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문제 답은 있다…근본 해결을 안할 뿐
[왜냐면] 김영태 | 전 <시비에스>(CBS) 문화체육부장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경고음을 울린 지 오래다. 핀란드에서 유학하는 학생이 사교육비 부담이 한국 저출산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하자, 호주 출신 연구자가 “너희 교육 과열 문제 아주 오래되지 않았어? 왜 아직도 해결 안 되고 있어?”라고 반문했다. 유학생은 “기득권이 시스템을 고치려 하지 않아”라고 설명하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너무나 슬펐다고 전했다.
최근 읽은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3>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동안 시행된 인구 정책이 저출생의 근본 원인 해결보다는 단편적 문제 해소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보육 시설 부족과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치솟는 아파트 가격, 급증하는 사교육비, 취업과 주거문제 등 과도한 경쟁에 몰린 청년들의 부담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구색 맞추기 대책만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식과 해답이 담겨 있다. 살 만한 사회라고 생각하면 젊은이들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게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포기한다. 국가와 정치권 기성세대는 의제화해서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생긴 지 꽤 됐고, 저출산 극복을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근본 원인은 주거문제, 사교육비, 출산 육아 환경, 여성의 경력 단절, 청년 일자리 문제로 요약된다. 아파트 가격 폭등은 월급 받아 집을 살 수 없는 지경이다. 사교육비는 어린이집 유치원 비용부터 만만치 않다. 맞벌이 부부는 부모에 육아를 맡기거나, 육아 도우미를 쓴다.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되는 여성이 많다. 청년 일자리는 정규직이 매우 적고, 비정규직 일자리가 태반이다. 지금 청년세대 본인이 살기도 힘겨운데, 자식에게 이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총체적으로 개선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주거안정 문제를 보자. 대장동 사건은 부동산 업자의 폭리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천문학적 초과이익 환수도 환수지만, 애당초 거품이 낀 아파트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임대주택 확대, 장기 공공임대주택 확대, 초과이익 환수, 건설사의 이익 보장이 아니라 서민 주거안정을 목표로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정치권이 할 일이다. 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하면 주거안정을 이뤄나갈 수 있다고 본다.
다음은 사교육비를 포함한 교육 문제를 보자. 장기적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고, 3~5살 영유아를 유치원 무상교육을 실시하면 된다. 현재 초중고는 무상교육이다. 대학교육까지 무상교육으로 하면 모든 교육비가 무상이 된다. 교육비 무상이면 자녀를 낳을 만하다. 유아·대학교육 무상 재원은 감당할 만한 것으로 검토된 바 있다. 여기에 학벌을 타파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서열 타파를 위해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나 대입공동지원제를 도입해야 한다. 입시 위주 경쟁교육이 아니라 창의적 비판적 인재양성으로 교육 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보자. 우리나라 고용구조는 비정규직이 지나치게 많다.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를 합법화해 구조적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어떤 고용체제를 운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전략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책의 주장에 크게 공감한다. 미래세대와 현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래세대를 위한 중장기 정책 수립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또 기존 입법·정책의 미래세대 영향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도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이 책은 제도적 장치를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정부 예산 편성 시 미래세대에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하는 ‘미래세대 인지 예산제'의 추진, 국가정책 의사결정 구조 내 미래세대 대리인인 청년 참여 비율 확보, 미래세대 정책을 수립하도록 적절한 보상 구조 마련, 정부 정책이 미래세대 이해관계를 침해하지 않는지 평가하는 독립적인 미래세대 기구 구성, 시민이 참여해 다양한 미래세대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디지털 공공 플랫폼 구축을 제안했다.
핀란드 유학생이 전하는 케냐 유학생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사람 한 명이 너무나 소중한데, 부족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는데, 사람은 국력인데 너넨 그런 걸 중요시하지 않는 거야?” 뭣이 중한디! 답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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