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법 앞의 평등보다 중한 평등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입력 2023. 2. 7. 03:00 수정 2023. 2. 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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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의 평등은
중대한 가치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또한 그렇다
루소는 평등의 실현 위해
경제적 평등을 강조했다
정치를 쓸모 있게 하려면
적어도 이런 정도 평등을
지향하고 천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부와 권력 보유한 자들 간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반대하더라도 반드시 김건희 특검 관철을 통해서 성역 없이 수사하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입증하겠다.” 지난 4일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장외집회 때 박홍근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이날 집회의 제목은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였다. 박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법 앞의 평등은 검사독재에 대항해 보존하고 구현해야 할 정치·사회적 가치로 제시된 것이다. 검사독재는 제1야당 대표는 부당한 검찰 수사를 앞세워 탄압하면서도, 대통령 부인에 대해서는 범법 혐의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의 개념적 표현이다. 즉 법 앞의 평등을 훼손하는 통치 행태를 검사독재라고 정의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집회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을 통해 앞으로(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지만) 검사독재에 맞서 법 앞의 평등을 중시하고 구현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명분으로 대정부-대여투쟁을 할 것임을 표방한 셈이다. 그런데 그 투쟁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즉 국민 다수의 관심과 참여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법 앞의 평등은 중대한 가치다. 근대 정치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를 세우는 역사적 과정 내내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 흔적을 저 멀리는 프랑스 혁명 때의 인권선언에서, 그리고 가깝게는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은 제6조에서 법 앞의 평등을 “법은 보호하는 경우에나 처벌하는 경우에나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도 제11조 1항에서 법 앞의 평등을 천명하고 있다. 굳이 명문화된 선언과 헌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법 앞의 평등은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 중대성을 입증하기 위해 별도의 논의와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법 앞의 평등을 내세워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평등에는 법 앞의 평등만 있는 게 아니다. 경제적 평등이나 성 평등과 같이 법 앞의 평등과 다른 종류의 평등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 다수의 경우 다른 종류의 평등을 한층 더 중시할 수밖에 없는 삶의 현실과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1야당 대표와 대통령 부인 간의 법 앞의 평등을 우선 문제 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해 2023년 1월 작년 대통령 선거 패배 분석의 선상에서 ‘불평등 보고서: 현황과 쟁점’을 작성해 발표한 게 다름 아닌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라는 건 꽤나 아이러니하다. 이 보고서는 정당정치가 전 세계적인 화두이자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큰 쟁점이기에 우선 다루어야 할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주제로 삼고 있는바, 여기서 (불)평등은 기본적으로 소득과 자산을 기본 축으로 해서 지역, 성, 종사상 지위 등을 둘러싸고 나타난 문제들이다. 이는 (불)평등이 단지 통치 행태 차원이 아니라, 자원의 배분에 대한 시장, 복지, 노동, 산업, 정치체제를 아우르는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 이 때문에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세나 소득 이전과 같은 재분배 영역은 물론 노동시장에서 임금소득이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는 임금정책, 노동자의 지위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실업(재훈련)과 (재)취업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행노동시장정책의 강화, 계층이동 사다리가 아니라 불평등 세습의 수단이 되어버린 교육의 정상화 등이 서로 상보적인 관계로 묶이는 종합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민주당 보고서 ‘시간 불평등’ 부각

또 기존 정책과 과감히 단절해 불로소득에 대한 과감한 과세, 체계적인 증세 추진 혹은 국가부채 관리를 통한 사회정책예산의 과감한 증액, 대학 입학 추첨제 도입 등 불평등의 근원이 되는 부분에 대한 경로의존성에서 과감하게 탈피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선상에서 보고서는 작년 대선에서 패배한 근본적 원인을 그와 같은 정책적 노력과 시도에 기반한 지지층 확장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후보자에 대한 호불호만을 선택지로 제시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런 논의 전반에 걸쳐 보고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법 앞의 (불)평등 그것도 자기 당의 대표와 대통령 부인 간의 법 앞의 (불)평등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해왔던 불평등의 또 다른 차원으로서 ‘시간불평등’을 새롭게 다루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지위와 직업, 그리고 젠더에 따라 일터와 삶의 일상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거나 자기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 경험에서도 격차가 나타나고 있음을 포착한 것이다.

이런 보고서의 관점에서 보면 이재명 대표가 집회 당일 (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재명을 아무리 짓밟아도 민생을 짓밟지는 말라”면서 “부자들 세금을 왜 그렇게 열심히 깎아주는 것인가”라며 정권을 비판한 게 작금에서 우선 문제 삼을 (불)평등 문제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필자 같았으면 이재명 대표의 그와 같은 발언의 선상에서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평등의 구현을 역설하는 것으로 집회의 의미를 구성했을 것 같다. 법 앞의 평등을 거론한다 해도 사회경제적 약자와 강자 간의 차원에서 다루었을 것이다.

불평등, 생활 전역으로 확장·심화

1월31일~2월2일 실시된 한국갤럽의 정당별 호감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호감(국민의힘 33%, 민주당 32%)보다 비호감(국민의힘 58%, 민주당 57%)이 더 높다. 이런 양상은 민주당의 경우 2021년 4월 이후 2년 가까이, 국민의힘의 경우 2018년 8월 이후 무려 4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두 정당 모두 지지층 확장을 위한 역량을 소실했음을 알려준다. 비단 두 정당만의 일은 아니다. 제3당인 정의당의 경우도 2018년 8월 이후 48%였던 호감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는 20%에 불과하다. 현재는 비호감이 무려 63%에 달해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과장하는 것일 수는 있겠으나, ‘정당들에 대한 비호감 절대 우위 현상’은 우리 사는 시대 상황과 삶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평등 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다룬다 해도 엉뚱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지 않은가 싶다. 위의 보고서도 결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작금의 시대에 ‘정치의 쓸모’는 불평등 문제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불평등 문제가 이제는 기후와 재난, 건강, 교육, 디지털 전환 등 생활세계의 전역에 걸쳐 확장·심화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최근 선풍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챗GPT 같은 인공지능 사용도 곧 유료화되면서 불평등 심화를 한층 더 촉진시킬 수 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의 저자 장 자크 루소는 평등을 근대적 의미에서 본격적인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킨 선구자다. 그는 불평등을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예속 상태라고 보았다. 특히 부의 차별적 소유에 의한 부자의 빈자에 대한 일방적이며 비인간적인 지배를 문제 삼았다.

그래서 루소에게 평등은 부의 차별적 소유에 따른 지배-예속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인간 상호 간에 대등하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관계 상태를 가리킨다. 루소는 이의 실현을 위해 누구도 재산을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지 않으며, 오직 타인에게 지배당하거나 예속되지 않을 만큼의 재산만 소유하는 경제적 평등을 강조했다. 정치를 쓸모 있게 하려면 적어도 이런 정도의 평등을 지향하고 천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부와 권력 자원을 보유한 자들 간의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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