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새봄 소식 먼저 띄운 졸업식 풍경
‘바이러스 격동기’ 겪은 미래 세대 펼칠 세상 궁금
지난달 26일 전국에서 가장 이른 졸업식이 부산에서 열렸다.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2022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이다. 이 대학은 남학생들이 병역특례에 따라 졸업 후 한 달간 군사교육을 거쳐 승선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대학보다 먼저 졸업식을 연다. 이날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졸업생들이 모자를 던지며 자축하는 이벤트가 눈길을 끌었다. 한동안 실종됐던 이 장면은 신문 지면과 TV 방송 화면을 장식했다. 온 세상을 짓누른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 퇴조 분위기를 상징하는 장면일 수 있겠다. 일상은 정상 회복 단계로 진행 중이다.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각급 학교는 학업을 마친 학생들을 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할 신입생 맞이에 분주하다. 입학 절차를 정식으로 밟은 학생은 학적을 얻는다. 해당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교과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치면 졸업장을 받는다. 다음 단계 상급학교 진학이나 취업 등 사회 진출의 증서다. 매년 되풀이되는 졸업식과 입학식은 당연히 거치는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이 시즌이 마무리되면 긴 겨울은 밀려나고, 생동감 넘치는 새봄이 온다.
새내기를 맞이하는 입학식과 정규 학업을 소화한 학생들을 축하하는 졸업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계절 변화처럼 매년 봄이 오기 전 어김없이 다가오는 풍경이었다. 각 분야 유능한 인재를 키우고 배출하는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면서 사회와 나라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올해는 유독 각별하게 다가온다.
3년 전 기억이 새롭다. 사람들은 익숙했던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갑자기 닥친 변화에 당혹감이 몰려왔다. 곧바로 이어진 졸업과 입학 시즌은 활기를 잃었다. 말 그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과 맞닥뜨렸다.
그 해 초·중·고교 졸업식은 모두에게 너무나 낯설었다. 학교 정문은 닫혔고, 졸업생들은 각자 교실에 모여 앉아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방송실에는 학생과 학부모 대표를 비롯해 동창회장과 학교운영위원, 학교장 등 극히 일부만 자리했다. 교실 안 졸업생들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온 반주에 맞춰 졸업식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행사는 끝났다. 정문은 그제야 열리고 학부모들은 운동장으로 쏟아져나오는 자녀를 찾아 꽃다발을 안겼다.
대학 졸업식은 홀로 축하하는 형태였다. 개별적으로 학과 사무실을 찾아 졸업장을 챙겨야 했다. 졸업생이 뒷바라지해준 부모나 친지 등에게 학사모를 직접 씌워 주고 함께 사진 찍는 이벤트 연출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어진 각급 학교의 입학식은 자취를 감췄다. 비대면 온라인 원격수업이 자리 잡으면서 학생들은 집안에 갇힌 신세였다. 대학 신입생들은 캠퍼스 낭만은 고사하고, 학과 동료 학생 얼굴조차 접할 수 없었다. 미래를 열어갈 인재 배출의 장인 학교 현장에는 적막감만 흘렀다.
인류 역사상 전쟁 등 격동기를 거치면 늘 변혁이 일어났다. 비약적인 과학기술 발전이 따르는 등 인간 생활상에 편리를 더하기도 했다. 엄혹한 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은 새로운 일상과 규범에 스며든다. 예전과 완전 딴 판의 세상이 오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격동기를 거치면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진화가 이뤄졌다. 바이러스 침공도 격동기를 몰고왔다. 당연히 이런저런 세상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020년 입학한 대학생 중 여학생은 올해 4학년 졸업반이다. 보통 한 학년을 마치고 입대하는 남학생들은 18개월(현역 입영 기준)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대학생활을 한다. 시간 흐름은 영락없다. 초 ·중 ·고 학생에게 3년 ‘인생 경험’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으로 전환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매일 오전 지방자치단체별로 통보했던 ‘코로나19 확진자 수 안내문자’가 오늘부터 중단된다. 해사대학의 졸업식 풍경에서 ‘바이러스 비상 사태’ 해제 국면에 이은 완전한 일상 회복이 눈앞에 왔음을 느낀다. 교실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학교에는 생기가 돌고 있다.
그동안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언젠가는 올 ‘미래 세상’이 앞당겨졌다고 한다. 인간에게 3년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격동기를 겪었다. 때가 되면 우리 사회 주류 세력이 될 그들의 세상에는 상상 이상의 변화가 생길 게 분명하다. 변화 속도는 전례 없이 가팔라질지 모른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길 일이다. 정상을 되찾은 학교 현장 분위기는 전과 달라졌다. 앞선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유형의 경험이 축적된 미래 주역들이 활개를 펼 새봄에는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해지길 바란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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