ‘정치 공공 요금’ 곳곳에, 나라는 골병
하루 평균 700만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은 매년 1조원씩 적자를 낸다. 원가의 60%로 설정된 요금과 65세 이상 무임승차 때문이다. 지하철 운영이 지속 가능하려면 비용의 100%를 요금으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역대 서울시장들이 선거를 의식해 요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지하철을 운행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게다가 인구 고령화로 급속히 늘어나는 65세 이상 무임승차가 지하철 적자의 절반에 육박할 지경이 됐다.
1984년 65세 이상 무임승차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부터가 정당성을 의심받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민심 무마용으로 내린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래도 당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6%로 그렇게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지금은 65세 이상 인구가 그때의 3배인 18%다. 2040년엔 인구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된다. 불과 17년 뒤의 일이다. 3분의 1이 공짜라면 세상에 존립 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겠나.
한국처럼 특정 연령 이상 승객 100%에게 지하철을 공짜로 타게 하는 나라는 없다. 30~50%를 깎아주거나 저소득층에 한해 혜택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선거를 의식한 정부와 지자체장들은 39년째 제도 수술을 미루고 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결과 전국 대부분 지하철 공기업들이 빚더미에 올라 있다. 그 빚은 시장, 도지사가 갚는 것이 아니다. 전부 세금 내는 국민이 갚아야 한다.
서민 가계를 짓누르는 ‘난방비 폭탄’도 근본적으로 같은 구조다. 문재인 정부는 LNG 가격이 3배 오르는데도 요금 인상을 미뤘다. 이렇게 되면 어느 곳에는 적자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돼 있다. 결국 터진다. 문 정부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뀌게 되자 찔끔 인상했다. 그동안 인상을 막은 것이 정치적 이유였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그로 인해 작년 9조원 적자를 낸 가스공사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작년 한 해 동안 요금을 38% 올리면서 난방비가 ‘폭탄’이 된 것이다. 문 정부는 탈원전 비판을 의식해 전기 요금도 거의 올리지 않았다. 그 결과 한전은 한 해 30조원 적자를 내는 부실 기업이 됐다. ‘정치 가스 요금’ ‘정치 전기 요금’이 민생을 왜곡시킨 것이다.
공공요금의 정치화는 어느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역대 정부 모두 임기 내내 누르다 선거 후 찔끔 올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공공요금의 가격 왜곡이 심해졌다. 그 결과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의 전기요금이 유럽연합(EU)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기형적 상황이 만들어졌다. 왜곡된 ‘정치 공공요금’ 때문에 에너지 위기가 닥쳐도 국민과 기업은 전기와 난방을 펑펑 쓰며 과소비를 지속하고 있다.
25년째 9%인 국민연금 부담률, 15년째 동결된 대학 등록금, 정부가 시장 가격보다 높게 사주는 쌀값 등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공공요금·가격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정치의 인기영합 정책은 입에 쓴 약이 아닌 몸에 해로운 설탕물이다. 설탕물은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결국 나라와 기업을 골병들게 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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