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맞섰던 수많은 나, 너, 우리들…평등은 그렇게 왔다[김유진의 구체적인 어린이]

기자 2023. 2. 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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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연결되는 책들
그림책 <산딸기 크림 봉봉> 삽화
미국 어느 건물 지하에는
중국 소녀 ‘조’가 숨어 산다
그의 이야기를 좇다보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야기들
이들이 곧, 평등의 역사다

인간은 문자를 평면 위에 차례대로 적는다. 이 글처럼 가로쓰기라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문 고서나 일본어처럼 세로쓰기라면 위에서 아래로 한 글자씩 표기한다. 어떤 표기 방식이든 간에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평면적이고, 선형적이고, 직선적이다.

문자 언어가 선형적이라는 특징은 글을 쓸 때마다 가능성인 동시에 한계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선형적이기에, 산발된 사고가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지만 선형적이기에, 산발된 사고를 모두 모아 입체적으로 늘어놓을 수 없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무수한 생각이 일어나지만 이를 글로 쓸 때에는 잔가지를 치며 굵은 가지 하나 혹은 몇 개만 남겨놓아야 한다. 처음에는 잔가지로 여긴 걸 굵은 가지로 세운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림책 <산딸기 크림 봉봉> 삽화

책 한 권을 읽으며 떠오르는 책을 연결하는 작업도 그렇다. 그 책들을 걸어둘 가지가 마땅치 않으면 아쉽더라도 다음을 예비하며 서랍에 보관해둔다.(물론 정 그 책을 걸어두고 싶으면 수형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걸 감수하고라도 억지로 가지를 만들 수는 있다.) 이렇듯 글을 쓰는 작업은 문자 언어의 선형적인 특성상 끊임없이 사고를, 문장을, 단어를 선택하고 배제하는 과정이다. 여러 책을 엮어 말하는 글쓰기에서 어떤 책이 선택 혹은 배제된 건 책이 아니라 글 때문이기도 하다는 고백이다.

<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스테이시 리 지음, 부희령 옮김, 우리학교, 2023)은 이러한 곤란함을 상기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며 꽤 많은 책들이 기억나고 연결되는 바람에 여러 잔가지를 어떻게 모으고 버릴지 조금 당혹스러웠다. 결국 이 책이 말하듯 “여기서 한 걸음 더 내딛지 않으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라고 여기며 모험해본다. 잔가지를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 얼기설기 쌓으면서 글의 선형성이 지닌 한계를 탈피하고, 선택과 배제에서 최대한 벗어나 작품이 불러낸 전부를 받아 적어보려는 거다. 선형성에 집중할 때 수려하고 세련된 글을 안전하게 만들어줄 가능성을 접어두고서 말이다.

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스테이시 리 지음 | 부희령 옮김 | 우리학교 | 2023년

첫째, 아래층 소녀

이름은 조 콴, 열일곱 살 중국인 여성으로 생부모가 누군지는 알지 못하고 아기 때부터 자신을 키워준 중국인 할아버지 올드 진과 함께 ‘아래층’에 산다. ‘아래층’에 산다는 건 ‘포커스’ 신문을 운영하는 벨씨네 집 지하실에 몰래 숨어들어 수년간 살아왔다는 뜻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설정과 비슷하다. 그들이 살아가는 1890년 애틀랜타에서 동양인은 시민이 아니기에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임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금의 지하실보다 나은 집을 구할 돈이 없다. 모자 가게 점원인 조는 중국식 매듭 장식을 만드는 솜씨와 패션 감각이 뛰어나지만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된다.

