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당근’이 만드는 이상적 공동체

이융희 문화연구자 2023. 2.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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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건 하루하루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새로움은 아이에게서 비롯되지만, 간혹 외부에서 시작되는 새로움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아이의 교육발달에 맞춰서 만들어진 수많은 교육 서적이나 아이의 장난감, 익숙한 키즈카페가 아니라 베이비 카페부터 수많은 놀이시설과 편의시설까지. 이때까지의 나와는 접점이 없었던 세상으로의 길이 갑자기 개통된 것만 같았다. 나나 아내나 육아가 처음이다 보니 모든 것이 하루하루 새롭다. 심지어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때가 많았으니, 뒤늦게라도 정보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게 된다. 왜 사람들이 산후조리원의 동기들이나 맘카페 등을 통해서 정보를 찾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우당탕 육아를 시작한 것도 1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육아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물어다 주는 건 맘카페나 산후조리원, 또는 육아를 하고 있는 주변 친구들이 아니라 ‘당근마켓’이었다. ‘당근마켓’은 주변의 사람들과 중고 거래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개 애플리케이션으로, 2022년 누적 가입자 약 3200만명, 매달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1800만명이나 된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매주 당근마켓에 들어온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 국민이 애용하는 플랫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러한 당근마켓의 성장 동력 중에선 팬데믹이라는 시대 상황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1월 당근마켓의 월 활성이용자 수는 187만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소비를 추구했고 ‘정리’를 바탕으로 한 미니멀리즘 삶이 유행했다. 지금, 여기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이 마켓에 올라왔고, 싼값으로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당근은 어떤 누군가가 물건과 관련된 노하우와 감상, 정보값이 뒤섞인 거대한 큐레이션의 장이 되었다. 검색어를 입력하면 해당 제품뿐만 아니라 관련 제품들의 평가와 사용 감상이 넘쳐났다. 학습전집이나 교구 중에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어 잘 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한 제품을 사면서 자연스럽게 구매하는 다른 제품들도 알게 되었고, 비교를 위해 찾아본 제품들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비단 육아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키보드의 세계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고 글쓰기를 위해 무접점 키보드를 맞췄으며, 홈오디오를 위해 중저가의 좋은 브랜드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더 최신의, 더 상세한 정보값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정보를 충실히 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를 찾아야 하는지이며 당근마켓은 그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큐레이터이자 소비를 통해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인 셈이다.

당근마켓에는 ‘온도’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친절하게 거래를 진행해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면 온도가 올라가는 형식으로, 인터넷에는 수많은 90~100도 유저와의 거래 간증글이 넘쳐난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다보면 당근마켓이 꿈꾸는 건 단순한 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을 이용해 사람들 간의 관계성이 회복된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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