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즈마가 질병의 근원” 히포크라테스 진단 맞았나

박건형 논설위원 입력 2023. 2. 7. 03:02 수정 2023. 12. 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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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일러스트=이철원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00년 “집 안의 먼지나 부패한 물질은 나쁜 공기를 만들고, 이는 질병의 근원이 된다”고 썼다.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이 미신이나 신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환경, 식습관, 생활 습관의 산물이라고 믿은 최초 인물이었다. 그가 등장한 후에야 종교와 의학이 분리됐다. 그런 히포크라테스가 사람에게 가장 해롭다고 지목한 것이 오염된 공기였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61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장작불로 인한) 악취와 유독한 재 구름이 내 몸에 축적돼 있었다는 것을 로마를 떠난 뒤에야 깨달았다”고 했다. 2000년 전 로마 법원에는 “이웃의 연기가 우리 집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민사소송도 제기됐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공기 오염을 줄이거나 막는 데 실패했을까. 과학자들의 답변은 이렇다. 문명의 이기가 위험을 무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를 비롯한 미국·유럽 공동 연구팀은 2012년부터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에서 ‘아이스 코어(ice core)’라는 얼음 기둥을 뽑아내 분석하고 있다. 빙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내린 눈이 쌓여 만들어진다. 빙하 속에 갇혀 있는 기포(氣泡)와 얼음 성분을 분석하면 그 시기의 대기 조성은 물론 기온 변화까지 파악할 수 있다. 무려 80만년이 담긴 기상 관측 기록인 셈이다. 연구 결과 인류가 본격적으로 공기를 오염시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00년 무렵이었다. 대장간에서 금속 무기를 만들어내는 야금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온실가스인 메탄을 대량 생산하는 박테리아의 근거지인 논이 확장됐다. 13세기 석탄 보급, 16세기 대규모 축산업 확산, 18세기 증기기관이 촉발한 산업혁명,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번영 등 문명을 바꾼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공기 질은 나빠졌다. 이 연구는 1750년 이후에야 사람이 지구의 대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종전 학설을 완전히 뒤엎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약 700만명이 대기오염으로 조기 사망했다. 지난해 시카고대 연구팀은 “오염된 공기로 인한 평균 수명 손실은 2.9년에 이르는데 담배, 술, 테러의 영향보다 높다”고 밝혔다. 오염된 공기는 호흡기 감염, 심장병, 폐암 등의 직접적 원인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인지 장애, 우울증, 지능 퇴화의 원인이라는 점까지 밝혀지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환경건강에 발표한 논문에서 “성인 25명에게 디젤 자동차 배출 가스를 마시게 한 결과 2시간이면 뇌 기능을 손상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배출 가스 노출 전후에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MRI)으로 뇌 활동을 측정해 비교하자 기억과 사고를 담당하는 뇌 네트워크에서 광범위한 기능 저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과학자들은 다른 장기와 달리 뇌는 대기오염의 유해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면서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음이 입증됐다”고 했다. 공기 질이 사람의 판단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팀은 이달 초 “2017~2019년 독일에서 열린 체스 대회 참여 선수 121명의 경기 기록과 초미세 먼지 농도 변화를 비교 분석한 결과 공기 질이 좋지 않을수록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초미세 먼지가 1㎥당 10㎍(마이크로그램) 증가할 때마다 선수들이 실수할 확률이 3.2% 늘었고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일수록 초미세 먼지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핀란드 실험에서는 공기청정기가 켜진 방에서 인지 능력 테스트를 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실수하는 비율이 43% 줄어들었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의사와 과학자들은 질병의 원인이 ‘미아즈마(Miasma)’라고 여겼다. 고대 그리스어로 ‘오염’을 뜻하는 미아즈마는 물질이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나쁜 공기로 콜레라, 흑사병 등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전시 병원의 위생을 중시했던 나이팅게일도 미아즈마 신봉자였다. 무려 2000년 넘게 이어진 미아즈마 학설은 19세기 후반 세균이 발견되면서 폐기됐다. 하지만 숨 쉬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드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는 미아즈마 학설이 틀렸다고 치부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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