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땐 무능했던 서울시·경찰, 분향소 철거 시도엔 ‘일사불란’
오세훈, 법과 원칙 앞세워
강경 대응 지시·허가 주도
“8일까지 철거” 2차 계고장
경찰은 추모시설 설치 저지
기동대 등 6000명 즉각 투입
철거엔 기관 간 원활한 협조
유가족과 충돌 갈등만 격화
“어떻게 키웠던 애들인데 이제는 영정도 못 보게 하는 건가요.”
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입구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 한 명이 외쳤다. 이들을 가로막는 철제 펜스가 흔들리자 경찰은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일부 유가족은 펜스 앞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 유가족이 “27세 된 내 외동딸을 살려내라”며 오열하자 앞을 막아선 경찰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날 서울시는 분향소를 유족들 스스로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한다는 계고장을 보냈고, 경찰과 버스는 광장을 촘촘히 둘러싼 채 거리와 광장을 가로막았다.
최근 추모 분향소 설치 등에 대응하는 행정당국의 모습은 참사 전후 보인 ‘무능’과 대비된다. 공권력 투입과 법집행은 신속하고 기관장들이 전면에 나선 가운데 기관 간 협조체계는 원활하다. 모두 참사 때는 없던 것들이다.
서울시는 지난 4일 예정됐던 광화문광장 추모행사와 추모시설 설치를 하루 전날 불허했다. 경찰은 광장을 차벽과 펜스로 둘러 막았다. 서울시는 분향소 설치 하루 만인 지난 5일 ‘6일 오후 1시까지 불법시설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계고장을 보냈다. 서울시는 분향소를 8일까지 자진 철거하라고 재차 통보했다. 서울시 직원들은 이날 오후 5시38분쯤 분향소를 찾아가 2차 계고장을 전달했다. 유가족들은 관련 문서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지난 주말 광화문광장·서울광장에 투입된 경찰력은 약 6000명, 분향소 철거에 투입된 서울시 공무원은 70여명에 달했다. 유족과 시민단체가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경찰 기동대가 투입됐고, 분향소 설치 이후에는 이를 철거하려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광장에 진입했다. 광장 곳곳에서 경찰·서울시 공무원과 유가족·시민단체의 충돌이 벌어졌다. 유족들은 “10월29일 그날에 경찰은 어디 있었냐”고 항의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광장 사용 불허, 서울광장 분향소 철거 계고장 전달 등 법과 원칙을 앞세운 강경 대응을 지시·허가하며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원하시는 추모·소통 공간을 만들어드릴 것”이라고 말한 데서 180도 달라진 태도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분향소 문제는 서울시에서 판단한다. 일련의 절차가 진행되고 나서 (서울시) 요청이 오면 검토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행정당국의 강경 대응은 갈등을 키우고 있다. 이날도 유가족과 경찰이 충돌했다. 오전 10시52분쯤 유가족 한 명이 전열기구를 천막 안으로 반입하려다 경찰에 제지당하자 항의하다 실신했다. 유가족들은 시청 정문 앞에서 오 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유가족들은 “유가족이 무기라도 들었느냐” “오세훈 나와서 사과하라”고 했다. 대치는 1시간 넘게 이어지다 서울시가 “물품 반입창구를 일원화해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유감을 표하면서 일단락됐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살아 있는 아이들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죽은 아이들은 여기서 끝까지 지킬 것”이라며 “모두 한 몸으로 연대해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나가면 우리도 죽은 목숨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김세훈·유경선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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