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안 본 사람 없다”는 수사극...시진핑 선전 드라마였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3. 2.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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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해진 ‘애국주의 주입’

중국에서 범죄 수사 드라마 ‘쾅뱌오(狂飆)’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14일 중국 국영 방송 CCTV와 OTT 플랫폼 아이치이 등에서 방영된 이후 “안 본 중국인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이치이에선 시청률 30%를 넘기며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주연 배우 이름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일일 조회 수가 5억7000만회에 달했다. 드라마에서 자주 언급되는 ‘손자병법’은 중국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 판매 1위에 올랐다. 쾅뱌오는 중국의 가난한 생선 장수가 범죄 조직을 이끄는 기업인으로 성장했지만, 당국의 부패 척결 철퇴를 맞고 추락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국에서도 최상류층 범죄를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내는 드라마가 나올 줄 몰랐다”는 중국인들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드라마가 중국 공안·사법 총괄 기구인 중앙정법위원회 지도로 제작됐다는 점이다. 드라마 제목 ‘쾅뱌오’는 마오쩌둥이 쓴 시구 ‘혁명의 힘이 폭풍처럼 일어난다(狂飆爲我從天落)’에서 따왔다. 대사와 내레이션 곳곳에 시진핑 어록이 녹아있다. 드라마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전인 2000~2010년대에 이뤄진 범죄에 대해 현 시점인 2021년 가차 없이 응징하는 구도로 진행된다. 과거의 부패를 시진핑 시대가 청산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 사후 검열에서 대사가 많이 바뀐 탓에 연기자들의 대사와 입 모양이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쾅뱌오가 범죄 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계산해 만든 시진핑 체제 옹호 콘텐츠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에서 박스오피스 1, 2위에 오른 류랑디추2(왼쪽)와 만장훙.

중국은 코로나 방역을 전면 완화한 이후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3월 4일 개막)를 앞두고 블록버스터급 애국 드라마와 영화를 잇달아 공개하며 체제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중국에서 흥행 1·2위에 오른 영화는 중국의 인공지능(AI)과 로봇 굴기의 열망을 담은 ‘류랑디추2′와 외세 척결을 주제로 한 ‘만장훙(滿江紅)’이다. 아바타2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류랑디추2는 전편(2019년)처럼 중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줄거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중국의 첨단 기술이 해결사로 등장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류랑디추2는 중국이 기술적 우위로 미국을 넘겠다는 야망을 담았다”고 했다. 장이머우 감독의 만장훙은 ‘악비(岳飛·송나라 명장)의 정신’으로 금나라 침략에 맞서 싸우는 송나라 장군의 이야기다.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은 ‘정충보국(精忠報國·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한다)’이다. 만장훙을 본 한 남성은 더우인(중국판 틱톡)에 올린 영상에서 “나라를 위해 미국에 맞서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콘텐츠에 애국주의를 입히는 방식은 한층 정교해졌다. 공산당 이념이나 중국 혁명사를 노골적으로 홍보하던 과거 ‘주선율(主旋律·공산당 이념 홍보)’ 영화와 드라마는 자취를 감추고, 코미디(만장훙)·범죄(쾅뱌오)·SF(류랑디추2) 등 다양한 소재의 대작들이 늘고 있다. 경제 매체 차이신은 “중국 드라마가 사회 현실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반영하는 등 수위가 높아졌다”고 했다. 현지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대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작품 하나를 찍으려면 애국주의 작품 하나를 먼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앞으로 애국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고, 해외 수출도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 지방 정부와 관영 신문 등은 중국 20차 당 대회에서 처음 등장한 문구인 ‘문화 자강(自强)’을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 ‘문화 자신’을 넘어서 문화의 힘을 키우는 ‘문화 자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붓자루’로 불리는 리수레이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장은 지난해 말 인민일보에 “문화 자강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것”이라고 썼다. 중국은 자국 문화유산에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지방 정부들이 문화유산 홍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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