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 방향 제시 미흡…화제의 챗GPT 입체적 분석 필요
여당 전대 갈등·야당 대표 수사 등 자극적 이슈 기사 지나치게 집중
관련자들 진술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장동 수사’ 보도 더 신중해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사건, 독자 눈높이 맞춘 총정리 눈길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부실 취업 등 ‘사람’에 집중한 기획 큰 울림
‘반려시대…’는 달라진 동물 복지 관점서 여러 문제·가치 잘 짚어줘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2023년 2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곽경란(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김나리(미디어인큐베이터오리 대표), 박영흠(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윤희웅(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표미정(동명여고 수학교사) 위원이 참석했다. 신지영 위원(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경향신문에서는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이 함께했다.
회의에서는 정치 기사가 여당의 전당대회 갈등이나 야당 대표의 검찰 수사 등 자극적인 이슈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을 모색하고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었다. <위기의 민주당을 말한다> <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등 기획기사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시의적절하게 조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춘식 =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뉴스를 안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 언론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여기는 시민들도 많아지고 있다. 언론엔 삼중고, 사중고 상황이다. 이런 때 어떤 저널리즘을 보여줘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지난 1월 경향신문을 보면서 희망을 가졌던 것은 다양한 신년기획에서 정치적 정파성을 뛰어넘고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주제가 많았다는 것이다. 공통된 키워드는 ‘사람’이다. 이런 접근이 계속됐으면 한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뉴스들이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
박영흠 = 심층 기획기사는 경향신문의 장기인데 홈페이지에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정치부에서 쓰고 있는 <위기의 민주당을 말한다> 기획 시리즈는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기획이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 이 기사를 보려면 정치 부문에 들어가 국회·정당 탭을 클릭해서 해당 기사가 올라온 날짜까지 찾아가야 한다. 공도 많이 들어간 기획기사들이 더 쉽게 독자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거법 개정 관련 기사가 부족했다. 최근 정치권에는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등 정치개혁의 화두가 던져졌다. 우리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인데 정치면은 주로 여당 당대표 선출이나 야당 대표의 검찰 소환 문제 기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 뉴스들에 독자들의 관심이 크다 해도 정론지라면 현실 추수만 하는 것보단 장기적 안목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달 24일 나온 새마을금고의 갑질 관련 기획기사는 피해 당사자를 직접 만나 실태를 들어보고 갑질의 원인과 해법을 고민한 좋은 기사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정리한 지난달 10일자 기사도 시의적절했다. 이 사안은 정치권 등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법리적으로 어렵고 사실관계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종합 정리를 해줬다.
표미정 = 새마을금고의 갑질 문제를 다룬 <새마을 갑질: 거울 또는 렌즈> 기획기사에 혼자였으면 못 싸웠다, 같이 있어서 싸울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갑질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사를 보면서 서로 연대하면 삶과 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숨어 있는 피해자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사다. 산업재해를 목격한 노동자들의 고통을 다룬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시리즈도 의미있는 기사다. 우리는 보통 사고를 당한 당사자들만 주목하는데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이 느끼는 트라우마도 상당하다. 이런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 있는 상담시설이나 단체 등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별도의 기사로 써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획 시리즈 <‘취업 무방비’ 일반고 졸업생>은 일반고 학생들의 부실한 취업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학교에서 노동권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자기 권리를 지키지 못하고, 취업을 위해 위탁교육기관에 간다 해도 원하는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다른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는 고졸 취업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평가해주고 싶다. 다만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가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나리 =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챗GPT’의 출현이다. 경향신문에는 지난해 12월부터 관련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기사의 수도 적을뿐더러 단편적인 내용들이다. 지난달 22일 나온 <인공지능 챗GPT에게 기후위기를 물었다> 기사는 기후위기에 대해 물어본 시도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내용은 관점 없이 단순한 질문과 답변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쳐 소셜미디어 공간에서는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챗GPT가 일으키는 변화는 작지 않다. 많은 미디어들이 엄청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경향신문만의 시각으로 이 새로운 현상에 어떤 설명과 해석을 내놓을지 궁금한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이를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신년기획 시리즈인 <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는 좋은 기획이다. 5편까지 나왔는데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많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처럼…깐깐해지는 실업급여 수급> 기사는 제목과 내용 모두 수준이 높았다. 보통 이런 기사에는 ‘실업급여 수급 어려워진다’라는 식의 딱딱한 제목이 붙기 쉽다. 하지만 이 기사는 영화에 비유한 제목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독자들이 제목이 독특하네라며 기사를 읽게 되고 내용이 재미있네, 나에게 필요한 정보도 주네로 정리되는 기사다.
