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만 요란한 필수의료 대책
[시론] 김윤 |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윤석열 정부의 의료분야 핵심 국정과제인 필수의료 대책 최종안이 지난주 발표됐다. 생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증·응급·소아·분만 같은 필수의료를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골든타임 안에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자신이 근무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제때 수술받지 못해 숨지는 일이 일어나고,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를 중단·축소하는 큰 병원이 늘어나면서 필수의료 공백은 점점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대책엔 거점별로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 역할을 체계화하고, 병·의원에 지급하는 건강보험 수가를 올리는 동시에 충분한 의료인력을 확보하겠다는 광범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언뜻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탈바꿈시킬 만한 획기적인 대책 같아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내용은 별로 없는 ‘공갈빵’ 같은 대책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의료취약지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빠져 있다. 우리 국민 7명 가운데 1명은 중증환자나 응급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큰 종합병원이 없는 의료취약지에 살고 있다. 의료취약지란 우리나라를 55개 중진료권으로 나눴을 때, 큰 종합병원이 없어 입원환자가 제대로 진료받기 어려운 곳을 의미한다. 이 같은 의료취약지는 전국 평균보다 입원환자 사망률이 1.3배 높은데, 이 지역에 사는 국민이 우리나라 평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면 해마다 사망자를 약 1만명 줄일 수 있다. 의료취약지에 환자가 적어 큰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실은 서울 같은 대도시보다 시골에 작은 병원이 더 많다. 의료취약지에도 큰 종합병원을 2개 이상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환자 수요가 있다. 병원은 많지만 중증·응급·소아·분만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큰 병원이 없어 도시라면 살 수 있는 환자가 의료취약지에선 죽고 있다.
둘째, 돈은 안 쓰면서 생색만 내는 대책이 대부분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 세개 중 두개는 소규모 시범사업을 해보겠다거나, 언제 시작할지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각급 응급의료센터 지정 기준을 개선해 실제 치료역량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중증응급환자 진료체계 개선, 지역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한 심혈관질환 전문의 간 협력, 산모와 신생아 중증도를 중심으로 한 의료전달체계 모두 시범사업이다. 시·군 지역 분만 의료기관 수가를 올리는 사업이나 대학병원과 지역 병원이 협력해 환자를 보는 시범사업은 언제 시작하겠다는 계획도 없다. 고위험 분만과 수술 수가 인상, 24시간 의료진 상담이 가능한 소아전문상담센터 설치는 이제부터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면서 돈을 얼마나 쓸지 제시하지 않은 상황 역시 생색내기용 조처임을 반증한다. 이렇게 대책이 모호하다 보니,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알기 어렵지만 소요 예산 추정치가 나와 있는 주요 사업 예산은 다 합쳐도 연간 1조원이 되지 않는다. 필수의료 지원을 위해 새로 투입되는 재정은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1~2%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대책으로 윤석열 정부 임기 안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날지 의문이다.
셋째, 부족한 의사인력 문제를 해결할 대책도 없다.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고, 대학병원이 소아청소년과 병동 문을 닫고, 의료취약지에 제대로 된 병원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병원이 더 많은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의과대학 정원을 늘려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배출해야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병원 눈치 보느라 건강보험 수가는 올려주면서, 병원이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를 더 많이 고용하게 만드는 대책은 없다. 역시 의사 눈치 보느라 의과대학 정원을 늘린다는 대책도 없다. 이런 정부가 의사들이 죽기 살기로 반대하는 의대 정원을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넷째,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처럼 이미 실패한 지원 정책을 또 내놓았다. 정부는 최근 10여년간 분만 가능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 지역에 산부인과가 운영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2021년 기준 분만취약지 산모 10명 중 8명은 여전히 큰 도시 병원에서 분만하고 있다. 재정지원에도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이는 산모 수가 적어 의료 질을 보장할 수 없는 지역 단위를 분만취약지로 지정한 결과이다. 산모 수가 적어도 500명 이상인 중진료권 단위로 분만취약지를 지정했다면 1시간 이내 거리에서 산모가 이용할 수 있는 좋은 병원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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