조는 백인 부호의 집에 하녀로 다시 들어가 일하면서 ‘포커스’ 신문에 고민 상담 칼럼을 연재한다. 조가 사는 ‘아래층’에는 과거 노예 폐지론자들이 위층의 일을 엿듣기 위해 설치한 배관이 있었고 배관에서 들리는 대화를 통해 조는 ‘포커스’ 신문의 독자를 늘리지 못하면 신문사를 닫고 집이 다른 임대인에게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잃을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스위티’란 필명으로 ‘포커스’ 신문에 칼럼을 싣고, 칼럼은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인종별로 분리된 전차 좌석에 앉던 시대에 중국인 조가 불평등을 비판하는 칼럼으로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이 작품을 읽으며 하와이 이민 1세대 조선인 여성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금이 지음, 창비, 2020)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1917년 일제강점기에 하와이로 이주한 세 여성 주인공은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인 조선인 남성들과 사진만 교환하고는 먼 바다를 건너 결혼한 ‘사진 신부’다.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의 현실은 고단했지만 여성들 사이의 연대와 돌봄으로 그들은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삶을 꽃피운다. 조가 사는 ‘아래층’의 공간에서는 그림책 <엄마가 수놓은 길>(재클린 우드슨 글, 허드슨 탤벗 그림, 최순희 옮김, 주니어 RHK, 2022)이 생각난다. 흑인 노예 탈출을 도운 비밀 조직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탈출에 필요한 비밀 지도가 되어준 퀼트 조각보, 그리고 끝내 획득한 자유와 해방을 담은 책이다. 흑인 인권 운동의 시작점인 로자 파크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말하는 그림책 <사라, 버스를 타다>(윌리엄 밀러 글, 존 워드 그림, 박찬석 옮김, 사계절, 2004)도 나란히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들처럼 ‘아래층 소녀’는 백인 사회의 유색 인종 차별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오늘날 평등까지 돌아보게 한다.

둘째, 스위티의 남장과 자전거

조는 자신이 ‘스위티’란 걸 숨기기 위해 칼럼 원고와 독자의 편지를 매번 남장을 하고서 신문 기자 네이선 벨과 주고받는다. 조의 남장에서, 옥죄는 의상을 벗고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야 했던 과거 여성들이 떠오른다. 그림책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키스 네글리 지음, 노지양 옮김, 원더박스, 2019)는 실존 인물인 메리 에드워즈 워커를 여성 어린이 주인공의 모습으로 만나는 책이다. 1832년 뉴욕주 오스위고에서 태어난 메리 에드워즈 워커는 바지를 입은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으로, 경찰에 연행될 때마다 “나는 남자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내 옷을 입었을 뿐입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1855년 의대를 졸업하고 1861년 북부 연합군의 군의관으로 활약해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조의 남장은 남성의 이름을 사용한 과거 많은 여성 작가 또한 상기하게 한다. 조의 필명인 ‘스위티’는 달리 보일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불평등한 현실을 전유하며 평등을 찾아가는 방식의 하나다. 조는 “내가 쓸 기사의 도발적인 성향을 상쇄해 줄 뭔가 달콤한 이름이 딱 어울릴 것”(<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 59면)이라며 필명을 정한다. 고작 이름이나 옷일 뿐인데도 성별에 따라 누구에게는 든든한 지원과 보호로, 누구에게는 차별과 배제로 작용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스위티’는 ‘자전거:우리는 미래를 향해 페달을 밟는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다.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이들에게, 냄새가 나지 않는 말들을 키워 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중략) 여성들이여, 왜 남성들만 그런 즐거움을 누려야 할까요? 심부름을 두 배나 빠른 속도로 다녀올 수 있고, 팔다리 운동도 할 수 있는데요. 자전거 타는 여성을 천박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전합니다. 우리가 20세기를 향해 자유의 기계를 타고 나아가는 동안 당신들은 코르셋과 정조대에 짓눌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같은 책, 142면)

고작 자전거가 중요하냐고 폄하하기엔 자전거 하나조차 여성에게 금기하던 시대에서 결코 ‘고작’이 아닌 것이다. 최근까지도 그리고 여전히 여성의 자전거 운행이나 이동권을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국가들이 있다. 그림책 <사이클 선수가 될 거야!:알폰시나 스트라다>(호안 네그레스콜로르 글·그림, 남진희 옮김, 우리교육, 2020), 동화 <와즈다>(하이파 알 만수르 지음, 김문주 옮김, 상수리, 2020)에서는 ‘고작’ 자전거를 타는 일이 여성 어린이에게는 큰 투쟁이 되어야 했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그럼 우리는 여성이 아닌가요?”

