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 도입 주장, 취지도 대상도 틀렸다 [기고/황용식]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2023. 2. 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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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영국에선 숲 주인들이 땔감을 얻기 위한 도둑 벌채를 엄격히 금지했다.

이런 배경에서 1997년 영국 노동당은 집권 직후 횡재세(windfall tax)라는 세금을 만들었다.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많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됐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기업에 뒤늦게 횡재세를 부과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계는 해외의 횡재세를 사뭇 다르게 해석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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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중세 시대 영국에선 숲 주인들이 땔감을 얻기 위한 도둑 벌채를 엄격히 금지했다. 하지만 폭풍에 쓰러진 나무를 주워 가는 건 눈감아 줬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런 나무는 횡재나 다름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1997년 영국 노동당은 집권 직후 횡재세(windfall tax)라는 세금을 만들었다.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많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됐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기업에 뒤늦게 횡재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렇게 조달된 1조 원가량은 복지 재원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25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횡재세를 다시 부활시켰다. 에너지 위기에 처한 유럽연합(EU)이 위기 극복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발전회사 및 화석연료기업 등에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기업 3년 치 평균 이익 20%를 초과하는 수익에 대해 33% 세율로 세금을 부과, 1400억 유로(약 195조 원)를 걷어 전기료·난방비 급등에 시달리는 가계,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계는 해외의 횡재세를 사뭇 다르게 해석하는 것 같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내놓은 석유수입판매부과금 부과를 통해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부과금 취지 및 법리적인 측면에서 불합리하다. 석유사업법 제18조를 활용해 횡재세를 부과금 형태로 징수하자는 주장은 현재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다. 해당 규정은 과거 정부가 유가를 정해 고시하던 시절의 것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1997년 석유시장을 자유화한 이래 석유 수출입과 유가 결정이 시장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또 원유와 석유 제품은 국제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며 우리나라 역시 국제 제품 가격에 연동하여 국내 가격을 결정하므로, 수입 가격(국제 제품 가격)과 국내 가격의 차이가 없다. 이는 재정조달목적 특별부담금의 헌법적 한계를 일탈한 징수일 뿐만 아니라, 조세·부담금에 관한 헌법적 원칙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소위 횡재세 징수 목적으로 활용할 경우 이중과세금지 원칙,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등 헌법상 원칙을 위배할 가능성이 있기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횡재세 대상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영국이나 EU에서 횡재세, 즉 초과이윤세는 원유를 시추하고 생산하는 이른바 ‘업스트림(upstream)’ 생산업자에게 부과한다. 우리처럼 원유를 도입해 정제하는 정유사는 해당하지 않는다. 유럽 석유 기업들은 자원 개발, 공급, 발전까지 한다. 원유 채취 비용은 그대로인데 에너지 가격만 올라 떼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상황이 다르다. 원유를 해외에서 100% 수입한 뒤 휘발유와 경유를 만들고, 그중 절반 이상을 수출한다. 횡재세를 도입할 경우 국내 정유업계 수출 경쟁력을 하락시킬 수 있는 구조다.

사안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남기니까 무조건 세금을 걷는다는 단순화된 논리는,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과 동시에, 무엇보다도 횡재세에 대한 몰이해로 생긴 안타까운 논란일 뿐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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