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신라 천년의 書庫
요즘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도서관을 쉽게 만난다. 그 앞에 서면, 10여 년 전 연수를 했던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불교미술자료연구센터’가 떠오른다. 가장 전망 좋은 곳, 품격 있고 고풍스러운 건물에 꽉 채워져 있던 불교 관련 서적과 각종 전시 도록이 내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자유롭게 귀한 자료들을 맘껏 이용할 수 있었다. 샘이 났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박물관에는 주로 직원들을 위한 자료실만 있었기 때문이다.
국립경주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자료실에 들어서면 빼곡한 책들로 숨쉬기도 버거웠다. 책의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 채 구석마다 풀이 죽어 있는 책들. 가끔 자료 찾으러 자료실에 갈 때마다 나라박물관에서 만났던 도서관이 떠올랐다. 이때부터 관람객이 향유할 수 있는 박물관 속 도서관을 만들기로 뜻을 세웠다. 그러나 예산과 대지를 확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문득 경주박물관 월지관 뒤편 한옥 건물이 내 눈에 들어왔다. 1970년대에 시멘트로 지어져 한때는 수장고로 쓰이던 건물이 뒤뜰을 차지하고 있었다.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에 자리 잡은 이 오래된 한옥 건물이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소임을 다할 것 같았다. 마음은 바빠졌다. 하루라도 빨리 먼지 쌓인 책들을 구조하려는 간절한 소망으로 이뤄진 도서관이 바로 ‘신라천년서고’다. 도서관을 만들려는 큐레이터의 열정과 한옥 건물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K교수의 디자인이 만났다. 건물 외관은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를 리모델링해 친환경 건물로 다시 태어났다. 실내는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로 이어지는 한옥 전통 건축의 부재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개방감과 편안함을 추구했다.
신라천년서고에서 신라의 사연을 담은 수많은 책과 전시 도록이 제자리를 찾았다. 이젠 편안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신라 어느 절에 있다 먼 길을 돌아온 석등이 도서관의 어둠을 밝힌다. 책 읽기를 멈추고 눈을 돌리면 멀리 월정교가, 가까이 신라 궁궐 월성의 오래된 소나무들이 우리를 부른다. 박물관과 더불어 박물관 도서관이 천년 고도(古都)의 과거를 오감으로 느끼는 색다른 사색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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