1890년 애틀랜타에서 중국인 여성 조가 겪으며 극복한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을 ‘아래층 소녀’와 ‘스위티의 남장과 자전거’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구분해 이야기해 보았다.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은 모두 철폐되어야 할 차별이지만 이를 하나로 두루뭉술하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실제로 두 정체성이 평등을 향한 여정에서 충돌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이론서인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로즈마리 퍼트넘 통·티나 페르난디스 보츠 지음, 김동진 옮김, 학이시습, 2019)에도 정리되어 있듯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인종과 계급에 따라 때론 연대하고, 때론 갈등했다.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 역시 조밀하게 이야기된다.

“경마 대회의 수익금은 고아와 미망인을 지원하는 여성 복지 향상 협회에 기부한다. 그러나 애틀랜타 벨레스 회원들은, 비록 그들이 같은 동기를 가지고 일한다 해도, 목소리가 큰 여성 참정권자와 연합하느니 차라리 페티코트를 입고 행진할 것이다. 자선사업으로 여성들을 돕는 것은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여성이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니.”(같은 책, 179면)

“나는 여성 참정권자들을 상상한다. 풀 먹인 치마를 끌고 인도 위를 걷는 개혁적 사상을 가진 중산층 여성들이겠지. 나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여성들이다. 그림자 속에 사는 이들은 하늘을 향해 주먹을 쳐들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 해도, 동양인들은 여전히 뒤에 남을 것이다.”(같은 책, 191면)

중국인 그리고 여성이라는 조의 정체성이 균열하는 지점이다. 조는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계급이기에 경제적 자립에 애쓰는 반면 중산층 백인 여성의 참정권 운동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 여긴다. 그럼에도 유색인 친구 노에미의 설득과 칼럼을 집필하며 얻은 자각으로 여성 참정권 협회 모임에 나가는데, 백인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동양인은 시민이 될 수 없으며, 미국 (백인)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한 모임에 다른 대의명분을 덧붙이지 말라는 이유에서다. 노에미는 반문한다. “그럼 우리는 여성이 아닌가요?”

산딸기 크림 봉봉 에밀리 젠킨스 지음 | 길상효 옮김 | 소피 블래콜 그림 | 씨드북 | 2016년

성 차별과 인종 차별이 점차 사라지는 과정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보여주는 그림책으로 <산딸기 크림 봉봉>(에밀리 젠킨스 글, 소피 브래콜 그림, 길상효 옮김, 씨드북, 2016)이 있다. 언뜻 이 책은 “수백 년이 흘러도 한결같은 맛, 산딸기 크림봉봉의 비법을 공개합니다”라는 표지 문구처럼 서양식 디저트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산딸기 크림 봉봉을 만드는 장면을 여러 시간대에서 반복하고, 시간대마다 변화하는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결국 평등의 역사를 말한다. 1810년에는 흑인 노예가, 1910년에는 엄마와 딸이, 2010년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산딸기 크림 봉봉을 만든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본주의 발달로 요리 재료를 시장에서 구입하고, 기술 발달로 편리한 조리 도구를 사용한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성별, 인종, 나이를 가르지 않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식탁이 비친다.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달과 마찬가지로 평등 역시 인류가 진보해온 역사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청소년 소설 <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에 대한 글을 쓰며 선형적 글쓰기를 새삼 고민했던 까닭은 아마도 이 책이 여러 종류의 차별에서 평등으로 나아간 역사를 말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개인을 이루는 다양한 정체성과 그 정체성들이 만들어온 정치는 저마다의 자리에 있다. 하지만 조가 중국인이자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을 동시에 뚫고 나아갔듯 다양한 정체성들의 정치도 끝내 다 함께 나아가는 방향이 있을 거라 믿는다.

■김유진



아동문학평론가·동시인. 동시집 <나는 보라> <뽀뽀의 힘>, 청소년시집 <그때부터 사랑>, 아동문학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를 출간했고, ‘토닥토닥 잠자리 그림책’ 시리즈를 썼다.

아동문학 작품 속에서 어른과 어린이가 좀 더 자주 만나고, 좀 더 가깝게 이어지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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