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의사람연구] 지난여름 소년범들로부터 얻은 지식

2023. 2. 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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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생보호시설·회복센터 돌며
가정·사회 환경 중요성 깨달아
보호 못 받은 아동들 공감력 부족
‘따뜻한 연대’로 범죄 방지해야

잠깐 동안의 정치권 외유 후 돌아온 여름방학에 정말 정신없이 지냈다. 다름 아닌 연구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함 때문이었는데, 전국에 산재한 법무복지공단의 갱생보호시설과 촉법소년을 수용하는 회복센터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였다. 법원으로부터 위탁된 회복센터의 아주 어린 소년범죄자부터 평생 범죄를 저질러 이제 노인이 된 장년범죄자까지 동시간대에 만나게 된 일은, 마치 범죄자의 일생을 한눈에 훑어보는 새로운 통찰을 주는 경험이었다. 형사정책적 연구 목적은 처우 집행의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만, 범죄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그들은 삶은 그야말로 불가피한 불행의 우연한 결합이었다.

사람의 의사결정권이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환경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인간의 선택권이란 매우 협소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내팽개쳐 놓았음에도 혼자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아인슈타인이나 슈바이처 정도 되지 않으면 애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피조사자들에 대한 다양한 심리평가와 면담 결과 발견된 사실은 바로 사회적인 보살핌 없는 상태에서 사람다운 선택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최근 갱생보호시설이라도 갔어야 했지만 원룸에서 독거하던 연쇄성폭행범 박병화의 자살 시도가 있었다. 연일 이어지는 시위와 사회적 비난이, 잔혹한 성범죄자였던 그로서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혹자는 피해가 온전히 회복도 되기 전 가해자에 대한 배려가 왜 필요한가 하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생존은 사회적인 관계와 완전히 괴리되어서는 애초 성립하기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들의 환경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환경의 중요성은 회복센터에 있는 소년범죄자에게 있어서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일이다. 똑같이 가정법원을 통해 위탁된 어린 소년범들 중에서도 친부모의 돌봄이 일찍부터 결여된 아이들일수록 타인의 정서적 자극에 둔감하였다. 정서인식력을 평가하는 검사에서 이들은 타인의 얼굴에서 나타난 공포의 단서를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하였다. 즉 자신의 폭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자의 고통 호소에 민감하지 못하게 혹은 오인하여 대응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고통 호소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만일 이들이 부모의 보호나 제대로 된 개입 없이 그대로 성장하게 된다면 결국 인생의 후반기에는 상습범이 되어 갱생보호시설에서 발견되어야만 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위 공감(共感)이란 매우 고등한 정서로서 절대 이기적인 본능만으로는 달성되기가 어렵다. 공감은 상대방 입장에 서서 상대가 경험한 바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거나 생각해보는 능력인데,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것은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과 감정적 공감(emotional empathy)인데, 이 중 감정적 공감은 특히 대뇌피질의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야 하는 반응이다. 가끔 일반인 중에서도 타인의 고통을 보고도 전혀 감정적인 동요를 느끼는 못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흔히 타인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무신경한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최근 서구 사회의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어린 아동기에 차후 사이코패스로 성장하게 될 경향성을 알아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동기 사이코패스란 주제의 연구물들이 그것이다. 물론 성격장애의 일종인 사이코패스는 만 18세 이전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여서는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조적인 징후인 냉담(Callous-Unemotional)한 특징에 대한 연구는 최근 열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C-U 특질에 대한 연구 수행의 이유는 바로 원인이나 발달 과정을 좀 더 밝힐 수만 있다면 조기 개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만일 가정법원에서 어린 촉법소년에 대한 조사 시 이들의 위험한 성장 곡선이 예견된다면 일찍부터 그들에게 보다 필요한 올바른 계도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일으킬 수도 있는 잔인한 범행을 막는 일은, 당사자들을 위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방향의 근저에 이번 여름 촉법소년들로부터 발견한 그들의 발달 특성, 즉 어릴 때부터의 보호 환경 결손이 이들의 공감 능력 결함, 즉 잔인함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실증적 증거가 존재하는 것이다. 부모가 제공하는 안전한 환경에서 배양되는 희로애락의 건강한 정서가 타인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심, 나아가 자신의 가해 행위를 제어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환경을 바꾸어주는 노력이 그들의 재범 억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학대나 방임 속 잔인한 환경의 희생양이 되는 현실을 막아낸다면 타인에 대한 따듯한 배려가 있는 성인으로 좀 늦기는 하였지만 사법제도 속에서 부모 대신 키워 낼 수 있지 않을까? 촉법소년의 연령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소년범죄의 흉포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전제의 적확함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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