곽경란 = 언론의 기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 발생하는 욕구, 논리를 포착해 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변화가 이뤄지는 부분이 반려 문화다. 1인 가구도 많아지고 동물 복지에 대한 관점도 많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 시리즈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주목해야 하는 여러 문제들과 가치를 잘 짚어줬다. 지난달 11일 나온 <남욱 “김만배, 이재명 시장 당시 사건 검찰에 잘 봐달라 부탁”> 기사는 남욱씨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다. 대장동 사건은 관련자들의 진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당사자인 남씨의 진술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전제한 뒤 기사를 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더 취재를 했어야 한다. 경향신문의 2016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정운호 몰래 변론’ 의혹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이 지난달 27일 나왔다. 이 결과를 다른 언론사들은 보도했는데, 경향신문은 보도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에 불리한 결과이지만 파급력 있었던 보도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면 보도를 하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윤희웅 = 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른바 ‘윤심’ 획득 경쟁과 공방 위주로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전당대회까지 아직 한 달 남았고 출마한 후보들이 공약을 일목요연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출마한 후보들의 비전, 공약, 차별점, 특성 등을 보도하려는 의지나 시도가 있어야 다른 언론과 차별화될 수 있다. 아울러 정상적이지 않은 정치 행태들에 대해 바르게 방향을 제시하는 기사들이 나왔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정치인들의 공방이나 발언들을 따라가는 형태의 보도들이 많아 아쉽다. 야당 상황과 관련해서도 당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고 소환되고 하는 기사가 2~3일에 한 번씩 메인 뉴스를 차지하고 있다. 야당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을 텐데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위기의 민주당을 말한다> 시리즈는 정치개혁을 위한 다양한 해법 등을 담으려는 시도로 높게 평가할 만하다. 언론인들이 김만배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태는 한국 언론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관련 기자들이 소속해 있던 언론사들은 상세하게 처리 과정을 보도했는데 경향신문은 비중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직접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엄격하게 언론인들의 윤리 문제를 지적하고 언론윤리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신지영 = 지난달 31일자에 ‘영화배우 윤정희씨가 30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영면에 든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영면’은 영원한 잠이란 뜻으로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윤정희씨는 죽은 지 이미 10여 일이 지난 후고, 기사는 장례식을 치른다는 내용이다. 장례식은 영면에 든 이후 치러지는 예식이므로 영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지난달 30일자에 실내 마스크 착용 지침을 알려주는 기사가 있었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상황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언제 어디서 써야 할지 혼란스러운 독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는 기사다. 특히 박스 형태로 마스크를 쓸 때와 쓰지 않아도 될 때를 나누어 요약해준 것이 가독성을 높였다. 다만 종이신문으로 볼 때 회색 배경에 흰 글씨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은 점은 아쉽다. 지난달 노동, 장애, 외로움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짚어준 세 편의 기획기사가 돋보였다. 신년기획 <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는 ‘반려’라는 핵심어를 통해 외로움과 고립을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살펴본 기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아 기획한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는 생존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가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한 발품이 돋보였다. <시설사회 그 너머> 기획은 모든 복지서비스가 주거시설로 귀결되는 문제점을 잘 짚었다.
김춘식 =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한국도시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해 한국의 비친족 가구의 현실을 보여준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새만금 농지 불법 땅 장사를 고발한 기사도 좋았다. 기존의 취재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 분석이나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발굴해 만든 기사는 확실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정리 |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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