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상민은 꺼져주세요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23. 2.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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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는 핼러윈데이를 맞아 이태원을 찾은 시민들이 인파에 떠밀리다 압사당한 사건이 아니다. 압사의 위험을 대비하지 못한 국가가 구조 신호마저 무시하다가 수습에 실패한 사건이다. 생명권 보호에 실패한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국가 책임’은 너무 추상적인 말이라 누구더러 어쩌라는 것인지 모호하다. 책임지는 국가를 아직 만나보지 못한 우리의 현재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국가는 재난참사로부터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과 대비, 대응과 수습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진상규명은 시스템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평가의 방향이 중요하다. 재난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구체적 순간들에는 구체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수사는 이들의 과실을 따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면, 우리의 생명은 어떤 공무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권리가 아니며, 시스템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현장이나 112상황실에 있던 경찰관 중 한 명이라도 상황을 간파하여 신속한 보고와 개입이 이루어졌다면, 이태원 참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방향은 달라야 한다. 거기 누가 있더라도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스템의 역할이다. 상급자일수록 일선 공무원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점검하고 먼저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 앉아서 보고하는 대로만 들으라고 앉힌 자리가 아니다. 보고가 늦어 긴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는 변명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하급 공무원들에게 떠넘기는 못된 습관이다.

행정안전부는 재난안전 시스템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정조사에서 이상민 장관은 압사사고가 법에 미리 규정되지 않아 대비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법에 규정되어 있었더라면 대비하기 수월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재난이 미리 자신의 모습을 법에 그려줄 수는 없다. 낯선 재난이 닥치더라도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라고 재난안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법의 미비로 인한 대비 어려움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의 호소일 수 있어도 행안부가 변명할 거리는 아니다. 이상민 장관은 중대본 설치가 “촌각을 다투는 문제는 아니”라고도 했다. 자신이 보고받은 시점은 긴급구조통제단장의 지휘 아래 응급조치가 가장 중요한 때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 행안부 장관은 구조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경만 하면 되는 때였을까? 특히 이태원 참사에서는 소방과 경찰의 협업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대본 역할이 긴요했다. 응급실 이송, 영안실 연계, 시신의 인도와 유가족 지원 등이 촌각을 다투는 문제라는 점도 따로 강조하고 싶다. 재난참사는 존엄과 권리가 무너져내리는 사건이다. 붕괴를 막는 데 지체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특수본 수사가 비켜가고 여유롭게 국정조사에 출석한 이상민 장관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이렇다면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었다는 고백일 뿐이다. 한편, 장관의 자리에 누가 앉아 있든 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시스템이 실패한 사건이기도 하므로 우리는 국가의 재난참사 대비 기능을 새롭게 세워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그 일을 이상민 장관에게 맡길 수 없음은 분명하다.

부족함과 잘못을 시인할 줄 모르는 상급자는 무책임이 구조화되는 시스템을 만든다. 시스템의 누구든 더 책임질 역량을 키우기보다 덜 책임질 명분을 쌓도록 길들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서 똑같은 사고는 막을 수 있을지언정 또 다른 참사는 막을 수 없다. 그러니 100일 추모대회에서 유가족협의회 부대표가 했던 말을 한 번 더 전해야겠다. “이상민 장관님 제발, 꺼져주세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의 출발선이자 책임지는 국가의 시작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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