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문신(文信)과 떡잎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는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특별 전시회가 지난 1월 말까지 열렸다. 초기 회화부터 후기 조각까지 생애를 망라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작가의 사유의 흐름을 일별할 중요한 기회였다. 전시 기획도 놀라웠지만, 국립현대미술관과 수류산방이 공동 제작한 2권의 책은 방대한 사진과 글, 도면들이 입체적으로 편집되어 전시도록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오래전 문신의 조각 작품을 처음 마주한 순간, SF영화 에이리언의 외계 생명체와 가우디의 조각 작품이 연상되었다. 트레이드마크인 대칭(시메트리) 구조 형상들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우주의 생명체나 기호를 상징하는 듯했다. 대칭적 측면에서만 보면, 그의 조각 작품은 식물성이라기보다 동물성에 가깝다.
그는 돌은 거의 쓰지 않고 나무와 철(브론즈)을 주로 사용했다. 나무 재료 중에는 흑단이 많다. 흑단은 제작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선과 면, 그리고 문양을 ‘스스로 창조’하는 특성 때문에 자주 사용되었다. 작품 중에는 기계 부품, 단풍나무 씨앗, 또는 콩팥 형상을 띠는 것도 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기계적 구조체가 아니라, 전체가 부분을 아우르는 유기적 시스템을 갖춘 형상처럼 보인다.
무엇을 표현하려던 것일까. 시메트리 개념 성립의 실마리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연 만물이 다 그렇듯 좌우균제로 돼 있지요. 식물을 보면 중심축에서 처음 떡잎이 두 개가 나와서 성장합니다.” 1985년 TV 인터뷰에서, 의외로 그는 ‘떡잎’을 언급했다.
단단한 씨껍질을 뚫고, 코끼리 귀 같은 작은 떡잎 두 장이 솟아 나오는 광경이 그에게는 감동적이었던 모양이다. 오랜 기간 어둠과 추위를 견디면서 힘을 모아 세상으로 두 팔을 벌린다. 줄기를 중심으로 좌우로 버티며, 균형을 유지하는 떡잎을 독일의 괴테는 태반(胎盤)이라 불렀다. 검은 흙(그는 일본 규슈의 탄광촌 출신이다) 속에서 피어나는 초록의 떡잎을 보면서 문신은 자신의 일생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노마드처럼 살았던 문신. 종과 횡의 건축적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수직 요소가 강해 상승감을 보여 주는 그의 작품은 우주를 향해 솟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그 우주선 속에는 옹골찬 씨앗 하나씩을 품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비행사를 꿈꿨지만, 탄광의 광부로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었을까. 그의 본명은 문안신(文安信)이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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